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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Oct 25. 2022

시작하는 일, 가장 어려운 일

"그림을 배워보려구요"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흔히 하는 말씀입니다.

배우지 마세요.

일단 낙서를 하세요.

여러 번 하세요.


'생각보다 어렵네. 엉망이야' 라는 생각이 들어도 마음 상할 일은 없습니다.

낙서니까요

그러다가 '어? 이건 좀 괜찮은데?' '다시 해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순간 그 친구가 찾아옵니다.

호기심, 그리고 흥미

시작할 때는 배워서 제대로 그리려는 생각은 뒤로 물려놓고 일단 호기심으로 시작해 흥미를 만들어 보세요.


오늘은 배우지 않고 제가 시작한 일을 말씀드릴께요.



항상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 바로 모든 일의 시작이다.

[제임스 캐시 페니]     


  지난 여름  한달 간 ‘랜선 모닝 크로키’에 참여했습니다. 이제는 혼자 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다른 분들과 연결된 상태에서 그리는 것이 ‘꾸준히’ 그리기 위한 저의 ‘디폴트’값이 된 것 같습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보고 참여했습니다.

참여자 모집이 끝나면 호스트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자를 초대해 줌(zoom) 주소를 공유합니다. 준비물은 크로키할 종이와 연필, 그리고 PC나 노트북입니다.

  한달 동안 평일 아침 6시 30분에 줌에 접속하면 호스트는 주제를 정해 인물 위주의 사진을 띄우고 타이머를 누릅니다. 10분 1장, 5분 2장, 2분 5장, 매일 30분 총 8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항상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 바로 모든 일의 시작이다.


  저는 인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림 초보일 때 딸아이를 그리다가 혼났거든요.

  이후에는 풍경에 자그마한 사람 한 명을 그려넣기가 싫더라구요. 존경하는 김효찬 작가님께서 인물을 배워서 그림에 추가하면 역동적으로 채울 것들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고 하셨는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광고를 보고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아의 카페그리기라는 오픈채팅방에서는 100일 그리기 시즌 2도 끝내고 한 숨 돌리던 참이었는데, 커피값 정도의 벌금규칙을 추가해 스파르타식 30일 그리기를 할 분들을 모집했습니다.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3년 이상 그림을 그렸지만 ‘꾸준히’ 그리는 것은 여전히 힘들거든요. 그리고 가볍게 인물을 인물 크로키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문구점에서 70쪽짜리 A4 사이즈의 양장 크로키북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제일 처음 그린 그림입니다.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더라구요. 30분동안 시간에 쫓기면서 그리고나니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습니다.  

  처음 10분짜리 크로키는 시간이 조금 여유있었나 봅니다. 전체적으로 그린 후 남은 시간동안 그림자도 찾아넣고, 그리기 어려웠던 부분은 다시 고쳐 그렸습니다. 그 다음 5분 크로키. 인체를 그려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힙니다. 전체적인 비율을 나눠야 하나? 팔 길이는? 그림에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2분 5장!

2분은 그런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5분짜리 그림 바로 다음의 2분 첫 번째 그림은 완성한 적이 없습니다.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더군요.


  6월 15일부터 7월 14일까지 총 20일을 그렸습니다. 두 번을 빠졌습니다. 하루는 출장으로 새벽 일찍부터 출근해야 해서, 하루는 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이 두 번째 늦잠으로 10분을 기다리다가 짜증이 나서 나와버렸거든요.

  다른 분들은 ‘그럴수도 있지요.’라며 괜찮다고 하셨을테지만 저는 그렇게하지 못 했습니다. 솔직히 ‘돈 내고 배우는 것’이라고 줌 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께 ‘의무감’을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은 아닙니다. 2만원의 참여비, 7,000원짜리 회원가입 쿠폰을 써서 가격은 저렴했습니다. 거기에 포상으로 80% 이상 참석을 하신 분들께는 선생님께서 5,000원짜리 쿠폰도 보내주시니 만원도 채 안 되는 돈입니다. 무엇보다 랜선크로키가 트라우마였던 인물 그림 습관들이기에 훌륭한 도구가 된 것은 사실이거든요.


  아마도 빠듯한 아침시간이 허투루 흘러가서 허겁지겁 출근하는 일이 생겨 불만이 쌓여있었던 것 같아요. 참여자분들이 대부분 시간에 맞춰 들어오지 않아 매일 5분 정도 늦게 시작했거든요. 실력을 늘리려면 계속 인물크로키를 해야 하는데 연달아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꾸준히 이어나가지 않으니 인물 그림의 실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20번, 160장의 인물 그림으로 분명 얻은 것은 큽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인물 트라우마를 깼습니다. 못 그려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조금씩 풍경에 인물을 넣어보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피에타 조각상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관찰하면서 인물과 동작에 대한 형태력이 더 깔끔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보다 더 긴 선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아래,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기본적인 선뿐만이 아니라 거꾸로 선을 그으며 빠르게 그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강사의 입장에서는 한 달동안 매일 아침 30분씩 대여섯명의 참여자와 함께 그리고 진행하는 것으로 10만원도 안 되는 강의료에서 플랫폼 수수료 떼고, 선물 증정하면 남는 것이 없을 겁니다. 그저 자신도 함께 꾸준히 그리면서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줌을 처음 써보는 분들에게 일일이 확인하고 알려드리는 일도 쉽지 않거든요. 저는 '그런 건 닥쳐서 어쩔줄 몰라하지 마시고 좀 사전에 셋팅이 어떤지 좀 인터넷 검색 좀 해보세요!... '라는 말을 목구멍 위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꾹꾹 누르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저의 이런 성격으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 좀 더 겸양의 덕을 쌓아야겠습니다.                              

이끌이 선생님께서 시작할 때 이런 멋진 명언들을 읽어주시고 시작합니다. (화면 안의 고양이는 선생님이 얼굴을 가린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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