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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Apr 15. 2022

[그림책]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40대 기자 아저씨가 1년동안 취미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03314




저도 언젠가는 이경주 기자님처럼 그림에 관한 책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건데요...

지난 주에는 결국 주 1회 브런치 글을 업로드하자는 다짐이 깨져버렸습니다.

시샘과 부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읽은 책을 소개합니다.


‘오!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라니!’


‘어? 겨우 1년하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관심과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태로 쓴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한 재능 같은 것도 없이 꾸역꾸역 취미라고 그림을 하게 된 건 주변의 꾸준한 칭찬과 격려 때문이었다. 아내가 첫 학원비를 내버렸고, 화실 선생님은 (나는 분명 과장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칭찬을 지속적으로 해줬다. 그 결과 지금은 꽤나 열정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취미에 관한 글로 이렇게 책까지 내게 생겼으니 없는 열정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러고 보면 열정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다보면 무언가를 잘하게 되고, 그 이후에 열정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매번 취미를 찾고 결심하는데 그치던 저자에게 아내는 15만원을 쥐어주며 아이가 다니는 화실에 함께 나섭니다. 매주 금요일 항상 칭찬하고, 조언보다는 관심과 관찰을 표현하는 화실 선생님의 노련한 교수법, 그리고 가족들의 응원에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매일 퇴근 후에는 속옷만 입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뒹구는 것이 일종의 의식이라고 말하던 그에게 변화가 시작됩니다.


  저도 만 3년째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매일 1,2시간을 꾸준히 그렸습니다. 가끔은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만 1년 차일때는 아직 누군가에게 내보이려면 먼저 ‘이 정도면 됐지 이게 어때서?’하는 식의 자기암시를 해야 했습니다.


  처음 1년 동안에는 ‘형태력’이 가장 부족했습니다. 피사체의 외형을 베끼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니 금방 지쳐버리고 재미없어집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도구들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방법을 찾고, 그 도구들의 특징과 재미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돌고돌아 취미 그림을 그린지 1년이 되어서야 수채화 물감을 마련하고, 그 뒤로는 대부분 수채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취미의 본질을 ‘사소한 일에 집중하며 경쟁에서 꽤 긴 시간 눈을 돌리게 하는 것’으로 봤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일에 더욱 열정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러셀은 취미를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음식이나 텔레비전, 게임 같은 수동적인 자극이 아니라, 권태로움을 견디고 더 나아가 이를 즐기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주 금요일 화실에서 두세시간을 그리고 틈틈이 일상에서도 그림을 연습했다고 하지만, 1년 정도로는 ‘형태력’을 연마하기가 부족했을 겁니다. 큰 한옥집 전체를 그리기 보다는 그 집의 안방 문과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정도만 그리는 정도로 제한해야 덜 어색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겁니다. 부분을 자세히 그리는 것이 비율에 맞춰 전체를 그리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책에 흑백으로 삽입된 저자의 그림.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평론가’들은 ‘오’하는 감탄사보다는 ‘에게’하는 표정을 감추기 어려울겁니다. 하지만 저자처럼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행복’은 알지 못 할 것입니다.



  저는 화실이나 강좌를 듣지 않고 지루한 선 연습이나 명암을 표현하는 정육면체 그리기 등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등을 찾아가며 그저 비슷하게 그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는데요. 저자는 동네 꼬마 녀석들이 곁에서 ‘아저씨, 재미있어요?’하는 질문을 받으며 묵묵히 . 수채화나 연필, 아크릴화 등을 그렸습니다. 길게 말씀드린 것처럼 그림실력은 일천할 수 있으나, 그림을 그리며 이어가는 그의 ‘생각’들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조용한 평일 오전의 미술관에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던 저자의 생각은 유명한 미술작가들의 이야기를 알려 주기도 하고, 명심보감을 읽는 것처럼 교훈적인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농부가 호박을 보며 ‘신은 왜 연약한 줄기에 이렇게 큰 호박을 달아두었는가?’했단다. 또 ‘두꺼운 상수리나무에 왜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주셨을까? 했단다. 그러다 낮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이마에 떨어져 갑자기 잠을 깼더니 도토리였다. ’호박이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싶었단다. 불평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불평거리라는 의미다.



