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달영이 야마시타가 된 이유
요즘 역사 수업에 들어가면 <<철도원 삼대>>라는 책을 읽는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 속에 한국의 근현대사가 모두 들어있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책을 읽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의견이 분분한 사건들에 대해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토론도 한다. 오늘은 야마시타라고 불리는 친일파 최달영의 이야기가 나왔다. 왜 최달영은 야마시타가 되었을까.
친일파를 모아놓고 인터뷰를 해 보면 아마 "살다 보니",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답이 대부분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역사 속에서는 그리 긴 시간 같아 보이지 않지만, 이야기 속 독립운동가가 2,30대에 많이 돌아가신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일생이 모두 사라진 시간이라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라 잃은 설움은 어떤 것일까. 최달영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쳐 살기 위해 남을 해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처음 느꼈던 죄책감이 무뎌진 것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친일파로 변질된 사실을 확인하며 나는 최달영에게 약간의 연민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나라면 어떤 인물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실 같지가 않아 상상으로도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보다 더한 시간을 평생 겪으며 산 사람들이다. 따뜻한 교실에 앉아 책으로 그 시대를 경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을 이해하려면 비슷한 고생을 해봐야겠지만 그렇게까지 살 용기도 없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 친일파들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지만 약간의 연민이 생기는 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게다.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교과서에 이름 한 줄 적히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속에서 느껴지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무겁다.
독립운동가가 겪은 고문을 생각해 본다. 나라면 동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잡힌 후 24시간 고문을 견디는 규칙을 지킬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고문 기계만 봐도 없던 일도 지어냈을 것이다. 나의 나약함이 소설을 읽으며 그대로 드러난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고문의 잔인함일까 나의 나약함일까. 나도 먹고살아야 했을 테니 친일파가 되었을까. 생각하기 싫지만, 그렇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오늘 수업에서는 소설 속 사람들을 이용해서 친일파로 규정되는 기준을 생각해 보았다. 그 시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조선인이 일본인 밑에서 일을 했다. 일제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친일파를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적극성이라고 한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독립운동가나 일반 조선인을 괴롭혔는가.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지속적이었는가.
최달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친일파였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가까운 사람을 밀고했지만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하지만 승진을 하기 시작하면서 최달영은 변했다. 같은 조선인을 잡는다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되레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나는 최달영이 아니라 야마시타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게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였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 줄 몰랐다. 최달영의 실제 모델인 노덕술과 같은 조선인 고문 기술자들은 일본인보다 더 심하게 고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용서받지 못할 열등감이 역사 속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작가 황석영은 북한에서 만난 노인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실제와 같은 소설은 만들어냈다. 교과서 속에 나오는 딱딱한 정보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로 바뀌어 움직였다. 나는 역사 수업을 들으며 내 삶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계속 느낀다. 함부로 살 수 없는 이유,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내 앞에 계셨던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내 발 밑에서 움직인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했기 때문에 내가 독립된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일을 해야 편안했을 그 시대에 조선인임을 잊지 않고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도 친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역사는 뚝 떨어진 시간이 아니다. 지금 나의 삶과 연결된 과거의 이야기이다. 왜 내가 이렇게 살고 있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서 이런 모양으로 생기게 되었는지 알게 해 준다. 경복궁을 가면 예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뜻이다. 경복궁 속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고 이곳이 왜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와 현재가 떨어진 것이 아니듯이 현재와 미래도 연결되어 있다. 최달영이 왜 야마시타가 되었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에 대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때까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