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 교사의 수업 고민

What is your "Why"

by 마나

올해 학생들은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는 나름 주요 과목이라 학생들의 이런 무관심은 처음이다. 벌써 5월이 넘어가지만 수업은 혼자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서 인기 없는 과목 담당자는 아직도 방황 중이다.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므로 나를 봐서 수업을 들어주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겹쳐온다. 견뎌야 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2시간 연강의 영어 시간, 학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교실에 들어올까. 벌써 5월인데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영어 수업을 본다. 아직 5월이라 시간이 남았다는 생각도 한다. '벌써'가 아니라 '아직'을 붙잡는다. 다행히 시간이 내 편이라는 생각은 흔들리는 영어 교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영어 교사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학생들이 믿고 따라와야 할 사람은 나이므로 좀 더 믿음직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애를 쓰든 말든 공공연한 비밀일 뿐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앞에서 대놓고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도 동료 교사들도 나의 노력은 알고 있었으므로 수업 시간에 되레 나에게 힘을 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마음은 따뜻했으나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현재의 상황이 내 능력 밖의 일인지 계속 고민했다.


내 모습을 직면하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교사로서 살아온 경력을 들이대며 수업 방법이 틀릴 리가 없다고 부인도 하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학생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라 여기기도 했다. 회피하려는 생각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내 능력의 한계를 제대로 바라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흘러가고 그동안에도 영어 수업 시간은 매주 돌아왔다. 제자리 걸음 하는 듯했다. 수업으로 인해 생긴 우울감이 점점 심각해졌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일까, 내가 하는 영어 수업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혹시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변질된 것은 아닐까. 의심이 시작됐다.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과정은 아플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몸에 힘을 꽉 주고 버티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수업 시간을 버틴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을 보듯 나를 바라봤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일단 몸에 힘을 풀어야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욕심이었다.


혼자 하는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교실에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나를 위로해 주려는 에너지를 함께 수업을 의논하는 것으로 바꿔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방황한다는 것은 나의 에너지도 아직은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할 수 있는 한 모두의 힘을 모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도 있을 듯했다. 그것이 내가 찾은 영어 수업을 책임질 방법이었다. 정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길인지 아닌지는 일단 가봐야 알 수 있었다.


그다음 해야 할 일은 나의 혼란스러움을 학생들 앞에서 드러내는 일이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두려움이 앞서 마지막까지 머뭇거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길은 떠오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공공연한 비밀을 열었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더디지만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3월부터 시작한 '영어 시간 회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영어는 왜 해야 할까. 영어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를 꼭 배워야 할까.


이번 주 영어 수업 시간에는 영어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강요하는 경험들이 쌓여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한국에 살면 굳이 영어를 할 필요가 없는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학생들이 하는 말에 틀린 것이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그들에게 위안이 아닌 강요로 다가올 수 있을 듯해서였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 시간을 마무리하며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최대한 뺀 수업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교과서가 따로 없는 대안학교에서의 영어 수업은 학생에게 맞춰 학습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올해 목표를 학생들이 영어를 싫어하는 마음을 덜어내 주는 것으로 잡았다.


아직도 영어 수업은 부유하는 중이다. '영어는 왜 배워야 할까'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내 대답은 재미이다. 한국말이 아닌 다른 소리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나는 좋다. 이것은 음악가가 함께 공연한 동료와 느끼는 연대감과도 닮았고, 같이 탁구를 치고 산을 오르며 서로의 땀내를 공유하는 시간과도 같다. 굳이 영어를 통해 소통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과 영어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나의 경험과 그의 경험이 잘 어울려져 멋진 대화가 될 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물을 것이다. 영어를 충분히 접해 보고 난 뒤 내린 결론인지 그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경험을 가지고 영어를 배제시킨 것인지. 모두에게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자신만이 가진 생각이 의미가 있다면 나도 굳이 영어를 강요하고 싶진 않다.


영어는 왜 배워야 할까

올해 마지막 영어 시험의 질문도 미리 정해놓는다. 영어 수업을 1년 들은 후 학생들이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고민 사이에서 나도 영어 교사로서 영어를 가르쳐야 할 이유를 더 찾고 싶기도 하다. 고민하는 교사는 본능적으로 정착하길 원한다. 어디로 닿을지 모를 영어 수업에 대한 걱정을 주말 아침 카페에 앉아서도 하고 있다. 힘든 것은 맞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경력이 쌓이면 그 일에 대한 고민이 줄고 점점 전문가가 되어 간다고 생각하지만 혼란 속에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경력이 오히려 올가미가 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평생 어느 정도는 부유하며 살 듯하다. 그러고 보니 영어 수업이 나와 많이 닮았다. 정착하고 싶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삶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