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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Mar 20. 2022

초보에게 적합한 수채화 도구

종이, 물감, 붓

  그림 취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종이와 펜, 또는 연필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펜이나 연필로만 그리면 금방 싫증이 나버립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것저것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마카, 파스텔 같은 것들을 구입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펜들을 문방구에 갈때마다 하나둘씩 사모았습니다. 펜만해도 종류별로 투명 비닐필통 서너개에 담아 6리터 짜리 플라스틱 김치통을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거기에 10자루 내외의 만년필까지....


  이렇게 사모으게 된 큰 이유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하는 장황한 설명보다 직접 써보며 느끼는 것이 가장 속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비욕심도 한 몫 했구요.      

  어느 정도 도구에 대해 알기 시작했을 때에도 ‘장비욕심’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붓 하나를 사더라도 내야 하는 배송비가 아까워 ‘이 참에 이것도?’하며 주문한 것들도 상당합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쓸모가 있어보이는, 예를 들면 찰필용 사포, 드로잉 장갑 등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커다란 수납박스 두 개를 가득 채웠습니다. 초보 때 샀던 이 도구들을 죽을 때까지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이란 걸 알지만, 계속 또 다른 도구들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초보분들, 혹은 그림을 시작하고 싶으신 분들이 어떤 도구를 준비해야 하는지 질문하시곤 합니다.

‘(수채화에 적합한) 스케치북하고 물감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함께 그리는 선생님들 모두 다른 도구들을 추천해 주시는데요. 다 옳은 말씀입니다. 단지, 각자의 경험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다른 선생님들의 추천을 기억해 놓았다가 사서 써보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인터넷 검색을 해도 어려운 용어를 읽다가 더 혼란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채화로 나무, 하늘, 건물 풍경을 주로 그리는 저의 실패를 동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으실겁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도구들을 추려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 다 필요없고 그냥 초보자 키트처럼 묶어서 사면 좋겠어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굵은 글씨체만 잘 읽어봐 주세요.     


첫번째, 스케치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써본 스케치북은 100일 그리기를 끝냈을 때 선물받은 하네뮬레 드로잉 저널 A5 사이즈였습니다. 당시에는 수채화를 시작하지 않고, 펜드로잉만 하고 있었기에 잘 몰랐습니다. 5,000원 미만의 이름도 없고, 누런 색감의 값싼 중국제 스케치북도 사용해 보았습니다. 거기에 처음으로 딸아이의 신한 샤미물감을 빌려 수채화도 그려봤구요. 수채화를 처음 그릴 때라 좋고 나쁘다는 판단, 물번짐이나 색감 등을 비교할 종이도, 안목도 없었습니다.

[좌] 딸아이의 샤미물감과 붓을 빌려 처음 그려본 수채화 [우] 이름을 알 수 없는 중국산 스케치북에 윈저앤뉴튼 (+2색, 문교팔레트)으로 그린 영광 불교최초 도래지

  그러다가 제일 처음 구입한 것은 세르지오 몽발 트래블북 300g A5 양장패드였습니다.

구입 기준은 당연히 가성비를 기본으로 하고,

  첫 번째 ‘물칠을 많이 하는 수채화를 그려도 종이가 울지 않는 300g 이상의 종이여야 한다.’

  두 번째 접합방식이 스프링이 아니라 ‘책처럼 제본이 된 것이면 좋겠다.’

  세 번째 ‘뽀대나는 하드커버였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슬슬 현장에서 직접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해보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였으니까요.     

  종이의 거칠기를 나누는 세목, 중목, 황목의 개념도 잘 모를 때였습니다.

처음 사용한 것은 세르지오 몽발 트래블북 중목이었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가격이 12,000원에서 16,000원 사이이더군요.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제 막 수채화를 시작한 저에게는 딱이었습니다. 물을 많이 써서 한 참 하늘을 그릴 때라 물먹음도 좋았습니다.

