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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칼럼

악마의 유혹

언론사 입사준비 8

by 김성호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 음료 코너 앞에 선다. 하얀 조명 아래 같은 부류끼리 정렬된 커피와 유제품 앞에는 저마다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내 눈은 언제나처럼 빠르게 행사상품을 훑는다. 가격표 옆에 끼워진 명함 크기의 노랗고 빨간 표식들은 제각기 2+1이며 특별할인이며 하는 선정적 문구로 나를 유혹한다. 이곳에서 내 목적은 언제나 명확하다. 같은 종류라면 더 싼 것이 낫다.


오늘은 커피다. 불행하게도 커피 중에서는 단 한 품목에만 빨간 표식이 끼워져 있다. 프렌치 카페, 악마의 유혹. 무려 2+1이다. 저녁 때 마시면 되지. 생각에 없던 두 병을 더 집어든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난주에도, 그 지난주에도 나는 악마의 유혹을 마셨었다. 전에는 매주 바뀌던 행사상품인데 어쩐 일인지 요즘은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눈길이 빠르게 유통기한을 훑는다. 그러나 틀렸다. 유통기한 옆에 적힌 남양이라는 두 글자. 바로 이것이 잦은 행사의 이유인 것이다.


남양유업의 본사 영업직원이 대리점장에게 내뱉은 욕설 녹취록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촉발된 남양유업 사태는 회사측이 피해 대리점에 영업권 회복과 보상금 지급을 약속하며 일단락됐지만 불공정한 갑을관계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촉발시켰다. 프랜차이즈 사업주와 자영업자 간의 갑을문제, 부동산주와 임차인 간의 권리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이 연이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사회적 약자에게 부당한 계약을 강요하는 갑들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악마가 그들을 괴롭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기독교와 불교에서 악마는 선의 달성을 방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방해는 유혹을 통해 이뤄진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간 예수는 사십일 간 악마의 유혹을 받았고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구하던 석가모니도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았다. 놀랍게도 이 두 사건은 매우 비슷하게 그려진다. 악마는 이들에게 식욕과 물욕, 명예욕 등을 통해 유혹하였으나 이들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침내 도를 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악마의 속성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악마는 유혹할 뿐 파괴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드러난 악마적 횡포들을 살펴보면 그 행위자는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악마적인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양유업의 영업사원도 집에서는 착한 아들이자 좋은 남편이었고 약자에게 횡포를 부린 많은 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기대한 악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 중의 하나였던 그들이 마치 악마와도 같이 우리를 괴롭혔던 건 그들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유혹은 수천년 전 석가모니와 예수에게 악마가 제안한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욕과 명예욕, 이기심 등을 자극해 선을 벗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수천년간 이어온 악마의 유일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악마는 유혹할 뿐 파괴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석가모니나 예수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처럼 악마의 유혹에 초탈할 수만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이 해왔던 것처럼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인심 좋게 팥죽을 나누며 악을 막으려 했던 조상들의 마음으로부터 연대의 지혜를 끌어내야 한다.


집어든 커피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내려놓은 커피에 프린트 된 모델의 얼굴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황급히 인스턴트 팥죽 하나를 집어들고 편의점을 나온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이제는 커피를 끊어야지. 그러나 어쩌면 편의점 팥죽은 커피 만큼 달고 악마는 커피 하나로만 유혹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014. 6. 15. 일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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