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소유 Aug 31. 2024

역대급 대실수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투명인간이 되었다..

"에이 썅."  

갑자기 뒤에서 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수희 과장이다. 품질분석 담당 고참이다. 사무실에서 까칠하기로 유명한 골드미스 과장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벌써 과장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서 누락 없이 진급했으니 그럴만하다. 흰 피부에 깊은 눈, 각도기로 측정해서 올린 듯 높은 코, 붉은 입술의 조화는 전체적으로 어색하게 만들어진 인공미가 보인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사원인 내게 막말을 하고 있다.  

“이봐요, 고철수 사원. 문구열 씨 어디 갔어?”  

그녀는 내 사수인 문구열 과장보다도 입사 선배다.  

“파견 준비로 회의 갔어요.”  

“에이 썅, 잠깐 내 자리로 와봐요.”  

정 과장 제품을 담당하고는 유난히 그녀와 부딪힐 일이 많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자주 불려 갈 줄 몰랐다. 그녀의 주된 업무는 제품 담당자를 불러서 문책하는 일이었다.  

“이봐, 철수 씨. 이거 제품 왜 이따위야?”  

“아니, 제품이 이따위인 게 제 잘못인가요?”  

나도 이제는 참지 말고 할 말은 해야겠기에 맞서서 대답했다.  

“뭐야?”  

[탁!]  

그녀는 마우스를 책상 파티션에 던졌다.  

[쾅! 쾅!]  

그리고 키보드를 주먹으로 쳐댔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내가….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제품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수율이 이 모양이냐고!”  

“그거는 제가 모르죠. 저는 제품 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철수 씨가 그게 할 말이라고 생각해요? 방금 수율 회의 다녀왔는데 저수율 전량 폐기 처리해야 하게 생겼어. 그거 다 폐기하면 수율이 5%나 빠진다고…. 우리 목표 수율이 몇 프로인 줄 알아요?”  

“92% 아닌가요?”  

“그거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 지금 수율이 88%야. 이 정도면 말이 안 되는 거라고!”  

물론 양산하는 제품으로는 말이 안 되는 수율이긴 하다. 분명히 저수율 대부분을 차지했던 미세한 균열 불량 때문일 것이다. 수율이 내려간 원인이 균열 불량이라는 사실도 생산부에 알고 지내던 인맥으로 알아냈다. 그게 아니고서는 90% 수율을 유지했었다. 지금 이렇게 대폭 떨어진 수율은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 과장 그녀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깨진 줄 알아?”  

“균열 불량 때문에 일시적이라고 회의에서 말씀하셨나요?”  

“그것을 어떻게 단정 지어서 말해.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발생할지 모르는데! 그러니까 원인 공정을 빨리 찾으라고!”  

사실 원인 공정까지 찾는 일은 수율을 담당하는 그녀의 업무다. 그 업무에 대해서 본인이 감당을 못해서 애꿎은 내가 지금 당하는 것이다.  

“아 짜증 나네! 정말.”


“왜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이야?”  

변진섭 차장이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 정 과장은 나랑 답답해서 일을 못 하겠다고 변진섭 파트장에게 하소연했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붙이며 수율이 내려간 문제가 마치 내가 문제인 것처럼 말했다.  

“야, 그렇다고 얘가 뭘 안다고 들들 볶냐? 좀 이따 문구열 과장 오면 얘기해 봐.”  

웬일로 변진섭 차장이 내 편을 들어준다. 변진섭 차장 덕분에 잠깐 속이 시원했다. 정 과장은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가서 내던져버린 마우스와 키보드를 정리했다.  

“철수, 너는 TTR이나 빨리해. 생산부에서 난리도 아니다. 지금 뭐 하냐?”  

역시 그의 목적은 다른 업무였다. 그의 생각은 품질보다는 생산에 가깝다.  

“저수율 분석하고 있어요.”  

“야, 쓸데없이 이미 죽은 애들을 왜 봐. 죽은 자식 부랄 만져봐야 소용없어. 빨리 TTR이나 해. 1차 TTR 끝내고 신제품 준비도 해야지. 너 할 거 쌓였다.”  

“이거 문 과장님과 정 과장님이 시켜서….”  

“야, 걔네들이 위야? 내가 위야?”  

