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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Jan 20. 2024

당신에게는 '아몬드'가 있나요?

아몬드(손원평 저) 북리뷰



평범하지 않은 것을 불편해했다. 그게 나와 다르다면 더욱.

청소년 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여전히 불편하지만 어른들은 불편함을 숨기는 일에 더 익숙한 걸지도.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평범하다’ 혹은 ‘평범하지 않다’라고 결론짓는 건 섣부른 판단일지 모른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에게도 평범한 구석은 분명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는 어쩌면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손가락질과 찡그림이 난무한다.

살면서 그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서 '아몬드'는 내게 그런 순간들이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했다.



(지금부터는 책의 줄거리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소년 ‘윤재’의 이야기다.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의 크기와 생김새가 마치 아몬드 같다고 한다. 윤재는 이 아몬드 같은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은 ‘감정표현불능증’을 가지고 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살기 편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이리저리 휘둘릴 일 없어서 편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저 감정을 느끼지 못해 인생이 단조로운 것, 그 이상이다.

윤재는 기쁨, 슬픔뿐만 아니라 두려움, 공포도 느끼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서도 피할 줄 모른다.

'차가 오면 피한다'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본능조차 학습해야 한다.


그런 윤재를 어떻게든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우려 고군분투하는 엄마,

윤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할머니.

이 두 사람의 사랑으로 윤재는 가까스로 어느 정도 ‘평범해 보이는’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16세 생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묻지 마 살인으로 가족을 잃게 되고, 윤재는 홀로 남겨진다.

윤재는 그 끔찍한 장면을 보며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세상에 홀로 남아 ‘괴물’로 낙인찍히는 윤재.


윤재는 ‘또 다른 괴물’로 낙인찍힌 곤이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 윤재와,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만 표현 방법을 잘못된 방식으로 배운 곤이.

세상의 기준에서 도저히 평범할 수 없는 두 괴물은 편견 없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윤재에게는 남들만큼의 아몬드가 없다.

그래서 가족들이 눈앞에서 죽을 때도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의문이 남을 뿐이다.


왜 사람들은 눈앞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 기세가 너무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윤재를 괴물로 낙인찍으며 이야깃거리 삼는 사람들. 공감한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해가 될까 봐 나서지 않는 사람들. 타인의 불행을 이야깃거리 삼으며 수군대는 사람들.

이들은 과연 아몬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공감하지만 나서서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

공감이라는 감정은 잘 모르지만 올바르다고 판단하면 행동하는 사람.

어떤 게 선이고 악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느껴도 행동하지 않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는 윤재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 윤재는 감정은 모르지만, 진짜를 아는 사람이다.

위험에 빠진 친구 곤이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간다. 자칫하면 생명이 위급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하는 건 다 해주겠다'는 곤이에게 윤재가 하는 말은 진짜다.


네가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사과해 진심으로.
네가 날개를 찢은 나비나 모르고 밟은 벌레들에게도.


윤재는 자신과 다른 듯 닮은 곤이와 친구가 되어 감정을 배우고,

도라를 만나 처음 사랑을 배우며 점점 변한다.

윤재는 낯선 이 감정을 '가슴속에 무겁고 기분 나쁜 돌덩이가 내려앉았다'라고 표현한다.


"넌 착해. 그리고 평범해. 근데 특별해. 그게 내가 널 이해하는 방식이야."

생각이 사라진 머리에 맥이 뛰었다. 몸 전체가 북이 된 것처럼 울렸다.
그만해. 그만. 그렇게까지 안 해도 살아 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는 윤재 할머니의 말처럼, 도라는 윤재의 예쁜 구석을 발견하고 알려준다.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 선과 악. 우리와 그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대신에,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대신에,

공감을 무작정 강요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예쁨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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