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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Aug 25. 2024

나는 강제 희망을 당하기 싫다.

내 희망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인이다!

박상군 과장은 문구열 과장을 상대하기 귀찮은 듯 한숨을 쉬며 현진영 대리와 강정혜 사원을 데리고 비어있는 회의실을 찾아갔다.  

“에잇…. 저 녀석은 언제나 저런 식이야….”  

문구열 과장이 혼잣말로 말했다.  

“철수야, 팔봉아, 우리도 회의실 하나 잡고 들어가서 우리의 미래전략을 얘기하자.”  

우리는 3 회의실에 모였다. 이곳은 내가 작년에 테스트 그룹에 오기 위해 면접을 봤던 회의실이다. 그때 태준영 팀장과 변진섭 파트장을 만났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실감이 안 났다. 여전히 비좁은 회의실이다. 네 명이 앉으면 가득 차는 느낌이다. 옆방에서 말소리가 울린다. 아마도 박상군 과장의 멤버는 2 회의실에 모인 모양이다. 2 회의실은 넓고 쾌적하고 안락한 곳이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유일하게 비어있던 비좁은 3 회의실에 모였다.  

“박상군 저 녀석은 전에부터 맘에 안 들더라고….”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문구열 과장은 지난 몇 년간 박상군 과장이 업무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유리한 과제를 쏙 빼갔던 지난 얘기를 했다. 박상군 과장은 가족 핑계를 대며 언제나 칼같이 정시 퇴근을 하지만 성과는 늘 좋다. 다른 동료들이 야근하며 만들어둔 자료를 종합해서 본인의 자료로 만드는 능력이 좋다. 문구열 과장은 시간을 갈아 넣으며 업무를 하지만 막상 공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성과는 별로 없다. 성과를 박상군 과장이 모두 가져가 버리니 얄미울 수밖에 없다. 그 성과는 연말 인사평가와 연봉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우리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온갖 수고와 번거로움은 결국 필요에 의한 거야. 그것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 너희들 생각은 어때?”  

“뭐 어느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죠.”  

김팔봉 사원이 대충 대답했다.  

“어느 정도가 아니고 반드시 견뎌야 해.”  

문구열 과장은 한 30분 일장 연설을 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지만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무튼, 철수 너는 이제 RMA 업무를 강정혜에게 넘기자.”  

문구열 과장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분명했다. 연차에 맞는 업무를 하면서 본인의 성과가 될 업무를 해야 한다. 따라서, RMA 업무 같은 잡무는 후배에게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너는 RMA 업무 1년 했으면 많이 했지. 신입사원이면 조금 더 하라고 하겠지만, 너는 경력사원이나 마찬가지야. 그게 비록 생산부 3년 경력이지만, 어쨌든 경력은 경력이지. 너 벌써 5년 차야. 대리 진급도 해야 하고, 5년 차답게 좀 더 어려운 일을 해야지.”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어느덧 5년 차 사원이다. 언제까지 인정받기 어려운 업무를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문구열 과장 역시 눈에 띄기 위해서 본인의 업무를 내게 넘겨주고 조금 더 돋보이는 제품을 맡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세대 제품을 맡고자 하는 욕심이다. 차세대 제품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지만 그것을 하면서 고생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한다. 그도 결국에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자 희망했다. 게다가 이것은 문 과장의 고도의 전략이다. 강정혜 사원과의 갑을 관계를 만들어서 박상군 과장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대화를 마무리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박상군 과장의 멤버는 2 회의실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직도 회의 중이었다.  


“변 차장님, 할 말이 있어요.”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어, 문 과장 뭔데.”  

문구열 과장은 변진섭 파트장에게 업무 분장에 대해서 말했다. 나로부터 강정혜 사원에게 RMA 업무를 넘겨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의 논리로 설득했다.  

“그건 그렇네. 하지만 강정혜 사원 멘토에게 얘기를 해봐야지.”  

“박상군한테요?”  

“그래 맞아, 그래도 걔가 멘토인데 박 과장 말 들어봐야지.”  

“또 엄살 부릴 텐데요. 그냥 변 차장님이 지시하듯이 얘기해 줘요.”  

“너 왜 이렇게 예민하냐? 무슨 일 있었어?”  