“물론 차장님이 위죠.”  

“그러면 내 말 들어야지. 쓸데없는 일은 적당히 하고. 너 진급도 해야지. 그것만 해서도 안 될 거야. 그럼 수고해라.”  




몇 달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고 지겹게 야근하며 매진했던 TTR을 완료했다.  

“철수야, 수고 많았다. 적용이 조금 늦었지만, 고생은 했고 이후 품질 관리는 잘 좀 해줘.”  

변진섭 차장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TTR의 영향인지 제품의 품질이 안 좋은 것인지 저수율이 더 많아졌다.  

“에휴, 이봐, 철수 씨. 지금 품질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 안 해요?”  

정수희 과장은 늘 내게 잔소리했다. 게다가 문구열 과장이 파견을 나가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구열 과장이 파견 간 제품팀으로부터 연락이 자주 왔다. 다행히 문구열 과장의 일이나 혹은 문구열 과장에게 연락 온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고객사가 생겨서 제품 프로그램을 분리 운영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관련된 상품팀과 영업팀 사람들도 언제나 바쁘다. 그 바쁜 일들은 제품팀과 설계팀에 그대로 넘어온다. 제품팀은 테스트 조건에 맞춰서 코딩을 진행하고 설계팀은 상품에 맞는 공정 조건을 설계한다. 코딩 결과인 소스 코드는 테스트 그룹으로 전달되고 설계에서 만든 공정 조건은 연구소를 거쳐 생산부로 전달된다. 테스트 그룹과 생산부의 공통점이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둘 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 존재하고 있다.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은 꼬리 칸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욕을 먹는 것도 꼬리 칸 사람들이다. 머리에 있는 사람들이 탁상공론을 하는 동안 꼬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난다. 심지어 머리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하거나 가볍게 말한 한마디가 꼬리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배터리 업계에는 그것이 더 심하다. 심각하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상품팀에서 어떤 고객 조건을 정의하면 제품팀에서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한다. 다음날 그 조건은 또 바뀐다. 또 밤샘 작업이 예정된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어떻게 해서든 조건을 맞춰낸다. 제품팀의 일이다. 맞춰낸 조건은 곧바로 테스트 그룹에 전달된다. 테스트 그룹은 생산설비에 적용한다. 언제나 적용이 매끄럽지는 않다. 제품팀도 사람이기에 실수한다. 한 개의 오타는 테스트 그룹 실무자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메일을 열어보니 문구열 과장의 메일이다.  

[제목 : 고철수 사원, 소스 코드 다시 확인 바람.]  

[철수야, 양품 불량 판단하는 부분이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해. 하지만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어. 그냥 조금 이상한 거 같아. 너 제대로 한 거 맞아? 품질 실험 넉넉하게 하고 적용한 거지?]  

메일은 이렇게 왔다. 수신인에는 나만 들어있지만, 참조인에 내 주변인들을 모두 넣었다. 마치 사람 모아놓고 한 사람을 면박 주듯이 메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그는 실제 회의에서도 사람 모아놓고 내게 면박 주는 것을 즐기던 사람이다. 메일은 여러 번 왔다.  

[제목 : 철수야, 요즘 수율이 몇 프로 나와? 수율에 집중해.]  

[제목 : 고철수 사원, 제품팀에서 내일 새로운 조건을 줄 거야.]  

[제목 : 철수야 왜 메일에 답장을 안 하니]  

심지어는 이런 메일도 왔다.  

[제목 : 철수야, 퇴근했어?]  

참조인에는 늘 여러 사람이 들어있었다. 이런 수준의 메일은 내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던지 그것도 불편하고 번거로우면 메신저를 하면 될 텐데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쓸데없이 많은 메일을 보내서 이것저것 묻고 따지는 상황이 불편하다.  

“구열이 쟤는 쓸데없는 메일을 왜 저렇게 많이 보내냐?”  

변진섭 차장이 말했다.  

“꼭 예전에 어떤 차장님 보는 것 같네요.”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나?”  

“찔리세요?”  

“내가 언제?”  

“변 차장님 말고 옆집 조 차장님요.”  

“아하. 그 양반은 워낙에 유명하지.”  