  그림이 안 그려질 때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것보다는 평안하게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잘 그리려고 노력하게 되는 ’그림‘ 취미가 아니라 ‘생각’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샤워를 할 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요가를 하기 위해 앉았을 때 불현 듯 이미지가 형상화돼 떠올랐다. 초기에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다면, 이제는 내면에서 느꼈던 하나의 감정을 꾸준히 기억해내는 것만으로 구상을 한다. 이런 루틴이 생기면 취미는 습관의 성격도 갖게 된다. 내 경우는 잘 그리는 것보다 잘 생각하는 것이 취미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다 그리고 나서는 어떤 것이 좋다거나 아쉬웠는지 글로 남기고 생각을 정리해보아야 겠습니다.



제주 삼성혈의 벚꽃



 

 저자의 말처럼 제게도 초보의 시간은 ‘기술’보다는 ‘지구력’을 키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에는 겸손하게 사양하지만, ‘꾸준히’한다는 칭찬에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나도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도 상대방에게 은근히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그림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다정함보다는 시니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림 그리는 거 재미있어?” 직장 동료가 물었다.
마흔 중반이 되자 직장 생활에만 집중하는 게 뭔가 허전하고,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한테는 재미있지. 그런데 너는 네가 재미있어 할 만한 것을 찾아야지.”
길게 말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짧게 말을 끊었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단 말이야. 일도 삶도 권태로워. 즐겁게 바쁜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찾을 수가 없네.”
이렇게 한숨을 쉬는 동료에게 “예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게 있어? 잘하는 거라든지”라고 물었다.
그는 “특별히 없어. 한번 뭐라도 배워볼까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곧 생기겠지”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아마 그는 쉽사리 취미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취미에 대한 몇몇 오해 때문이다.
우선 내경험으로 볼 때 취미는 재미있는 것을 찾으면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잘하면 재미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림을 시작할지 묻는 분들에게 저도 말은 ‘일단 그려 보세요’라고 다정하게 말하지만 저자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시작해야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겨둘 문장]


⦁그는 취미의 본질을 ‘사소한 일에 집중하며 경쟁에서 꽤 긴 시간 눈을 돌리게 하는 것’으로 봤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일에 더욱 열정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러셀은 취미를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음식이나 텔레비전, 게임 같은 수동적인 자극이 아니라, 권태로움을 견디고 더 나아가 이를 즐기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안 된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에 본인이 생각하는 다른 방법을 알려줄 때는 있다. 학생의 방법이 더 훌륭하다면 있는 그대로 아낌없이 칭찬한다. 화가란 경쟁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함을 지닌 사람들인 걸까.


⦁작가 : 작가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작가 대부분의 급여는 터무니없이 적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기술할 수 있는 자율성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정재승 교수가 말하는 창의력을 높이는 방법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자주 지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강연 등을 통해 모르는 분야의 정보를 얻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와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을 접하면 된다.


⦁요가의 기억나는 가르침 1. 피곤하다는 의미는 피가 곤하다(고단하다)는 의미다. 요가를 통해 피를 순환시켜라. 2. 목과 어깨에 힘을 빼는 것으로 요가를 시작하라. 3. 자신의 몸에 집중하라. 눈을 감으면 내 몸에 집중하기가 더 쉽다.


⦁“겨울에 군고구마를 큰 놈으로 2개만 사가는 겁니다. 인사하러 나온 애들 몰래 잠바 속에 넣고 숨겼다가 조용히 안방에서 아내에게 꺼내놓는 거에요. 그럼 아내가 애들도 나눠주자고 합니다. 그럼 나는 당신이 먼저라고 합니다. 아내를 먼저 위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사는 겁니다.”


⦁자세한 설명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필요도, 일부러 소리 높일 필요도 없다.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니까. 쓸데없는 말로 말빚을 늘리기 보다 말에 여백을 두는 법을 배우고 행해야겠다,


⦁“농부가 호박을 보며 ‘신은 왜 연약한 줄기에 이렇게 큰 호박을 달아두었는가?’했단다. 또 ‘두꺼운 상수리나무에 왜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주셨을까? 했단다. 그러다 낮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이마에 떨어져 갑자기 잠을 깼더니 도토리였다. ’호박이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싶었단다. 불평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불평거리라는 의미다.”