평소에 침착함의 대명사였던 문구열 과장은 내가 보기에도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 보였다. 그 무렵 때마침 박상군 과장 멤버가 회의실에서 나왔다.  

“박 과장, 그 저기 말이야. 강정혜 사원 요즘 뭐 해?”  

변진섭 파트장이 회의실에서 나오는 박상군 과장을 불러서 말했다.  

“네? 그냥 공부하죠. 제품 설명서 보거나 코딩 사례 보고 있죠.”  

“그것도 그것 나름 중요하지만, RMA 업무를 주고 업무 수행하면서 공부하라고 하자고.”  

“아니, 인제 와서 그 쓸데없는 일을 우리 애를 주자고 하는 거예요? 짬 처리도 아니고 이게 뭐예요?"  

박상군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계속 짬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듣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야, RMA가 뭐 어때서?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해봐야지 나중에 어려운 것도 이해하는 거야.”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선배, 말은 바로 해야죠. 쉬운 것이 아니고 지저분한 일이잖아요.”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야, 그 지저분한 일을 철수가 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철수가 하기 전에는 팔봉이가 했잖아. 너 언제까지 너가 키우는 애들은 좋은 제품만 주려고 하면서 싸고돌래?”  

“에이 선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제가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야, 야, 너희들 왜 그래. 왜 쓸데없는 것으로 논쟁이야.”  

변진섭 차장이 둘을 말리며 말했다.  

“몰라요. 이게 다 변 차장님이 우리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문구열 과장은 애꿎은 변진섭 차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갑자기 나한테 왜 그래? 나도 몰라 너희들이 알아서 해.”  

변진섭 차장은 손사래를 치며 밖으로 나갔다.  

“선배, 정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알겠어요. RMA 인수인계 진행하시죠. 그 대신에 조건이 있어요.”  

박상군 과장은 RMA 업무에 대한 지난 5년간의 이력과 현재 남아있는 문제들을 정리해서 업무 인수인계 공유회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박상군 과장은 본인이 RMA를 안 본 지 10년이 넘었고 RMA로 넘어오는 옛날 제품에 대해서도 경험이 부족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벌써 RMA에서도 실적으로 얻어낼 부분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내가 봐도 이번에도 큰 노력 없이 남이 정리해 준 자료를 보고 알맹이만 받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그래 알았어. 철수야, 잘 들었지? RMA 업무 인수인계 공유회 할 것을 자료로 준비해. 저 녀석의 성질을 보면 아마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내가 중간중간에 자료를 같이 봐줄게. 일단 만들어보자.”  

결국에 숙제는 내게로 떨어졌다. 내가 제품을 받을 때는 그런 구체적인 자료나 공유회 없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왔다. 이력에 대한 자료나 경험은 지난 1년 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김팔봉 사원과 이전 담당자를 찾아서 예전 자료를 구해보기 시작했다. 몇 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RMA 제품도 여전히 많이 접수되었고 문구열 과장에게 배우는 업무도 많아지고 있어서 자료를 집중해서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  


문구열 과장에게는 주로 그가 담당하는 제품의 저수율과 품질 불량에 대응하는 업무를 배웠다. 문구열 과장이 담당하는 제품은 현재 잘 나가는 제품이지만 완성도가 떨어졌다. 한 가지 불량을 잡으면 새로운 불량이 발생했다. 불량을 누더기처럼 틀어막고 있었다. 문구열 과장은 어딘지 모르게 점점 불안해 보였다. 그 불안을 해소할 구멍이 필요했다.  

“우리 파트 오래간만에 커피나 한잔합시다.”  

문구열 과장이 우리 파트를 소집했다. 모두 카페로 모였다.  

"몇 달 만에 다 같이 커피 한잔 하는 거냐? 크크.”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저는 팔봉오빠랑 자주 마셨는데용? 크크.”  

강정혜 사원이 눈치 없이 말했다.  

“야. 눈치 어디 갔냐?”  

김팔봉 사원이 말했다.  

“내가 모여서 얘기하자고 한 거는 다름이 아니고 내가 파견 가게 되었거든.”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선배 우리 버리고 어디로 도망가요? 같이 가요.”  

박상군 과장이 농담하듯이 모기 목소리로 말했다.  