테스트 2팀의 2 파트장으로 10년을 넘겨 있다가 새로 구성된 테스트 3팀 팀장으로 발령받은 조병진 팀장은 예전에 아주 유명했다. 아직도 유명한지도 모르겠다. 듣기로는 퇴사 유발자로 유명했다. 생산부의 퇴사 유발자들이 생각났다. 조병진 팀장 그는 조금 다른 성향의 퇴사 유발자라고 들었다.  

“조 차장님 때문에 10명은 퇴사했잖아요.”  

“그렇게나 많았나?”  

“저희가 같이 업무를 안 해봐서 그렇지 제 동기 한 명도 진작 퇴사했어요. 하긴 변 차장님은 경력도 비슷하니 부딪힐 일이 없죠.”  

“애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한 건데?”  

“자료를 많이 만들라고 시킨 데요.”  

“얼마나 시키길래 그래.”  

“불량 현상 100개 뽑아오라고 하는 건 보통이고, 그 내용을 엑셀에 정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파워포인트에 넣어서 보기 좋게 그래프로 만들라고 하잖아요.”  

“뭐야? 그거 하나 하려면 온종일 걸리겠네.”  

“그걸로 끝나면 말도 안 하죠.”  

“뭐야? 또 있어?”  

“저희 테스트 항목이 100개가 넘잖아요. 그거 항목별 불량률을 뽑아서 그래프로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불량률 높은 항목에 대해서 이유를 찾아야 하고, 불량이 없는 항목은 일부러 불량을 만들어서 제품이 잘 걸러지는지 확인한 자료를 만들어야 해요.”  

“뭐야 일이 끝이 없네. 근데 저거 수율 분석 프로그램으로 조회되는 거 아니야?”  

“조 차장은 그것으로 조회된 것을 못 믿어요. 항상 직접 뽑아서 만든 것을 믿어요.”  

“그걸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꼼꼼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요. 미련한 거죠.”  

“구열이가 조 차장 밑에서 몇 년 있다가 오더니, 그거를 그 양반에게 배워 왔던 거구나.”  

나 역시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고가 터졌다.


“박 과장님, 저 드릴 말씀이….”  

“어? 뭐야 갑자기. 무섭게. 너가 이렇게 말을 걸어온 적이 없었는데.”  

“역대급 대실수를 해버렸습니다.”  

난 박상군 과장에게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달 전에 TTR 버전을 생산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문제는 아마도 이때부터 발생했다. 특정 테스트 항목의 불량을 불량품으로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특정 항목을 테스트하지 않고 정상으로 출하시켰다. 불행 중의 다행인 점은 그 불량률이 0.01ppm도 안 되는 수준이다. 만개 중에 한 개도 안 나오는 정도의 비율이다.


“야,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지금 고객사에서 어쩌면 불량 한 개는 생겼을 수 있다는 거잖아. 이거 변 차장님 하고 정 팀장님에게 말해야 할 수준인데.”  

그는 역시 윗선에 일러바치는 것 외에는 수습해 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수는 사고가 되어 윗선에 보고되었다. 곧바로 변진섭 차장과 정동환 팀장이 듣고 회의실을 잡고 나를 불렀다. 그들은 내 앞에서 사고 경위와 경과를 다시 듣고 한숨을 쉬었다. 회의실에는 정동환 팀장과 변진섭 차장, 박상군 과장, 나 이렇게 넷이 모였다.  

“야, 이거는 제품 프로그램으로 한 번만 돌려봤다면 찾는 건데.”  

정동환 팀장이 말했다.  

“철수 사원이 일을 좀 무언가 아쉽게 한다는 생각은 했는데.”  

변진섭 차장이 말했다.  

“야, 지금 벌어진 일은 일단 우리끼리만 알자. 철수 너는 그 프로그램 얼른 몰래 롤백(과거 버전으로 되돌림) 하고 2차 TTR에서 제대로 검증하자. 일단은 불량이 나오기 전에 그게 제일 급한 것 같다. 명심해. 이거 꼭 우리끼리만 알아야 해. 밖으로 새어나가서 품질보증팀 귀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냥 끝장이라고 생각해야 해. 알았어?”  

정동환 팀장이 말했다.  

“네? 네….”  

