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학교 가기 전에 연산은 잡아 줘야 해요.
지금 이 정도도 못하면 학교에서 따라가기 힘들어요. 이제 초등 입학까지 반년 남았으니까,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연산수업을 하고 하루에 학습지 5장은 풀어야 연산은 그나마 따라갈 수 있어요."
첫째 7살 가을, 학습지 센터에서 들은 이야기다. 학습지 상담사의 말을 들으니 불안과 조급함이 나에게 쳐들어왔다. 그때부터 첫째는 숙제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저녁 8시.
연산 숙제를 하는 첫째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흐른다. 한 시간째 연산과 씨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마음과 한자릿수 더하기 빼기는 너무 힘이 들었나 보다. 그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속이 터진다.
'고작 한 자릿수 더하기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저러노.'
그때는 몰랐다.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숙제의 양이 아이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이었다는 것을.
첫째 아이는 4살 가을에 사교육에 발을 담갔다. 규모가 제법 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선택한 어린이집은 1주 차 1시간, 2주 차 2시간, 3주 차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서서히 아이가 적응할 수 있는 있게 진행되었다. 아이의 짧은 등원시간은 대기하는 엄마들에게 자연스럽게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처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모든 이야기는 아이의 발달과정으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을 맺은 적이 많았다. 매일 그런 패턴으로 이어지는 교육이야기에 첫째 아이의 사교육의 시작 또한 물 흐르는 듯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키즈 발레를 시작으로 미술, 영어는 기본이다. 창의 수업, 축구, 바이올린, 동요 하다못해 레고까지 수업을 들었다.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여러 개가 되는 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저건 다 노는 거니까 괜찮아.'
그렇게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첫째의 6살 가을.
2019년 11월, 듣도 보도 못했던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해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멈추는 법을 잊은 듯 번져나갔다. 그로 인해 6개월간 우리의 모든 일상은 멈추어버렸다. 첫째의 사교육도.
코로나가 안겨준 일상의 멈춤 시간은 나의 불안과 조급함도 모두 정지시켰다.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간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시간 동안 아이의 짜증스러움도 잠시마나 멈추었던 것 같다.
1년 정도를 힘들게 하던 코로나가 그나마 잠잠해지자, 어린이집도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등원하게 된 날 어린이집 주차장에서 만난 친한 엄마는,
"승이 엄마, 초등학교 가면 연산이 제일 중요해. 지금 연산을 잡아놔야 한다. 우리 첫째 봐라~ 다른 건 다 잘하는 연산이 조금 부족해서 지금 힘들게 다시 연산하잖아. 니도 우리 애 다니는 학습지센터 한 번 가보자. 니 이래갖고 나중에 수학 따라가기 힘들데이.'
라고 말을 건넨다. 첫째를 영재원에 보내는 있는 그 엄마의 말이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초등 입학을 반년 앞두고 수학이 고민이었던 나의 선택은 정해졌다. 학습지 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니 멈추었던 6개월의 공백을 재빠르게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기존 수업에 주 2회 연산 수업을 추가했다.
"평범하게 평균만 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나의 겉모습과 다르게 내 아이는 남들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고, 최고가 되었으면 하는 나의 욕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쉴 새 없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내 아이의 마음은 뒤로 한 채.
'이게 다 너를 위한거야.'
마음속에 자기합리화를의 주문을 외우며 욕심의 그릇을 채워나갔다. 엄마의 욕심에 날마다 울고불고하던 아이는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