“야, 뭐 어디 좋은 데 가냐? 그 차세대 제품 미리 공부하러 개발팀 가는 거야.”  

문구열 과장은 그의 목적대로 차세대 제품을 공부하러 개발팀에서 2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 방향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을 나를 가르치며 파트장과 팀장을 설득했다. 차세대 제품은 지금까지의 배터리 제품 구조가 혁신적으로 바뀐 제품이다. 걱정은 되겠지만 문구열 과장으로서는 성과를 만들고 진급을 하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였다.  

“와 재밌겠다.”  

현진영 대리가 말했다.  

“야 너는 일이 재밌냐?”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재밌죠. 이게 사람보다 나아요. 얘는 죽어라 파면 결국에 되거든요. 근데 사람은 죽어라 파도 안되더라고요."  

현진영이 말했다.  

“어머, 선배님 누구 괴롭혔어요? 그러다 선배님 징계 해고당해요.”  

팔봉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여자 친구 만들기가 너무 어렵더라고, 나 결혼도 겨우 했어. 내가 얘기 안 했냐? 소개팅을 100번은 한 것 같다.”  

현진영 대리가 말했다.  

“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선배 말투가 변진섭 차장님 말투 닮아가네요.”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아무튼, 그래서 내 업무 대부분을 철수에게 넘기려고 해. 이의 있나?”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아, 결국 그 얘기하려고 한 거네요. 뭐, 철수가 옆에서 늘 봤으니 제일 잘할 것 같네요. 그리고 철수도 내년엔 진급해야지.”  

박상군 과장이 귀찮은 듯 말했다.  

“철수 선배가 그 많은 일을 혼자 떠맡을 수 있을까요?”  

팔봉이가 말했다.  

“제가 봐도 어려울 것 같아요.”  

강정혜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파견 가기 전에 매일 오후 한 시에 우리끼리 회의를 했으면 해.”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그렇게 매일 오후에 파트 회의가 시작되었다. 대외적인 말은 업무 공유 회의라고 올려두었지만, 회의에서 진행되는 주요한 안건은 딱 한 가지다. 내가 문구열 과장의 업무를 잘 대응하고 있는지 모두의 감시와 확인을 받는 목적이다. 한마디로 내가 업무를 잘하는 것인지 매일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문구열 과장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내게 일을 모조리 넘기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할 말은 다 했고 모두 별일 없지? 그럼 이 정도로 마치고 자리로 가자. 철수 너는 잠깐 더 남아서 얘기 좀 더하자.”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가자 가자, 우린 들어가자. 얘들아.”  

박상군 과장은 혹여라도 본인에게 일을 줄까 싶었는지 빠른 속도로 일어나서 사무실로 달아났다.  

“왜들 저렇게 급해? 철수야, 너는 이제 업무에 조금 압박이 있을 거야."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압박이라면 이미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내가 맡을 제품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어서 앞으로 확인해야 할 불량품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와 중에 생산을 두 배로 하기 위해서 모두가 한 번씩은 하는 공유설정과 테스트 시간 단축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너는 생산부에서 왔으니깐 수율이 뭔지 알지? 불량이 많으면 수율이 낮은 것이고 불량이 적으면 수율이 높은 것이야. 즉, 저수율은 수율이 낮은 것이고 불량이 많다는 얘기지. 이렇게 불량이 많은 자재는 자동으로 진행이 멈추게 설정되어 있어. 제 맘대로 출하되도록 내보내지 않는 것이지. 그게 저수율이 잡혔다고 말하는 거야. 이 제품 수율은 정 과장님이 담당하셔 수율이나 불량품 모르는 것은 정 과장님에게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은 같이 결정해야 해.”  

“제품 하나만 맡아도 해야 할 일이 많네요.”  

“다들 이 정도는 원래부터 하고 있었어. 너가 몰랐을 뿐이야.”  

“자동화는 어렵나요?”  

“무슨 자동화야. 그나마 장비가 테스트해 주니깐 사람은 결과를 보고 문제없나 확인해야지.”  

“그 확인하는 것을 자동화하기 어렵나요?”  

“난 자동화를 안 믿어. 결국에는 사람이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해.”  

