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막내로 전입했습니다
“아이구, 이쁜 애기들이 들어와서 얼마나 좋은지 몰러~”
우리 마을에서 저는 ‘애기’로 불립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애기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곳, 우리 동네는 인구가 70명쯤 되는 고령화 마을입니다. 2024년 여름, ‘가야산 아래 평평한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하평리(下坪里)에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아마도 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어린 세대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던 빈집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잡풀이 무릎까지 자라난 마당, 푸세식 화장실이 딸린 낡은 창고, 곳곳에 녹이 난 커다란 초록 대문. 누가 봐도 손이 많이 갈 집이었지만, 처음 그 대문을 밀어젖히는 순간 묘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 집이 빈 지 벌써 몇 해는 지났다고 합니다. 덜컥 계약을 하고 나서야 주변에서 한마디씩 건네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편한 아파트로 가지, 도대체 왜 그런 다 낡은 시골집을 샀냐"는 걱정 반, "용기 있다"는 놀라움 반이었습니다.
사실 예산은 제 고향입니다. 어릴 적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마을의 공기와 흙냄새가, 서울에서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청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더 큰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흐름 속에서, 나는 거꾸로 로컬에서 기회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지역에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가득하다는 걸, 조금 멀리 떨어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마을의 역사, 네모반듯한 논밭, 어르신들의 구수한 삶의 방식, 그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들판의 풍경. 이 모든 것이 다른 어디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짜 로컬 콘텐츠 아닐까요.
전입신고를 마치고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들 눈에는 제가 그저 예쁜 손주처럼 여겨지나 봅니다.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며, 얼른 아이부터 하나 낳으라고 성화입니다. 육아가 힘들면 마을회관에 맡겨만 두라고 합니다. 온 마을이 함께 키워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그 농담 섞인 환영사에 괜히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예산군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글쓴이가 재구성한 표
작년 한 해 봉산면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가 고작 1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지역의 인구 감소와 침체 정도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마을의 미래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위기의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 형, 누나들과 뛰놀던 마을은 이제 조용한 적막만이 감돕니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사람들의 온기와 관계의 밀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최연소 세대주로 마을총회에 참여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견고한 에너지를 목격했고, 마을 주민들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성숙한 지역 사회의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새롭게 만들어갈 이야기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마을의 막내로 살며 지역의 언어를 몸으로 익히는 중입니다. 로컬에도 다채로운 삶의 방식과 소중한 관계 자산이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예산에 내려와 창업한 고향경험플랫폼, '고로컬'의 슬로건처럼, 진짜 로컬의 매력을 전하고 싶습니다.
Your Passport to Local Won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