⦁“당신의 방으로 가라.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있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파스칼]


내가 취미로 미술을 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림은 침묵의 붓이다. 대상을 정하고 사색을 한다. 구상을 하고 표현법을 결정한다. 실패를 거듭한다. 한 장을 건지고는 뿌듯하게 바라본다. 어쩌면 거실 한 구석에 붙여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그림인지 누구에게도 변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 그림, 내 생각‘이라 하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길을 잃기 위해, 실수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늘 “같은 사진을 그리라고 해도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다, 색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아무리 자로 재서 비율을 맞춰 그려도 인간은 실수를 한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사진이나 AI의 영역에서 실수지만, 인간의 창조적 영역에서는 개성이 된다. 도화지 위에서 수만 번 연필을 놀리거나 붓질을 하는 동안 실수에 실수가 겹친다. 인생의 수많은 실수가 겹쳐 그나마 만족스럽다고 합리화 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우연의 힘은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여전히 호크니에게는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을 포착하는 감수성과 따뜻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작품이 좋은 이유를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이 좋은 이유를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선물했던 셈이다.


⦁스스로 알아가는 재미도 있을 테고 내 추억은 주로 내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너무 알려주려고만 한다는 아내의 지적도 있던 터였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걸 공감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고 스스로도 느끼던 차였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한 재능 같은 것도 없이 꾸역꾸역 취미라고 그림을 하게 된 건 주변의 꾸준한 칭찬과 격려 때문이었다. 아내가 첫 학원비를 내버렸고, 화실 선생님은 (나는 분명 과장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칭찬을 지속적으로 해줬다. 그 결과 지금은 꽤나 열정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취미에 관한 글로 이렇게 책까지 내게 생겼으니 없는 열정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러고 보면 열정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다보면 무언가를 잘하게 되고, 그 이후에 열정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직업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한다. 열정은 내 업무가 세상의 이로움을 위해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조망할 수 있을 때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듯싶다. 그러니 열정은 섣불리 청춘에게 갖추라고 말할 수 있는 선전물이 아니라 오랜 삶에서 묻어나오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외면해도 별 문제가 없고, 오랜만에 찾아도 첫 만남의 설렘이 불현 듯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취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그림 그리는 거 재미있어?” 직장 동료가 물었다. 마흔 중반이 되자 직장 생활에만 집중하는 게 뭔가 허전하고,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한테는 재미있지. 그런데 너는 네가 재미있어 할 만한 것을 찾아야지.” 길게 말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짧게 말을 끊었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단 말이야. 일도 삶도 권태로워. 즐겁게 바쁜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찾을 수가 없네.”


이렇게 한숨을 쉬는 동료에게 “예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게 있어? 잘하는 거라든지”라고 물었다. 그는 “특별히 없어. 한번 뭐라도 배워볼까 싶어서...”라고 했다.


나는 “곧 생기겠지”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아마 그는 쉽사리 취미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취미에 대한 몇몇 오해 때문이다. 우선 내경험으로 볼 때 취미는 재미있는 것을 찾으면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잘하면 재미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꾸준히 즐길 취미를 찾으려면 우선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스스로 잘한다고 자기최면을 걸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취미를 꾸준하게 즐기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완벽욕‘이다. 완벽함은 업무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취미에 그대로 적용한 뒤 자신의 시간표대로 되지 않는다고, 허점이 눈에 띈다고 실패로 간주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결국 실패하고 다른 취미로 옮겨가는데, 이는 원천적으로 성공과 실패같은 일상사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를 갖는 것이라는 본질을 잊은 행동이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내게도 그림은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게으름이 허용되고, 그리다 중도에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면 된다’의 영역이 아니라 ‘되면 한다’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오롯이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샤워를 할 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요가를 하기 위해 앉았을 때 불현 듯 이미지가 형상화돼 떠올랐다. 초기에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다면, 이제는 내면에서 느꼈던 하나의 감정을 꾸준히 기억해내는 것만으로 구상을 한다. 이런 루틴이 생기면 취미는 습관의 성격도 갖게 된다.


내 경우는 잘 그리는 것보다 잘 생각하는 것이 취미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선생님 역시 중년 남성의 때늦은 열성을 칭찬하면서도 ‘입시 미술’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목표는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고, 이를 가능케 할 정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법만 배우면 된다고 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자신의 작푸을 하나씩 완성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림은 감정을 쏟아 붓는 용광로의 역할을 했다. 분노에, 우울함에, 두려움에, 기쁨에,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으로 한참을 그리고 나면 평온함이 찾아왔다. 나이가 들면 주말에 산과 나무를 봐야 다음 주를 버틸 수 있다는 한 선배의 말처럼 다른 곳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다음 한 주간 일에 매진할, 이른바 열정을 되찾아준다. 끈기가 없어 취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건 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빼앗기는 경험과, 거기에서 나오는 효험을 느끼지 못해서인 듯하다. 효험이 있으면 엄청나게 쓴 보약도 금방 중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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