  중간중간 낱장으로 그릴 때는 항상 1+1으로 판매되고 있는 캔손 몽발 수채패드(240X320mm, 300g, 12)를 사서 반으로 자른 후 사용했습니다. 아르쉬, 하네뮬레, 샌더스 워터포드, 띠아볼로, 아쿠아렐 라나, 아띠스띠꼬 등등의 여러 가지 종이를 사용해 보았는데요. 가격은 A4 1장당 1,000원 내외로 대부분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 중 최고는 아르쉬였습니다. 아르쉬 300g 중목 양장 트래블 수채패드 A5(135X210mm, 20)의 가격은 26,500원 선입니다. 추천 해드린 세르지오 몽발 트래블북보다 두 배 정도의 가격입니다. 색번짐과 물먹음이 좋고, 펜이나 만년필로 스케치를 할 때 ‘긁는 맛’도 좋아 오랫동안 아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수채화 물감은 처음에는 12색의 윈저앤뉴튼 고체물감을 구입해서 썼습니다.

이후에 원하는 색을 미젤로 골드 시리즈 튜브형 낱색으로 구입해 팔레트 케이스에 덜어 말린 후 철제팔레트에 채워서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체물감을 사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만 들은 상태였습니다. 어떤 브랜드의 물감을 사야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어떤 색 구성으로, 몇 개짜리 물감을 사야할지 막막했습니다.  한참을 알아보다가 가장 저렴한 윈저앤뉴튼 코트만 고체물감 포켓박스 12색 세트(17,500원 선)를 구입했습니다.

  지금이야 필요한 색으로 12색을 낱색으로 골라 팔레트를 채울 수 있지만, 처음에는 색을 섞어서 그림에 어울리는 색을 만드는 일-조색이 어려웠습니다. 수채화는 흰색 대신 물을 사용해 색을 조절하고, 갈색과 하늘색을 섞어서 검정색이나 회색을 만든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을 때였거든요.

 어떤 색감의 그림을 그리게 될지 상상도 못하는 초보일 때는 자기 입맛에 딱맞지도 않은 12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떤 색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경험을 주기에는 충분한 구성이었습니다.

[좌] 12색 문교팔레트의 칸을 제거하고 21색으로 채워 사용한 두번째 팔레트 [우] 지금은 24색 문교팔레트에 붓을 넣고 다닙니다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필요한 색깔들을 하나 둘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문교 철제팔레트 12색 (124X73mm, 4,200원선)과 필요한 물감을 낱색으로 구입해 팔레트케이스에 말려서 채웠습니다. 다음은 12색 철제팔레트의 철제칸을 제거한 후 24색으로 촘촘하게 채웠습니다. 마지막으로 24색(220X73mm, 6,000원선)의 철제팔레트에 짧은 붓대의 어반스케치용 붓과 함께 넣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3개월만에 제 물감 컬렉션은 이렇게 바뀌었고, 지금도 이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색을 사야할지는 그림의 장르(풍경, 인물, 정물 등)나 색감, 취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콕 찍어서 알려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도 물감 색깔의 이름도 못 외우고 있어서, 제가 사용하는 물감 구성도 겨우겨우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세 번째는 붓입니다. 야외에서 사용하기 편한, 15cm 이하의 짧은 붓대의 둥근 붓, 헤렌드 R-5200 (청설모) 8(13,800원 선)12(20,700원 선)와 세필 붓 두자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붓은 지금도 매번 실패하는 도구인데요. 붓 모양에 따른 사용 용도도 잘 모르고, 제조사마다 호수에 따른 붓사이즈도 달라서 써보지도 못한 붓들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둥근 붓, 평붓 외에 배경용 빽붓, 부채붓(팬붓), 꽃붗, 사선붓, 스텐실붓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제 새로운 붓은 더 사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붓은 다른 도구들보다 값도 비싸고 실패확률이 높은 도구이다 보니 허벅지를 찔러가며 참고 있습니다.     


 설명하고보니 첫 글에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니....’ 하며 배신감을 느끼실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제가 이럴까봐 수채화를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했거든요. 그래서 취미그림을 시작하고 1년 가까이 펜드로잉 위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덕분에 스케치가 탄탄하다는 칭찬도 듣고 있습니다만... 없는 도구가 없다는 칭찬(?)을 더 많이 받습니다. 쿨럭.


  이렇게 꽤 많은 도구들을 사게 된 이유는 제 성향 탓이 크기도 하지만, 다른 분들의 멋진 그림을 보면 어떤 도구를 사용하셨는지 묻게 되고, 그 도구만 있으면 저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모든 취미활동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합니다.     


  엊그제도 공구한 만년필을 들여와 감탄하며 써보다가 마눌님께 딱 걸렸습니다.

택배박스를 받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지만, 여전히 집사람 눈치를 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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