저 인간 빨리 파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회의는 정말 매일같이 진행되었다. 예상대로 철저하게 내가 업무를 잘하는지 크로스로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회의 진행은 주로 그가 했다. 나는 그렇게 제물이 되고 있었다.


“이봐요, 철수 씨 변 차장 어디 갔어요?”  

태준영 팀장이다. 그의 안색이 왜인지 모르게 좋지 않았다. 피부색이 검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가와 입술의 살이 떨리고 있었다. 식은땀도 흘리고 있다. 한때 악수를 청하며 여유 있었던 팀장의 모습은 지금은 온데간데없었다.  

“저기 회의실에 들어갔습니다.”  

“저기…. 내가…. 내가 좀 찾는다고 전해줘요.”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변진섭 파트장과 현진영 대리가 내년의 혁신 과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먹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집중하며 대화 중이라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른다.  

[똑똑]  

“어 철수 사원,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인데 왜?”  

“팀장님이 지금 부르시는데요?”  

“뭐? 아 또 그 양반 요즘 왜 그렇게 나를 찾아 이상하네.”  

변진섭 파트장은 급하게 회의실을 정리하고 현진영 대리와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팀장님 찾으셨나요?”  

“변 차장 그…. Sony RMA 어떻게 되었습니까?”  

팀장이 거의 그럴 일이 없는데 오늘 이상하게 RMA에 관해 묻고 있다. 보통 RMA 같은 잡무는 팀장이 챙겨 볼 일이 없다. 팀장은 RMA의 진행 세부 사항을 확인했다. 변진섭 파트장은 고객사인 Sony에서 보내온 제품 불량이 재현되어서 고객사에서 테스트 항목을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는 상황을 말했다. 더불어 현재 품질보증팀 팀장이 허락하지 않고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뭐라고? 거기 팀장 그 녀석이?

 담당자가 철수 씨라고?, 지금 나랑 같이 품질보증 그 누구냐…. 김상구 팀장에게 갑시다.”  

“네??”  

“아니, 팀장님. 왜 RMA에 갑자기 이렇게까지….”  

변진섭 파트장이 말했다.  

“이건 좀 아니잖아요. 지금 빨리 갑시다.”  

팀장과 나는 어색하게 품질보증팀 사무실로 걸어갔다.  

“철수 씨 근데 성대 나왔다고 했죠?”  

팀장은 갑자기 걸어가며 내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전공이 뭐였는데?”  

“전자·전기 했습니다.”  

“내 직속 후배네…. 나 성대 전자과 출신이거든. 그게 21세기 들어서면서 전자·전기로 통합했더라고.”  

“아…. 그렇군요.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크크. 난 팀장이지만 썩은 동아줄이야…. 언제 밖에서 식사나 한번 합시다.”  

팀장과 걸어가며 대학 생활과 그 시절 꽉 막힌 교수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어느덧 품질보증팀 사무실에 도착했다. 품질보증 팀원들은 분주해 보인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전화를 하거나 자료를 만들고 있다.  

“아이고 팀장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품질보증팀 민경훈 대리는 급하게 나와서 우리 팀 팀장에게 인사했다. 민경훈 대리는 품질보증팀의 살림꾼이다. 품질 문제가 생기는 일들에 대해서 도맡아 정리하고 처리하고 있다. 남자답지 않은 흰 피부에 큰 눈과 오뚝한 콧날의 그의 외모는 미소년을 떠올리게 잘생겼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팀장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머리숱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다.  

“김상구 팀장 어디 있지? 같이 간단하게 얘기 좀 합시다.”  

김상구 팀장은 구석의 팀장 자리에서 그의 의자를 거의 뒤로 완전하게 젖히고 낚시 관련 잡지를 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요즘에 낚시가 유행인가?”  

태준영 팀장이 그의 옆으로 가서 말했다.  

“에잇. 깜짝이야. 이게 누구신가. 태 팀장 아니야?”  

김상구 팀장이 말했다. 김상구 팀장은 희끗희끗한 스포츠머리에 커다란 두상을 갖고 있다. 큰 눈에 매부리코 모양이고 얇은 입술에 귀는 작다.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엉망진창이다. 전형적인 욕심 많은 얼굴이다.  

“김 팀장, 내가 그래도 선배인데 말을 그딴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요?”  

