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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Jul 28. 2024

오늘은 홍범도 장군 79주기, 저는 이 책을 읽습니다

오마이뉴스 게재, <나는 홍범도>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61] 송은일의 <나는 홍범도>


목숨을 내어놓고 나라를 찾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라고 돌봐야 할 어버이와 아내가, 남편이며 자식들이 없었을까. 그 모두를 뒤로 하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총칼에 쫓기며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대부분은 조선의 군인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밭을 갈던 백성이고 민중이었다.


송은일 작가의 소설 <나는 홍범도>는 25일로 세상을 떠난지 79년째를 맞은 의병장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느 장수도 홀로 장수일 수는 없으므로, 그와 함께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을 지키려 했던 백성들의 삶도 곳곳에 스며 있다. 그중 어느 한 갈래 삶도 반듯하고 평탄하지만은 않다.


처음 홍범도는 그저 어린 소년이었다. 그에게 부모가 없었기에 그는 강해져야 했다. 그는 말단 병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존경할 상관이 없었기에 탈영해 도망쳐야 했다. 제지공장 노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아서 그 사업주를 실수로 죽이고 만다.


배운 것이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산포수로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 따스하게 맞아주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며 이어가기 어렵게 된다. 속세를 떠나 들어간 절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다. 하지만 불한당에게 강도를 당하고 아내를 잃어버린다. 그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고단하기 짝이 없다.

            

▲ 나는 홍범도 책 표지ⓒ 바틀비


인간 홍범도가 영웅이 되기까지


온갖 불행에도 홍범도 장군은 길 아닌 곳을 걷지 않았다. 나이를 두 살 올려 평양감영에 입대한 그는 봉기를 일으킨 백성들과의 싸움에서 일부러 총을 비켜 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백성에게 죄가 없다는 걸 배운 것 없는 소년 시절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은 포수였으나 호랑이 한 마리 쏘지 않았다. 호랑이를 몇 마리나 잡았느냐는 김좌진 장군의 물음에 "약초꾼이 오래 묵은 산삼 몇 뿌리 캤다고 자랑치 아니하는 법이듯, 호랑이를 몇 수 잡았다고 떠벌리면 안 되는 게 사냥꾼 세상 불문율"이라며 "어쨌든 김 사령관이 어떤 상상을 하시든 그 이하라는 것만은 말씀 드릴 수 있겠소"라고 답한다.


조선 말기는 호랑이가 인간을 해하지 않았던 때다. 일본이 포수를 모아 호랑이 사냥을 주도하고, 포수들에게 잡힌 호랑이의 가죽이 연거푸 벗겨지던 세상이다. 짐승인 호랑이조차 사람이 먼저 뒤로 물러나고 해칠 뜻이 없음을 보여주면 굳이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침략자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탐욕으로 이웃나라를 침범해 무고한 백성을 죽였다. 짐승보다 못한 일이다. 홍범도가 일본에 대항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홍범도 장군은 총기와 군사를 잘 다뤘다. 잘못 없는 백성도, 먼저 해하려 들지 않는 호랑이도 함부로 쏘지 않았던 그이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총과 군을 좋아했다. 그가 읽지도 못하는 병법서를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나, 노상 총을 분해해서 닦고 재조립하는 일을 소일 삼은 것이 모두 그런 이유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의 운명이 어떠한지를 말이다. 이것이 그가 무를 숭상한 까닭이다. '그칠 지'자와 '창 과'자를 합쳐 '호반 무'자가 이뤄진 본뜻을 알았음이다. 창이 난무하는 난세를 종식시키고 이 땅에 평화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라는 것을 말이다.


발목잡는 조선의 한계, 그럼에도


홍범도 장군의 전투는 무리하지 않는다. 적을 더 잡으려 아군의 위험을 크게 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가 온 힘을 다해 고양이를 대적한단 것을 알기에 퇴로를 열어준 장면이 실증적으로 쓰인 소설 가운데 여러 대목에서 등장한다. 일본군을 놓아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군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였다. 그래서 그가 지휘한 많은 전투에서 의병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목숨 하나하나를 귀히 여기는 장수가 싸울 자리와 방법을 밤낮 고심하여 지휘한 덕이었다.


