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서 철학으로 가는 길

프랙털 : 닮은꼴의 무한 반복

by 마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최근에는 제법 재미를 붙여 수학 시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수학 시간에 열심히 굴러다니며 하나씩 배우긴 했나 보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에 겁먹고 힌트부터 얻으려고 옆에 있는 학생들의 학습지를 힐끔거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수업 시간에 주는 과제를 혼자 해결할 때의 맛을 조금은 안다. 수학 특유의 논리성과 명확성이 내 마음까지 단순하고 명확하게 만들어 주어 수학 시간에는 오롯이 수학에 집중한다.


<정삼각형이 무한 반복돼요.^^>

요즘 수학 시간에는 프랙털(fractal:자기 닮음 도형)을 이용하여 무한에 대한 개념을 배우고 있다. 프랙털이란 크기는 다른 닮은꼴이 무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수업 시간에는 프랙털 모형을 하나 받아 새로 생기는 모형의 넓이 합이나 길이 합, 혹은 모형의 개수 등을 찾는다. 크기는 다르지만 닮은꼴이기 때문에 모형과 모형 사이에는 일반화할 수 있는 공식이 생긴다. 그것을 찾아 몇 번째 도형의 넓이를 구하기도 하고 무한으로 갔을 때의 값을 찾기도 한다. 쉽지는 않지만 정확한 답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답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인문학 관련 공부만 했던 나에게 수학은 안전하고도 새로운 영역이었다.


예아트의 오빠는 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한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인생을 직선으로 만들어 풀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도 수학 문제를 찾지 않을 테지만 그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옛날 철학자들도 수학자들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답을 알 수 없는 철학적인 물음에 좀 더 명확하게 답을 하고 싶어 데카르트는 수학적 논리와 합리적 사고를 기준으로 삼았다. 수학의 깔끔한 맛을 잘 아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수학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꿈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의 희망이 되는 거였다. 처음에는 나도 까막눈이었다. 무엇을 더하고 곱해야 하며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수학이 너무 복잡해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써먹지도 않는 수학을 굳이 왜 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수포자의 희망이 되려면 일단 하고 봐야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학생들에게 수학을 못하는 영어 교사를 보여주었다. 학생들과 함께 수학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언젠가 수학에 흥미가 없어 하는 학생들이 내가 변하는 것을 보며 뭔가를 느낄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나도 수학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깔끔하고 냉철한 분위기가 수학의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3년 동안 수학 시간에 프랙털처럼 무한 반복을 했다. 닮은 듯 다른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궁금한 것들 사이에 있는 공식을 찾아 둘을 연결시켰다. 일반화된 공식은 프랙털이 아무리 무한 반복을 해도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하고 봤더니 언젠가부터 무한 반복의 힘을 조금씩 느꼈다. 그리고 그 속의 공식을 하나씩 찾아갔다. 스스로를 관찰한 결과 수학 시간에 옆 사람 것을 훔쳐보는 시간이 줄었고 수업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며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봐도 수학 문제는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되지 않았다. 관찰하고 증명하고 결론을 내는 과정이 재미가 있었다.


수학에 대한 공포가 줄어드니 수학과 철학을 연결하여 생각해보기도 한다. 공비(모형과 모형 사이에 줄거나 늘어나는 공통적인 비율)가 1보다 작을 때는 프랙털은 0으로 수렴한다. 반대로 공비가 1보다 클 때는 모형이 무한히 발산한다. 내 인생의 공비는 1보다 클까, 작을까. 나는 무한히 수렴하고 있는 걸까, 무한히 발산하고 있는 걸까. 불행히도 수학 문제의 답은 정확하지만 내 인생에 대한 답은 두루뭉술하다. 수렴하는 듯하다가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수학을 배우는 사람이니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관찰하고 증명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쁘고 완벽한 모형이 아니라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인생의 프랙털을 보고 싶다.

<고사리의 프랙털이 반갑다.^^>

매주 학생들과 산행을 하면 산속에서 여러 가지 프랙털을 찾을 수 있다. 곳곳에 있는 고사리가 그렇다. 같은 모양으로 끝 지점을 찾아 끝없이 수렴하는 듯한 모습이다. 참 재미가 있다.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자연과 수학이 가장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둘 사이의 공식은 뭘까.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니 꽃 속에서도 프랙털이 보인다. 신기하고 신기하다. 수학이 신기하고 삶이 신기하다.



<나무 가자에 있는 피보나치수열^^>

며칠 전 소리가 나뭇가지도 프랙털로 자란다고 설명해주셨다. 여기에는 피보나치 수열이 들어간다. 처음에 갈라진 두 가지가 동시에 또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쪽만 갈라지고 나머지는 그냥 올라간다. 영양분이 양쪽 모두 충분히 공급될 수 없기 때문에 한쪽으로 몰아줘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올라가면 그 사이 충분한 영양분을 받고 나머지 쪽이 또 갈라진다. 그렇게 나뭇가지도 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뻗어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참 맞는 듯하다. 나무의 가지가 규칙적으로 자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학을 통해 자연의 속을 보는 느낌이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 모습도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내가 아직 모르는 자연의 모습은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아직도 수포자의 희망까지는 되지 못했다. 그저 물장구가 재미있어 어린이 풀장에서 튜브를 끼고 물에 둥둥 떠 있는 정도이다. 그래도 이제는 수학 시간이 기다려진다. 수학 시간에 옆 사람의 시험지를 보지 않으려 용기를 낼 수 있어 좋다. 수학을 통해 자연을 알 수 있어 신기하다. 수학으로 밥벌이 할 것은 아니니 천천히 하나씩 배우려 한다. 이런 내 마음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포자라는 말이 없어지고 수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학생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영어 교사인 나의 진짜 바람은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수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수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왜곡되지 않고 단순하며 명확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은 자연히 영어도 잘하지 않을까는 영어 교사의 꼼수도 바람 속에 살짝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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