태준영 팀장이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와서 시비예요?”  

그는 보던 잡지를 접으며 말했다.  

“Sony RMA 건 관련한 실험 말인데…. 그거 왜 못 하게 하는 겁니까?”  

태준영 팀장은 바로 본론을 말했다. 김상구 팀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회사의 사규를 말하며 지금 생산량으로는 실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회사의 규칙은 만개의 생산량이 있을 때의 기준으로 불량률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실험해야 하는 제품은 월 생산량이 몇천 개도 안 되는 상황. 고객사는 하루 걸러서 연락이 오고 있는데 사규대로 평가하면 평가에만 몇 달이 걸릴지 모를 상황이다. 그렇다고 계획되어 있는 생산량을 테스트 그룹에서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퍽]  

“으악….”  

김상구 팀장은 갑자기 민경훈 대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너 인마, 생산량 관련해서는 말 없었잖아.”  

“팀장님, 그게 제가 다 부연 설명해 드렸었는데요….”  

“내가 지금 없는 말 지어냈다는 거냐? 너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내년에 중국 공장이나 가라. 이놈아.”  

“네에? 팀장님. 저 결혼도 해야 하고 어머니도 모셔야 하는데 갑자기 그렇게 하시면 곤란하죠….”  

“그건 너 사정이고 아무튼 이거 진행해.”  

“네….”  

“자 태 팀장님, 이제 되었지요?? 가시는 길 살펴 가세요.”  

김상구 팀장이 능구렁이처럼 말했다. 태준영 팀장은 두 주먹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서 연말이 되었다.  

“야, 조직개편 떴다.”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연말이면 늘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미리 소문이 돌아서 대부분 그대로 발령이 되지만 뜻밖의 내용에 놀라는 사람도 많다.  

“뭐야 우리 그룹 이렇게 많이 바뀌어?”  

박상군 과장이 말했다.  

“에? 우리가 언제 바뀐 적이 있던가. 우리 테스트 그룹은 거의 10년째 유지 중인데.”  

문구열 과장이 말했다.  

“선배 이거 봐봐요. 6년간 집권했던 그룹장 끝났나 봐요. 에에??!! 그룹장 자리에··· 제품팀 정동환 부장이 올라가네요.”  

“뭐야??!! 그것보다 왜 우리 팀장은 공석이야?”  

조직개편 결과는 그룹장과 태준영 팀장 둘이 해임으로 나와 있었다. 그룹장은 해임 및 계약 종료로 회사를 나가야 한다. 태준영 팀장은 해임 및 기획팀 팀원으로 전배 발령이 나왔다. 새로운 그룹장과 팀장 겸임으로 제품팀 정동환 부장이 임명되었다. 모두는 놀랐다. 모두는 그동안 태준영 팀장, 아니 이제 태준영 부장이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첨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묵묵히 프로그램을 만지며 코딩을 하고 그렇게 파트장을 하고 팀장까지 올라왔다. 그렇게 T1 공장 테스트 그룹에서만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낸 테스트의 대부님이다. 다들 생각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차기 그룹장은 태준영 부장이라고. 그러나 몇 달 전 제품팀에서 테스트팀으로 파견 왔었던 정동환 부장이 부천공장의 제품팀에서 이 팀으로 전배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그룹장을 겸하는 팀장 자리에 앉았다. 정동환 부장과 태준영 팀장은 입사 동기다. 하지만 그들의 회사 생활은 철저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정동환 부장은 그룹장뿐만 아니라 그 위에 전무들에게도 아첨을 잘했다. 주말마다 골프 라운딩을 잡았다. 그 결과로 정동환 부장에게는 뒤늦게 석사학위 취득의 기회가 생겼고 2년 만에 취득했다. 그러면서 테스트 그룹에서만 수십 년째 우리와 동고동락했던 태준영 부장이 밀려났다. 좀 더 정확하게는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결과는 오늘의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 발표였다. 적용 날짜는 야박하게도 바로 내일부터다. 회사는 야박하다. 회사는 생각만큼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개인이 어떤 회사 생활을 했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는지 쌓아 올린 인간관계가 어떤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줄을 잡고 있는지와 당장 1년의 실적을 보고 내년에 쓸만한 인재를 골라낸다. 그리고 그에게 맞게 조직에 변화를 준다. 최근에 금성그룹 이사회의 이사진이 바뀌고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바람이 어느새 내 옆으로 왔다.  