이처럼 작은 생명 하나도 차등 없이 귀히 여긴 게 홍범도 장군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순간 그는 구분되고 차별받았다. 특히 의병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겪은 일들은 책을 읽는 후대의 독자조차 분통이 터지게 한다.


전국 크고 작은 의병들이 합류해 급격히 세를 불렸던 호좌의진의 사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명망 높은 양반 출신 의병장 유인석과 역시 양반 출신 유학자 안승우가 주류를 이룬 호좌의진은 공히 옛 조선의 질서로 움직이는 의병대였다. 화서 이항로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수뇌를 이뤘다. 성리학 사상과 위정척사 정신을 공유했다. 옛 질서를 수호하고 새로운 문물을 거부하려는 이들에게 신분 낮은 의병장과 서양의 신식무기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 테다.


결국 큰 부대 운용과정에서 이 같은 차별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들의 저항은 새 백성이 아닌 옛 조선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김백선의 참수로 그 같은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부장의 반대에도 큰 군세에 합류하길 원했던 홍범도 장군의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양반의 부대에 먼저 손 내민 이유


소설은 후에 청산리 전투를 함께 치르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만났을 때도 이 같은 문제가 내재돼 있었음을 내보인다.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뭉쳐도 쉽지 않을 판에 두 부대 간부들은 서로를 재고 따지기 바빠 함께하는 결정을 좀체 내리지 못한다.


서로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 고민하는 홍범도 장군에게 그를 지근에서 보좌하는 내무대원 이인선이 고한다. 김 장군의 부대는 양반 출신들로 이뤄져 있고, 홍 장군 부대는 양반이 아닌 자들로 이뤄져 있어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호위병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한다. "쓸 데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으나 홍 장군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수년간 여러 부대와 연합하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으니 모를 수가 없다. 나라는 양반과 양민을 가르는 신분을 철폐했으나, 사람들의 마음엔 여전히 신분제가 남아 국민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상적인 건 홍범도 장군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분의 장벽에 가로막혀 양반의 부대를 적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내내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호좌의진에게도, 김좌진 장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하 부대원들의 불만이 있을지라도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추진해서 실제로 이뤄내기도 한다. 고립된 김좌진 장군의 부대를 구하러 돌입해 벌인 청산리 전투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백미다.


아마도 홍범도 장군을 알고 있었을 테다. 이 나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선 힘을 합쳐야 한다는 걸, 구태의연한 반상의 구분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말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귀히 여긴 것도, 손해를 감수하고 먼저 손을 뻗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청산리 깊은 계곡서 터지는 함성


소설의 끝은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의 부대가 연합해 승리를 거두는 장면에서 맺어진다. 한반도 독립전쟁 사상 손꼽히는 성취인 청산리 전투다. 빛나는 승리 뒤 청산리 깊은 계곡에 의병들의 함성이 가득 찬다. 반상이 사라지고 오로지 대한의 자손들이 남아 이룬 승리다.


그러나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그 뒤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다. 부대는 북쪽으로 거듭 밀려나 러시아까지 옮겨진다. 독립군끼리 나뉘고 갈라져서 뜻을 함께 하지 못한다. 어느 부대는 저 멀리 중앙아시아로 옮겨지고, 또 어느 부대는 만주 땅을 떠돌다 해체된다. 독립까지 남은 25년이란 어두운 시간 동안 희망 한 줄기 보기가 어려웠다. 일제의 난동은 갈수록 더욱 거세졌고 오랫동안 꿈꿨을 한반도 진공작전은 실행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느 독자도 소설을 마냥 유쾌하게 읽을 수 없다.


지난해 한국이 홍범도 장군의 순국 78년 만에 그의 유해를 한반도로 모셔 현충원에 안장했다는 건 감격적인 일이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귀히 여기는 그의 정신을 비로소 이 땅에 모신다는 결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끝내 해냈고, 앞으로도 해내야 한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78주기였던 지난해에 비해 관심이 없이 맞이하는 79번째 장군의 기일에 나는 소설 <나는 홍범도>를 권한다.


▲ 홍범도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홍범도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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