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휴직 167일째,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다시 잠들어버려 결국 늦은 기상을 했다. 몸 상태는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듯해서 목과 코가 덜 불편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하루 종일 창문을 닫고 살았는데 오늘은 대기 상태가 나아져서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점심으로 얼큰한 라면을 먹고 근처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죽음에 대한 영화였는데, 아내는 울면서 깊이 공감했지만 나는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져서 그런지 차분히 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화려한 CG가 이전에 실망했던 다른 영화보다 오히려 완성도가 높게 느껴진 점이었다. 상영 중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서 끝나자마자 연락했더니 다음 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간다고 했다. 승진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그의 생각이 나와 비슷하다는 점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이후 직장 상사에게 전화해 복귀 인사 겸 연말 인사를 전했다. 반년이라는 긴 시간이 생각보다 훌쩍 흘러가버렸다. 더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으로 양념 치킨을 시켜 아내와 둘이 빠르게 흡입했고, 그 맛에 감탄했다. 치킨을 먹으며 회사 동료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자꾸 자기 팀으로 오라고 하며 이천에서 출퇴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밤에는 오랜만에 성당을 찾았다. 신부님은 여전히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미사에 참여하면서 마음 한편이 고요해지는 느낌이었다.
병가휴직 168일째, 일출을 보려고 이른 아침에 나섰지만 사람들이 몰려 길이 막혀 결국 돌아 나오는 길에서 차 안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어머님과 함께 아침 미사를 드렸는데, 이틀 연속 이른 미사 참석에 몸이 피곤해서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의외로 유명한 지역구 국회의원도 미사에 참석했는데, 아마도 지지율을 고려하고 있어서일 것이라 짐작했다. 미사 후 처가에서 먹을 것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오후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깨어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어머님이 주신 육개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위닝, 슈로대, 용과 같이 시리즈를 번갈아가며 즐겼다. 한밤중이 되니 뭔가 먹고 싶었지만 아내는 귀찮아하는 눈치라 직접 챙겨 먹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었는데, 내일부터 병원 일정이 있어 피곤하겠지만 복직을 앞둔 휴직 말기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병가휴직 169일째, 새벽까지 잠이 안 와 새벽 네 시 넘어서야 잠들었는데 아침 여덟 시에 억지로 일어나니 피로감이 심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기다렸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서 한참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약을 처방받고 다른 병원으로 이동했는데, 이곳 또한 대기자가 많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복직을 앞두고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돌아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신간 몇 권을 빌렸다. 읽고 싶은 책은 끊임없이 생기는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어머님이 준비한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저녁에는 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기대 없이 간 집에서 살치살과 치마살이 고소하고 부드러워 의외로 훌륭했다. 공짜로 얻어먹는 즐거움에 대한 미묘한 죄책감과 만족감이 교차했다.
병가휴직 170일째,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일찍 자니 아침 기상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들러 기형 검사 결과지를 받았는데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초음파에서도 건강한 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 활발한 아이를 보며 안심했다. 아내가 원하는 문화센터 강좌도 두 개나 등록했고, 조리원에 예약 상담도 마쳤다. 이후 차량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아내와 시내 데이트를 했다. 식사로는 매콤한 국물 맛이 인상적인 고추만둣국을 맛보았는데, 꽤나 중독적인 국물 맛이었다. 머리를 다듬으러 들른 미용실에서는 친절한 서비스와 정성 어린 가위질로 만족스러웠다. 대형 아트박스 매장도 들렀는데 구경하다 시간이 훌쩍 지나 차를 찾으러 갔다. 깔끔해진 차를 몰고 마트에 들러 빈 곳간을 채우며 마트 쇼핑에도 익숙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집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다시 연결해 게임을 즐겼고,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사와 입주 청소에 대한 의견 차이로 아내와 잠시 신경전이 있었지만 차분히 설명하고 양보해 결국 분위기를 풀었다.
병가휴직 171일째, 일찍 일어나려는 노력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적응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집을 계약하는 날이라 마음이 분주했다. 부동산에서 집주인 가족을 만나 계약을 마쳤다. 상대방 가족은 직업도 번듯하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덕분에 계약 절차가 부드럽게 마무리되었다. 근처에 온 김에 처가에 들러 어머님, 아버님과 식사도 함께했고 깨끗이 다듬은 머리를 보며 두 분이 흐뭇해하셨다. 추어탕을 즐기는 내 취향을 존중해 아내도 한 그릇 먹었는데 아기가 생기니 새로운 맛을 시도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골프 연습장에 가서 공을 쳤는데 예상보다 공이 잘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산부인과 경품으로 얻은 카시트를 찾으러 갔는데 박스가 커서 트렁크가 꽉 찼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회사 동료와 저녁을 함께하며 그의 팀으로 갈지 다시 고민을 나누었다. 그는 바로 파트장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나는 그 따뜻한 배려에 감사했다. 새로운 업무 환경에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차올랐다.
병가휴직 172일째, 일찍 일어났지만 다시 잠이 들어 버렸고, 결국 오전 내내 책을 읽다가 잠깐씩 졸았다. 그래도 한 번 일찍 깨는 습관을 들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점심 때는 집 근처 만두백반집을 찾아가 친절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 돌아와서는 아내와 함께 대청소를 진행했다. 청소기와 걸레질로 방 안 곳곳의 먼지를 정리하니 몸은 피곤했지만 상쾌한 느낌이었다. 땀을 흘린 뒤 서둘러 다시 공을 치러 나갔다. 전반부에는 공이 잘 맞다가 후반부에는 조금 지쳤지만 그래도 개운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책을 펼쳤다. 이번에 읽는 책은 소위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내용이라 과거의 나였다면 신비로워했겠지만 지금은 한 발짝 물러나 관찰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병가휴직 173일째, 일곱 시 조금 넘어 일어나 건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편을 보고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느꼈다. 어디에서든 전쟁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오늘은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 위해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수업에 주말반으로 처음 참여하는 날이었다. 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고, 명상과 주역 수업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주역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우왕좌왕했던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집에 와서는 따뜻한 집밥을 먹고 독서에 몰두했다. 책에서 영혼과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아내가 핸드폰과 TV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신경 쓰여 한마디 했더니 살짝 서운해했다. 하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병가휴직의 긴 여정 속에서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일상의 작은 활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울증과 불안감을 극복해 나갔다. 매일 조금씩 리듬을 되찾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복직을 앞둔 시기에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자 병가휴직의 마지막 날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고, 나는 다시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며 흘러간 시간들을 회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