모두는 힘없이 대답했다. 팀장은 역시 팀장이다. 그는 이미 벌어진 사고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사고를 수습하는 문제에 초점을 집중했다. 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마도 나중으로 미룰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새 팀장이 사고 수습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는 사실이다. 본인의 실수는 물론이고 선후배들의 실수를 모두 덮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만드는 선수였다. 심지어 그룹장의 실수까지 덮어주곤 했다. 실수는 덮고 잘한 것은 과장해서 보여준다. 그 능력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보이는 외모에도 무척 신경을 쓴다. 50대로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통이 좁은 청바지를 입는다. 거기에 상의는 늘 단추가 많은 셔츠를 입는다. 소매를 살짝 걷어 올려서 전완근을 뽐내는 것은 기본이다. 신발은 늘 갈색 구두를 신고 있다. 평범한 디자인은 아니고 덧대어진 가죽과 수많은 실밥이 만든 다양한 문양이 있는 구두다. 마치 서부 시대 카우보이의 구두처럼 보였다. 머리는 파마를 해서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그는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옷차림과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옷을 과하게 입는 중년의 아저씨같이 보인다.

 



사고는 팀장이 지시한 대로 조용하게 수습되었다. 무섭게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수습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달라진 점이 있다. 팀의 동료들이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팀장도, 선배도, 후배도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투명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알기 힘들다. 짐작건대 나 빼고 회의를 하거나 단체 메신저를 받은 그것처럼 분위기가 이상하다. 고철수 사원 근처에 있지 말라고 단체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기분이 그렇다. 그런데도 계속되는 반복 업무는 두통을 유발한다. 정시 퇴근을 고수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이다. 누구 하나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저 또 실수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만 하고 있다. 나의 실수가 알게 모르게 팀 내부적으로는 소문이 퍼져서 실수했던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것도 대형 실수를 독단적으로 만들었다고 과대하게 포장되어 소문이 퍼졌다. 더불어 실수를 묻어주는 대가로 직책자들과 모종의 대가가 있었다는 헛소문이 퍼졌다. 이렇게까지 헛소문이 퍼진 것은 정훈이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형 사실 나도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 내년부터는 잘하자.”  

“와….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렇게 같은 팀 사람을 투명 인간, 병신 취급을 하냐…. 죽고 싶다 정말…. 여기서도 겉돌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난 패배자인가 봐….”  

“형 괜찮아? 형 내가 볼 때,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래? 정말 그래야 할까?”  

“형 여기 더 있어 봐야 내년에 또 진급 안 되고 계속 누락할게 뻔하다. 형만 힘들 거 같아서 그래.”  

 



계절은 어느덧 추운 겨울이 되었고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과감하게 그동안 했던 고민을 얘기하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테스트 그룹으로 와서 경험했던 일들부터 해서 지금까지 잘못 꿰어진 단추를 다시 맞추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팀장을 보자 다시는 여기서 맞추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곧바로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하려고 마음먹었다.  

“팀장님 저 다른 팀으로 보내주세요. 생산부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다시는 여기 분위기를 견디기 벅차서요.”  

“그래 잘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도 일을 어렵게 하는 것 같더라. 내 생각에 생산부로 돌아가는 것은 지금까지 했던 일이 아깝고, 내가 그룹장 권한으로 곧 조직개편을 하면서 새로운 분석 전담팀을 구상 중이거든. 거기로 가자.”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 술술 말한다. 저렇게까지 방향을 제시하는데 반박하기는 힘들다. 마치 내가 팀을 옮겨달라고 말할 경우의 수에 대해서 미리 조건문을 만들어서 바로 출력하듯이 말하는 모습이다. 인사평가는 평범한 등급을 받았고 진급은 예상대로 또 누락되었다. 이제 7년 차 사원이다. 한 번의 그 실수가 컸다. 그 하나의 큰 실수로 인해서 열두 달 동한 해왔던 일들을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다. 새해 첫날에 맞춰 테스트 1팀에서 테스트 4팀으로 팀을 옮겼다. 정동환 그룹장 겸 팀장은 곧바로 그렇게 처리해 줬다. 테스트 1팀에서 3년을 고생했는데 테스트 1팀에서는 그 어떤 송별회도, 수고 많았다는 한마디도 없었다. 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테스트 그룹은 소폭의 조직개편이 있었다. 정동환 그룹장 2년 차의 체제에 맞춰서 체질 개선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칭 세계 초일류 테스트 그룹이 되기 위한 목표를 만들었다. 학회와 박람회에서 보고 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혁신기술 과제라는 이름으로 모두 실행하려고 계획했다. 사실 이름만 거창하고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임원 계약 연장을 위한 광팔이에 불과하다. 임원이 2년 계약직이 되면서 임원들은 2년 차에는 재계약을 위해 뭐든 만들려고 한다. 정동환 그룹장은 테스트 1팀 팀장에 변진섭 차장을 보임하고, 테스트 4팀 팀장에 조병진 차장을 보임했다. 테스트 2팀과 3팀도 만들어서 입맛에 맞는 팀장을 보임했다. 신입사원과 경력사원도 적극적으로 채용하며 테스트 그룹을 거대 그룹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내실 없는 문어발 확장이다.  