[지이이잉]  

[띠링]  

[띵동]  

여기저기 문자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 역시 문자를 받았다.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저녁 모임. 참여는 자유. 목적은 태준영 팀장 송별회 참여자는 답장 부탁.]  

이렇게 짧게 문자가 왔다.  

[참석 가능합니다.]  

난 바로 답장을 보냈다. 뒤숭숭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저녁 회식 장소로 삼삼오오 이동했다. 공식적인 회식이 아니기에 마음 맞는 사람끼리 조용히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회식 장소는 세라믹 삼겹살이라는 이름의 동네 삼겹살집이다. 세라믹으로 만들었다는 불판이 테이블마다 있었고 좌식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단체 예약을 해둬서 그런지 다른 손님은 거의 없었다. 태준영 전 팀장과 일했던 사람이 그래도 몇 개 파트 합쳐서 수십 명인데 그에 비해 참석자는 조촐했다. 테스트 그룹의 팀장과 파트장들은 아무도 안 왔다. 안 온 것인지 눈치를 보며 못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그룹장 정동환 부장에게 오와 열을 맞춰야 한다. 태준영 팀장은 이제 뒷방 늙은이였다. 하지만 내게 태준영 팀장은 테스트 그룹에서의 첫 팀장이고 나를 받아준 팀장이기에 특별한 팀장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학교 직속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에게 알 수 없는 정을 느꼈다.  

“여러분들 와줘서 고마워요.”  

태준영 팀장은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며 말했다.  

“팀장님 한잔 드리겠습니다.”  

난 그의 옆으로 가서 말했다.  

“아…. 철수 씨…. 고마워요…. 내가 밥 한번 먹자고 했던 것이 이렇게 먹게 될 줄 몰랐네요….”  

회식의 분위기는 내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뭔가 침체한 분위기였다. 태준영 팀장도 어느새 한껏 취해있었다.  

“여러분, 내가 말이야. 여기 금성전자 몇 년 차인지 알아요? 게다가 내가 수십 년째 테스트만 했어. 난 테스트 쟁이라고. 요령 한번 부린 적도 없어. 누구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아첨한 적도 없어. 그저 묵묵히 테스트만 생각했다는 말이야. 한눈판 적이 없어. 근데 그 결과가 이거라는 말이야.”  

“어휴…. 팀장님 술 많이 하셨네요. 기획팀 가서 다시 팀장 하셔야죠. 그리고 금의환향하셔야죠.”  

“이봐 철수 씨, 지난달에 내가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 알아? 인사팀에 불려 갔어. 난 설마 그룹장을 시켜 주려고 하나 싶어서 조금 흥분되어 인사팀 사무실에 들어갔지. 근데 나한테 대뜸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뭔가요?”  

“회사에서 나보고 나가래. 명퇴하라는 얘기야 2년 치 챙겨준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게 기본급의 2년 치라서 얼마 안 되거든 여하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뭐…. 뭐라고요? 그 명예퇴직인지, 희망퇴직인지 그거 말씀이신가요?”  

“어 그거 맞아 그 노란 봉투를 건네더라고. 봉투 안에 있는 서류에 사인하면 그대로 퇴직 절차가 진행되는 거야.”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고도 한다. 정년이 되기 전에 스스로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둔다. 정년에 다다를수록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라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인사팀의 목적은 조금 더 인건비를 절약하는 거다. 그렇게 인건비도 아끼고 인력 관리도 한다. 회사는 알게 모르게 고연차들에게 그것을 권유하고 있다. 더군다나 임원 인력 후보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인력과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태준영 팀장은 핵심 인력도 아니고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가깝다. 그동안 태준영 팀장이 겪은 직장 상사들 팀장, 그룹장들은 팀원을 위해서 바른 소리를 하고 묵묵히 일만 하는 그를 늘 배제했다. 그런 그가 팀장이 되었을 때 팀원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그는 팀장이 되어서도 철저하게 팀원들의 편이었다. 임원들이 바라보는 팀장으로는 아니꼬웠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방적인 해고는 어렵다. 합당한 귀책사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직원과 합의점을 찾아서 퇴직을 권유한다. 그렇게 희망퇴직을 권유한다. 이름이 희망퇴직이지만 희망하지 않는 사람마저 희망하는 것처럼 만들어서 퇴직을 권유한다. 명예퇴직이라는 용어도 어불성설이다. 불명예 퇴직에 가깝다. 직원은 누구나 명예롭게 퇴직하기를 바란다. 이런 권유를 받는 퇴직은 누구에게나 불명예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태준영 팀장은 마음이 상했다.  

