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한가운데 펼쳐진 레드카펫

제1회 고로컬 시상식

by 내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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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각종 행사가 이어집니다. 화려한 조명, 턱시도와 드레스, 레드카펫 위를 걷는 스타들. 연말 시상식을 떠올리면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치장된 연회장과 엄숙하고 정제된 의전 절차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동안 시상식은 ‘성공’ ‘위계’를 시각적으로 조명하는 형식으로 연출되어 왔습니다.


지난 12월 30일, 예산 봉산면 하평리에서는 조금 다른 시상식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한가운데, 빈집을 개조한 ‘스튜디오 감나무집’ 마당에 레드카펫이 깔렸습니다. 대형 연회장 대신 8평 남짓한 창고가 무대가 되고, 화려한 조명 대신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웠습니다.


2025 제1회 고로컬 시상식은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라기보다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가까웠습니다. 한 해 동안 고로컬이 예산 곳곳에서 펼쳐왔던 마당극과 지역 축제에서 선보인 주민 참여형 콘텐츠를 되짚고, 그 기억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유명인이 아니라 그동안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떠한 지원도 없이 십시일반 재능과 마음을 보태 만들어낸 잔치였습니다.


거창한 의전도, 정해진 좌석도, 성대한 시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상식보다 따뜻했고, 진심이 오가는 행사였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고, 상을 받는 사람보다 손뼉 치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의 얼굴에 더 환한 웃음꽃이 피는 한 편의 연극 같은 잔치였습니다.


로컬 콘텐츠는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지역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참여와 기획자, 창작자들이 함께 호흡을 맞출 때, 비로소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느리고,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시골 논밭 한가운데 깔린 레드카펫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었습니다. 화려한 치장과 포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마을 한복판에서, 주민과 고로컬의 배우들,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경계를 허물며 지역의 이야기로 하나 되는 시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레드카펫 위를 걸은 사람들은 유명한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모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마을과 함께한 제1회 고로컬 시상식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합니다. 혹시 아나요? 이색적이고 재기 발랄한 저희의 시도가 몇 년 뒤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며, 텅 마을에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다짐하게 됩니다. 2026년에는 더 지역적인 이야기로 가장 예산다운 콘텐츠를 만들겠다고요. 하평리에서 펼쳐진 연말 시상식을 통해 저희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적인 것처럼, 로컬 콘텐츠 역시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 필터’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지역을 사랑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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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과 함께한 제1회 고로컬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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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회 고로컬 시상식 @스튜디오감나무집
2025 제1회 고로컬 시상식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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