 



“어 철수 왔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조립팀 김 선배 알지? 나 10년 전에 그 선배랑 같이 일했었어. 너 얘기 많이 들었다.”  

김윤태 과장이다. 평소에 복도를 오가며 내게 잘 인사를 해준 선배다. 인상이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짙은 눈썹에 면도를 했음에도 양 볼에 수염 자국이 가득하다. 입술은 매우 두껍다. 외모는 정육점에서 도축하는 사람처럼 험상궂고 선이 굵게 생겼지만 목소리와 성격은 외모와 다르게 여성스럽고 부드럽다. 게다가 내 예전 인맥까지 미리 알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사람은 역시 외모와 다르게 알고 봐야 한다. 문득 김민 선배가 잘 지내나 궁금하다.  

“철수 씨 왔네요? 어때요? 어색하죠? 지내다 보면 나아질 거예요."  

승윤호 대리다. 2살 어린 2년 선배다. 잘생겼다. 키도 훤칠하고 신체 비율이 제일 좋다. 긴 팔다리, 각진 얼굴, 날카로운 눈매는 운동을 잘할 것 같은 외모다. 충청도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조금 느린 것 말고는 이 팀에서 일을 제일 잘하기로 유명하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이 팀의 막내 임요한입니다. 이름이 요한이에요. 저의 아버지가 목사님이라 이름이 이렇습니다만…. 만족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처럼 생겼다. 딱 교회 오빠의 모습이다. 노란 피부에 갈색 뿔테안경을 써서 사람이 더욱 노랗게 보인다. 막내치고는 좋은 언변을 갖고 있다.  

“철수야, 우리 팀 큰 어르신에게 인사하러 가자.”  

김윤태 과장님이 내게 말했다.  

“네 팀장님과는 먼저 인사 나누고 왔어요.”  

“아니 팀장님이 아니고 테스트 그룹에서 제일 어르신이 우리 팀에 계시거든.”  

“네 혹시 상무님?”  

“아니, 저기 창가에 보일 듯 말 듯 흰 머리카락만 보이는 저분이야. 얼른 가자.”  

그렇게 김윤태 과장과 이동했다. 그 자리에는 어떤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그 어르신은 흰머리에 갈색 피부, 그리고 흰색 셔츠에 갈색 면바지를 입은 말끔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나 외모로 봐서는 임원 같았다.  

“이분은 우리 팀 이우현 부장님이셔.”  

팀의 부장님이셨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요. 철수 사원? 이름이 참 정겹네..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잘 지냅시다.”  

그동안 겪어본 권위적인 부장들과는 그 분위기가 달랐다. 어찌 보면 절에서 만나는 스님 같은 분위기랄까. 뭔지 모르는 외유내강의 분위기가 풍겼다. 부드러움의 결정체를 가진 분이었다. 10년 전부터 부장님이었다는 소문과 함께 윗선에 밉보인 일이 있어서 10년째 직책을 맡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광팔이 자료 만들기를 거부하고 묵묵히 본연의 업무만 수행하는 습이 있어서 좋은 평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테스트 4팀에 새롭게 둥지를 트게 되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일은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 그리고 테스트 4팀에 오게 된 난 없었던 일을 만들고 이상한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전 14화 나는 강제 희망을 당하기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