“내가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 모를 거야. 그 인간들이 지난달에 몇 번을 불러대더라고 업무는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앞으로 회사에서 하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어떤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여러 가지로 모욕을 주더라고 심지어 그 칼잡이를 하는 인사부장이 나보다 10년은 후배야.”  

"어휴…. 팀장님…. 그간 마음고생이 많으셨군요.”  

“내가 순순히 그 노란 봉투에 사인할 것 같아? 내가 누구야 나 태 팀장이야. 난 버틸 거야.”  


안타깝게도 태준영 부장의 버티고자 하는 의지는 채 한 달을 못 채웠다. 다른 선배에게 전해 들었다. 기획팀의 일반 팀원으로 좌천된 그는 사무실 자리조차도 복도 끝자리로 배정되었다. 기획팀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팀에서 남는 끝자리로 좌석을 배치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 그의 자리를 기웃거렸다. 팀장 시절에 제일 안쪽 창가 자리에 있다가 알지도 못하는 팀으로 가서 제일 바깥쪽 자리로 가서 앉게 된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으로 몇 주간 직무교육을 받았다. 교육 기간에는 휴가, 조퇴 사용 금지에 핸드폰도 반납해야 한다. 온라인 직무교육의 내용은 형편없다. 인생의 2막 준비하기, 이력서 쓰는 법, 회고록 쓰기 등 어렵고 재미도 없는 데다가 마치 회사 생활을 정리하라는 식의 교육 내용이다. 게다가 교육받은 내용을 매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기획팀장과 인사부장에게 메일로 보내야 한다. 그나마 직무교육을 하는 동안은 다행이다. 태준영 부장의 1년 선배는 직무교육을 수료하고 면벽 수련을 했다고 들었다. 면벽 수련은 달마 대사가 했던 수련으로 세속을 장벽으로 차단함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번뇌에 휩쓸리지 않는 청정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수련이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면벽 수련은 다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온종일 벽을 마주 보고 앉아있어야 한다. 주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듣거나 조롱을 당하는 것은 보너스다. 제일 견디기 힘든 인사팀의 최종 조치라고 한다. 대상자에게 전봇대에 올라가는 일을 시켜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통신사의 행위라든지 명예퇴직을 계속 거부한 50대 부장을 사설 해병대 캠프로 교육 보낸 것이라든지 템플스테이를 보내서 단체로 명상 수련을 시킨다든지 그런 것들에 비하면 금성전자의 직무교육은 양반이다. 그래도 아직 어디 밖으로는 보내지 않는다. 태준영 부장은 몇 주간의 직무교육이 끝나면 면벽 수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결국 몇 주간의 직무교육만 끝내고 노란 봉투에 사인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안 좋은 예감을 받은 태준영 부장은 사실은 미리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침내 직무교육 기간에 Sony 코리아의 영업 본부장으로 이직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잘 풀린 경우다. 사실 대부분의 퇴직 부장님들은 치킨집을 하거나 다른 자영업을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대기업의 부장님들은 막상 사회로 나오면 할 게 없다. 그래도 미리 재테크를 잘해온 사람들은 건물주가 되어서 월세로 먹고살며 진정한 인생의 2막을 즐긴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부장님은 결국에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또는 그저 방황하는 황혼기를 보내게 된다. 수십 년 가까이 회사에 헌신했지만, 헌신짝 취급을 받고 버려지는 그 상실감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태준영 팀장님은 마음 건강, 몸 건강 챙기며 잘 지내시기를 바랐다. 결과적으로 지금 이렇게 배터리 대기업 직원이지만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부장님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퇴직을 희망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예감이 든다. 그러한 시간이 가까워질 듯한 예감이 든다. 나는 그런 강제 희망을 당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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