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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Dec 31. 2023

웃으며 맞이하는 이유

단상

어느 글쓰는 이와 만났다. 그는 소설을, 나는 에세이를 바로 얼마 전 내었기에 나눌 이야기도 많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 글로는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몇개쯤 들려주었고, 그로부터도 전에는 듣지 못한 이야기를 몇쯤 들었다. 그러려고 만난 것이고.


 조금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제가 걸어온 길을, 그것이 조금은 엉망진창처럼 보일지라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또 제 곁에 분명한 지지자를 두고 있었고,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았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제가 쓰는 글의 첫 번째 독자이길 자청하며, 저와 제 글에 거는 기대가 높았다. 그로부터 많은 실망도 하겠으나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를 좋아할 밖에 없다.


 잔뜩 기가 죽어 있다거나 자기애로 무장된 그렇고 그런 이였다면 실망했을 테다. 그런 이들이 읽을 만한 글을 써낼리도 없겠으나, 어느정도 쓸 줄은 안다해도 더 나아지긴 글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어서 나는 자유롭게 내가 느낀 감상들을, 아쉬움과 실망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와 나는 비슷한 면이 있다. 기준이 높고 비판을 두려워 않는다. 개소리와 비판을 구분하며 개소리는 파훼하고 비판에는 문을 열어주는 자세를 적어도 작가라면 지녀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근간은 언제나 자신감이니, 오로지 스스로를 믿는 작가만이 제 못함을 밟고 설 수가 있다.


 흔히 자신감과 자아도취를 혼동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감 있는 이와 자기애에 빠진 이가 어느 순간에는 같아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 사이엔 자신감과 자기혐오 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다. 개중 가장 큰 차이가 비판을 대하는 태도다. 자신감 큰 이는 스스로에게 첫 비판자이기 십상이고, 타인의 비판 역시 귀히 여기게 마련이다. 비판의 가치를 아니 비판 앞에 언제나 진지한 자세를 견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만한 자신감을 쌓아올릴 수도 없었을 테고.


 자기에 도취된 이는 좀처럼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이는 언제나 타인보다 자기를 대단하게 여긴다. 눈 밝은 이의 비판이란 대체로 타당하거나 적어도 일부는 합당하다 할 텐데도, 그는 그깟 비판일랑 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쯤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정도면 다행이지, 비판을 저를 향한 공격이며 질시로 바라보는 일까지 잦다. 그런 이와는 아예 대화를 피하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해주는 게 상책이다. 자연히 사방이 닫혀 스스로 고립된다. 얼마나 한심한가.


 그는 제가 걸어온 거칠었던 길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는 그 모두가 작가에겐 자산이라 하였다. 맑고 고운 삶에는 주름이 잡히기가 어렵고, 쓸만한 이야기란 그 주름들로부터 태어난다고. 삶은 어느 한 순간에 멈춰있지 않으니 오늘의 실패가 내일은 성공을 떠받치는 지지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작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 작가이길 선택했다면 고난쯤은 기꺼이 맞아야 할 고마운 존재가 아닐런가. 바로 이게 거듭 미끄러지는 오늘을 웃으며 맞이하는 이유다.



2023. 3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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