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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주 May 30. 2021

[성평등교육] 야, 너두 할 수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교사의 이야기 -1-


어린이를 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 시선이 있다. 어린이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보는 관점도 있고, 모든게 서툴러 어른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존재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이 양극단이라면 우리는 항상 그 사이에서 진동하며 어떤 태도가 어린이를 위한 최선인지 늘 고민한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동인 경우, 교사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은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개입이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왜인지 아동을 믿거나 혼자 해낼 수 있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동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대신해주는 보호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혹은 소중하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에게 조금 도전적이거나 힘든 일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경우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움들에 ‘사랑’이나 ‘책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아동에게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주거나 스스로 해 볼 기회를 차단하면 그 어린이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 사고가 발달할 때, 인지 부조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어려움이나 도전이 필요하다. 도전과 어려움이 없으면 어린이들은 자신만의 새장에 쉽게 갇힐 수 있다.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나갈 생각을 못하는 새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며 그만큼의 자존감만 획득한다. 어른들의 선의가 아동에게는 독이 되는 순간이다.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다 오히려 필요 이상의 개입을 하여 어린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어린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일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어린이들의 성공 경험을 빼앗는 것과 같다.



그런데 심지어, 어린이들에게 행하는 이 도움(개입)마저도 성별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는데, 수년간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교실 상황을 녹화하여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DAVID & MYRA SADKER, 『Still Failing at Fairness-How gender bias cheats girls and boys in school and what we can do about it』



책에서 교사들은, 자신이 평등에 헌신하고 있으며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동영상을 본 일반인들은 선생님의 행동에 딱히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연구진의 설명을 듣자, 안 보이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놀라워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차별할 의도가 없었던 교사들일지라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도움’과 ‘개입’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존재했다. 직접적인 행동이나 피드백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났는데,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개념은 ‘쇼트 서킷 (Short-circuit)’이다. 이는 여자 학생들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기 전에 어른들이(교사가) 끼어들어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교사들은, 남자 학생들에게 ‘자신의 일을 스스로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피드백을 해주지만, 여자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 학생들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해낼 수 있도록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와 같은 말을 했다. 즉 ‘부드러운 방해’를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관찰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비디오 테이프를 어떻게 넣나요? 도와주세요.’라고 했을 때 여자 학생에게는 설명 없이 바로 비디오를 넣어주지만 남자 학생들에게는 이것을 기계에 어떻게 넣고 재생시키는지를 알려주고, 남자 어린이들이 직접 해보도록(성공하면 칭찬하는) 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국의 교실 상황 속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관찰된다. 예를 들어 햄스터 로봇을 활용한 수업을 할 때 남자 학생이 못하면 보통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잘 못하면 어느 정도 기다려주는 경향이 많은 반면, 여자 학생이 잘 하지 못할 때에는 어느 정도 설명을 하다가 그래도 못하면 직접 해주는 경우가 그것이다. 모든 교실 장면을 통계 내보지는 않았지만, 여자 학생들은 대체로 그들이 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영역인 신체 활동이나 기계 다루기 부분에서, 남자 학생들은 요리실습 등의 영역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교사들이 남자 학생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피드백의 질도 다른 경우***가 많다. 즉, 여자 학생들에게는 쉽게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지워지고 교육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이러한 행동은 당연히 호의에 근거한 도움이다. 하지만 그런 호의 속에는 편견이 숨어있기도 하다. 교사들은 여자 학생들은 징징대니까, 위험한 경우 상처가 나면 특히 더 안되니까, 여자 학생들은 왜인지 기계와 같은 남성적인 일은 잘 못할 것 같으니까 등의 이유들로 여자 어린이들의 일들을 ‘직접’ 해준다.


**연구에 따르면 보통 여자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을 2배 더 기다려준다고 한다. (위의 책)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5명에게 피드백을 하는 상황에서 피드백을 받은 4명은 남자아이, 1명은 여자아이였다. 피드백의 제공 비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더욱이 피드백의 내용 측면에서, 남자 아이에게 제공하는 피드백은 칭찬, 수정, 비판과 대안과 같이 질이 높은 수준의 형태로 제공되며 더 많은 시간에 걸쳐 구체적이고 상세한 경향이 있었다. 반면 여자아이들에게 제공되는 피드백은 단지 “okay(수긍)”로 끝내는 경향이 많았다. (위의 책)


이 ‘부드러운 방해’가 반복되면 어린이들은 도움받는 것에 익숙하게 되고, 개중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혹은 도전하려는 태도는 잃어버린 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거나 조금만 해보려고 하면 ‘넌 다른 여자애들이랑 달리 나댄다.’고 하기도 한다. 어떤 어른들은 ‘여자애라 그런지 답답하다.’, ‘여자애라서 그런지, 손이 많이 가요.’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두고 마냥 여자 어린이들을 얄밉게만 보지 않아야 한다. 도움에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아동의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었다는 반증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사라면, 이 지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아동에게 진정으로 평등한 교육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자 어린이들의 팔다리를 묶은 채로 ‘노오력’의 문제라고 이야기해왔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이 주제와 관련된 경험이 있다. 나의 제자 A(여자 어린이)는 차분하고 공부를 잘하며, 전형적인 ‘참한’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수줍음이 많았고 평소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없었다. 수업 활동뿐만이 아니라 발표나 신체활동 등 다양한 도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자신을 의심했다.



그날은 과학 수업을 하고 있었고, 전기회로 만들기를 하는 중이었다. A는 회로 만들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A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나는 힌트를 줬다. 여러번 해 보던 A는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직접 해주지 않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였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힌트를 다시 생각해보고 도전해보라고 하였다. 서두르지 않고 다시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A는 결국 해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A가 나에게 편지를 전해주며 해주었던 말이 있다.



“학교 다니면서 제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많이 도전해본 적도 처음이에요. 도전해서 다 성공하거나 그런 건 아니긴 했지만 계속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그런 말은 학교 다니면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 좀 더 도전해보겠습니다.”



내가 평소 A와 나눈 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상세히 설명해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해 볼 수 있게 기다려주었을 뿐이다. 다만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 보일 때나 포기하려고 할 때는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한 번 더 해 보자고 이야기 했다.



내가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세 가지의 사항이 있다.


1.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2. ‘내가 할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기, 즉 ‘해봐야 안다’의 정신 가지기


3. 성공은 기쁘게, 실패해도 ‘해 보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기.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 속에서 배울 점 확실하게 챙기기



성별과 관계없이 많은 학생들은 낮은 자신감과 관련된 문제를 겪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남녀에게 ‘동등한’ 문제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이런 시행착오와 관련하여 남자 어린이들이 더 빠르고 쉽게 적응하는 경향을 보이는지, 여자 어린이들은 이 세 가지를 익숙하게 해내는 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지는 성인지 감수성의 시각에서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이 간극을 섬세하게 이해해야, 같지만 다른 문제가 되고, 해결을 위한 고민의 방향도 달라지게 된다.



작은 행동의 차이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성평등한 교육은 남자 어린이들을 버리고 여자 어린이들만 챙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동 모두의 성장을 돕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어린이들에게 행해지는 미묘한 차별과 다른 조건들을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성차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법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성평등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가 정비되어있다고 해도 그 속에 숨은 사람들의 관습적 행동들은 느리게 변화한다. 그렇기에 더욱 치열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주변의 수많은 A들을 발견하고, 공감하고,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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