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낭만적인 시골살이

by 내우주


몇 해 전 서울을 떠나 면 단위 시골 마을에 정착한 저를 두고, “낭만적이다”라고 말한 친구의 한마디가 문득 떠오릅니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를 우리는 낭만적이라고 부릅니다. 친구의 눈에는 귀촌이라는 제 선택이 퍽 낭만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 선택, 많은 것을 포기할 용기가 필요한 결정. 어쩐지 낭만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거리감과, 그만큼의 두려움이 함께 겹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곱씹어보면 그 말은 온전한 찬사라기보다, 이런 물음표를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낭만적이다’라는 말로 눌러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서울이라는 표준에 익숙한 시선에서 보면, 도시 밖의 삶은 늘 ‘특별한 선택’이거나 ‘예외적인 이야기’로 읽히기 마련이니까요.


넓은 논밭 한 가운데 자리한 시골집에 서울 손님들을 초대할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저녁 어스름과 함께 풍겨오는 축사 냄새, 어디선가 날아드는 매캐한 소각 냄새를 맡은 그들은 “이런 게 고향의 향기 아니야?”라며 웃습니다. 가장 가까운 슈퍼에 가려 해도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유배지가 떠오른다며 짓궂은 농을 건네기도 합니다.


친구들에게 예산으로 내려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권해본 적도 많습니다. 신촌에서 강남도 한 시간이 걸리는데,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예산 정도면 수도권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어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시골에 집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다”는 말로 제안에 대한 응답을 갈음하는 것입니다. 저를 핑계로 예산 여행을 떠나온 친구들이 왠지 얄밉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친구들 눈에 시골의 낭만을 더하는 요소는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못 보던 차가 세워져 있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그 집 누구 왔다 갔나벼?”하고 묻곤 합니다. 웬 젊은이가 아침 구보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구, 어디서 이쁜이가 왔댜~”라며 반갑게 맞아 줍니다. 서울에서 온 손님들은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좋아합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잊혀가던 고향의 추억을 되살려내는 장소입니다. 어쩌면 그 기억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낭만의 실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도시와 같은 익명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이곳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낭만은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온 사람’의 시선에서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들에게 시골은 불편함조차도 하나의 경험이 되고, 낯섦은 곧 특별함이 됩니다. 반대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저 익숙한 일상의 조건일 것입니다. 같은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낭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인 이유는 결국 관점의 차이 때문 아닐까요.


문득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제목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늘 가보지 않은 길을 더 아름답게 상상합니다.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이죠.

누군가 예산에서 고향의 추억과 낭만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는 일. 그런 길이라면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DJI_20260322111852_0252_D.JPG 가야산 아래 평평한 마을, 하평리(下坪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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