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달랏 중심가엔 누가 보아도 성당인 건물이 하나 솟아 있는데 진짜 성당이다. 이름은 성니콜라스바리 교회라 하는데, 흔히 수탉풍향계가 달렸다 해서 치킨처치, 또는 달랏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인들에 의해 달랏이 처음 개발될 무렵 생겨난 낡은 교회를 부수고 어엿한 도시로 자리잡은 1930년대에 다시 만든 것이 이 건물이다. 지금도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사가 있는데, 그때마다 몰려든 주민들이 교회당 바깥까지 길게 줄을 늘어선다. 음식점 앞에 줄을 서 기다리는 인스타족들처럼 다음 미사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전 시간 내내 줄을 서 대기하는 모습이 한국과는 제법 다른 풍경이다.
베트남에서 가톨릭이 여적 생명력이 있다는 건 적잖이 흥미롭다. 오랜 식민지배 속에서 어느 종교는 제국주의의 첨병이었고, 또 어느 종교는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가림막이 되었던 게 이들의 역사가 아닌가. 비슷한 시기 여러 나라에서 그러했듯 가톨릭은 추잡한 역할을 전담하였는데, 처음은 침탈자의 종교였고 나중엔 배신자며 독재자의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20세기 남베트남에선 지난 수백년 간 제가 받은 종교차별이며 강제개종을 복수라도 하듯이 비스무리한 행태를 벌여왔으니,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을까 여겼다. 그러나 막상 곳곳에서 마주하는 가톨릭 교회며 상징물들은 베트남이 여전히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국가이며 그 교세 또한 결코 작지 않음을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성서와 그에 담긴 이야기만 놓고 보면 가톨릭 신자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욱 소박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있단 걸 짐작케 한다. 멀리 보면 더러운 것이 가까이 보면 어여쁘기도 하니, 조선이 그러했듯 민망 황제가 가톨릭을 탄압한 것은 제게 심각한 위협이 되리란 걸 미연에 알았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저들 응우옌 왕조의 탄생부터가 신부들이 모집해온 병사를 통해서였으니 역사는 돌고 돌아 마침내 원금에 이자까지 두둑히 받아내고 마는 악덕 고리업자같은 면모가 있는 것이다.
무튼 오늘 성니콜라스바리 교회를 찾은 이들이 두손 모아 기원하는 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닐 것이다. 그저 오늘의 평안과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찌그러진 어제를 그래도 돌아볼만은 하게 만든다. 타락한 마음과 맹목적 신앙으로 점철된 이들만이 이 종교의 주인은 아니었을테다. 제 사람조차 포용하지 못하고 한줌의 희망조차 짓밟기 일쑤였던 무능하고 탐욕스런 자들로부터 이 종교가 내밀었던 손길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과 다르다고 그들 아닌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신도 크리스찬인가요 물어오는 순박한 소녀들을 지나쳐 죽어버린 이야기를 수집하는 오만하고 외로운 여행자는 그저 자리를 피할 뿐이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