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이야기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라.”
고등학교 입시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함께 따르는 말이다. 거의 이순신 장군이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시간표에도 영롱한 국수 가락이 쭈욱 늘어진 것처럼 국국영영수수로 가득하다. 학생들은 국·영·수 중심으로, 국·영·수를 따르며 그렇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보낸다. 그나마 자세히 찾아봐야 겨우 보이는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자리도 고3이 되면 국·영·수를 보충하는 시간이 된다. 영어 교사로서는 직장에서 잘릴 걱정 없어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느끼는 부담감 속에는 의구심이 들어있다. 정말로 국·영·수가 삶의 주요 과목인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데 학창 시절 6년이 국·영·수 중심이 되어야 할 정도로 그것들이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것들인가. 학창 시절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학교에서 하는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지금 따라가고 있는 시간표가 믿을 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굳이 바쁜 학생들을 붙잡고 시간표 속에 숨은 의미를 따질 필요도 없다. 똘끼 있는 선생이라고 낙인만 찍히고 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생, 교사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여유 없는 학교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속에 사는 나는 헛배만 나온 내 배를 가라앉히기 위해 소화제 먹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학교생활의 앙꼬는 국·영·수가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사는 시간이 덧없다. 따라갈 땐 가더라도 뜻은 알고 가야겠다. 학생들과 이야기해보기 전에 내 안의 똘끼를 조금이라도 정리하고 싶어 국·영·수 중심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국어 시간은 한글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쓰는 능력을 기르는 시간이다. 국어를 담당하는 동료 교사는 우스갯소리로 시간표의 모든 수업은 국어 수업이라고 말씀하신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시간에 보고 듣고 쓰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영어 시간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이다'는 뜻을 가진 be 동사가 한국어에는 조사로 쓰인다. 이 간단한 차이로 영어 수업은 시작된다. 수학이 영어와 국어처럼 패턴이 있는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수학의 단순함과 명확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데,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얼마나 교묘하게 역사가 바뀔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례들도 존재한다.
모든 과목이 연결되어 있다. 국어로 수학으로 영어로 표현되는 것일 뿐 모든 과목은 삶을 보여준다. 시간표처럼 실제로 각 과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과목 간 연계 수업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교사는 수업을 통해 삶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으므로 한국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은 세종대왕이 너무 똑똑하셔서 생긴 문제점이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착각 속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독서보다는 영상에 더 익숙한 요즘 세대 학생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것이 문해력에 문제가 생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읽기 쉬운 한글 덕분에 한글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국어 시간이 왜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모국어를 알 뿐, 이해하지는 못하는 문해력의 문제는 학생들이 남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부족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한국인인 이상 그 모든 것의 근본은 한국어다. 이것이 내가 찾은 국어가 주요 과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0차원 - 점 1차원 - 선 2차원 - 면 3차원 - 부피 4차원 – 시간
며칠 전 수학 시간이었다. 넓이의 비율은 길이 비율의 제곱이 된다는 사실을 활용하여 문제를 풀었다. 길이와 넓이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대화는 차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4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4차원을 보지는 못한다. 시간은 느낄 수 있을 뿐 만져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차원은 고작 2차원에 불과하다. 조카가 만든 레고 사진을 보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앞모습뿐이다. 뒷모습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이 3차원 입체모형이라고 인식이 되니 3차원까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상상을 통해 3차원을 본다.
그렇다면 점은 왜 1차원이 아니고 0차원인가. 점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수학적 논리로 보면 점은 무게나 부피가 없이 위치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이 모여 선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1차원으로 정의 내린 것을 보면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점은 존재하는 걸까.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이 물음은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힘을 주었다. 없는 것이 있고, 있는 것이 없다는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저 말이 수학의 점과 닮아 보였다.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는 저 말을 통해 삶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풀이를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존하는 것은 사실이나 매일 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답할 수 없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나이자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수학 시간에 했다. 복잡해 보이는 삶의 진리가 수학의 점을 통해 조금 이해되었다. 수학이 어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학을 담당하시는 동료 교사는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계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념을 바로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은 식 하나도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식이 나온 경로를 파악하면 재미가 있다. 그것들이 모여 수학적 개념을 만들어낸다. 무한의 개념을 이해하면 불교의 교리도, 차원의 문제도 이해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수학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는 수학이 맞다. 그래서 수학이 세상을 보는 뼈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려면 그 속에 논리가 살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찾은, 수학이 주요 과목이여야 하고 내가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되는 이유다.
영어는 어떤가. 국·영·수 세 과목 중에서도 영어가 중앙에 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맞는가. 영어 교사인 나는 ‘Yes’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권 나라로 이민갈 계획이거나 직업을 구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어는 세계화에 발맞추어 여러 사람과 잘 소통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의사소통 도구일 뿐이다. 배우면 편리한 것이 사실이나 주요 과목에 들어있을 이유는 없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싫어하는 학생은 보여도 영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수학 시간과 비교했을 때 그 반응은 확실히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그 이유는 뭘까. 실용성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대화를 할 때 영어 단어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지나다니다 보면 아파트 이름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은 듯하다.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도 영어를 쓰면 있어 보여 사용하는 때도 많다. 영어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시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건 영어가 수학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일까.
있어 보이는 것과 실제로 중요한 것은 다르다. 순전히 영어만을 가르치기 위해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거나 어린 자식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외국에서 살기를 결정하는 부모가 있다면 정말 말리고 싶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말에 영어라고 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치는 시간 속에 울고 웃고 떠들며 습득하게 된다. 영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국어나 수학처럼 우리의 인성을 기르는 데 있어 주요 과목으로 들어가야 하는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영어 교사로 살고 있지만 계속 생각을 해봐도 영어는 타국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필요한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영·수만 제대로 공부하면 인생이 성공할까. 생각보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럼 그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대로 살고 있을까. 그것 또한 아닐 것이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 학교에서 준 시간표대로 삶을 살아간다. 점수를 잘 따야 대학에 잘 가고 대학에 잘 가야 취업이 잘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글 같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있어야 할 것 같아 글을 적는다. 우리가 종일 고민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이 인간관계에 대한 것 아닌가. 그것은 인성과 연결이 되고 삶의 행복과 연결이 된다. 학창 시절에 꼭 필요한 주요 과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음·미·체가 기타 과목이 되는 현실이 옳은가. 글의 끝에 또 질문이 생긴다.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