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좀 봐라. 이놈들아."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지

by 마나

어린 조카는 낯선 음식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요구르트를 먹으면 플레인 요구르트는 자기 것, 블루베리 요구르트는 고모 것이라 말한다. 블루베리를 먹이고 싶은 고모는 온갖 맛있는 표정을 지으며 블루베리 요구르트를 떠서 먹여 보지만 지조 있는 조카는 새하얀 플레인 요구르트만이 자기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맛있는 건 바나나"라고 노랫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흥얼거리지만 정작 진짜 바나나를 주면 이건 고모 것이라 한다. 블루베리도 바나나도 진짜 맛있는 건데 먹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계속 외치게 된다. "맛이라도 보고 말해라. 이놈아."


며칠 전 우자의 철학 시간에 똑같은 말을 들었다. 수업의 주제는 '수업이란 무엇인가'였다. 교사는 왜 수업을 하고, 학생은 왜 수업을 들어야 할까. 예전에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났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요?"라는 드라마 대사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수업을 들으라고 해서 듣고 있는데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수업이란 주제가 낯설어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다. 어디 한 번 들어는 보자는 못난 심보로 수업에 참여했다.


우자는 한 사람마다 한 개의 음식 이름을 나눠주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음식을 맛으로만 표현하여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광어회를 표현해야 했다. "딱히 맛이 없어요. 단맛, 쓴맛, 짠맛 이런 맛이 거의 없이 무맛이에요. 대신 식감으로 먹어요. 쫄깃하기도 하고 물컹거리기도 하지요. 이것만 먹는 경우는 잘 없고 보통 장에 찍어 먹어요." 색이나 모양으로도 말을 할 수 없어 맛으로만 음식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 학생이 회를 맞혔고 거기에 약간의 얻어걸리기식 수법으로 회의 종류를 다 말해 가며 학생들은 광어회를 맞혔다.


포비가 내게 말했다. "회도 맛이 있어요. 고소하고 담백해요. 마나는 회 맛을 모르는구먼." 나는 포비의 말을 듣고 웃었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초장이나 간장에 회를 찍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회를 씹는 맛으로 먹는 줄 알았는데 회의 참맛을 모르기 때문에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아무튼 엄연히 존재하는 회의 맛을 없다고 설명한 죄로 회를 잘 모르는 죄인으로 낙인 찍힌 뒤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쫄깃쫄깃하고 짭조름해요." 다음 차례인 종결이 짧게 맛을 표현하자 듣고 있던 로쏘와 포비가 함께 CM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쫄깃쫄깃! 오동통통! 농심 너어구리~~!" 우리는 한바탕 같이 웃고 난 뒤 "라면!"이라고 소리쳤다. 답을 못 맞힌 음식이 많았는데 라면은 너무 쉽게 답을 맞혀 문제를 낸 종결이도 맞힌 우리들도 약간 어벙벙했다. 이건 왜 이렇게 쉽게 답이 나오는 거지. 라면이 회보다 더 자극적이라서 그런 건가.


마지막 학생까지 음식을 맛으로 표현한 후 모둠끼리 모여 방금 한 활동과 수업을 연결시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음식 맛을 표현하려 노력하는 것은 수업을 통해 정보를 알려주려는 교사의 역할과 비슷했고 답을 맞히는 것은 정보를 받아들여 재해석하는 학생의 역할과 닮아 있었다. 각자는 자신이 느낀 점을 정리하여 수업을 왜 하고 듣는지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나는 회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수업을 통해 깰 수 있었고 회 맛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익숙한 라면은 혼자서도 쉽게 답을 맞힐 수 있는 반면 낯선 푸아그라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 답을 찾아야 했다. 수업은 모른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은 아닐까.


우자가 수업을 마무리하며 말했다.

"음식 맛을 알게 해 주려면 돈만 있으면 돼요. 푸아그라의 맛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서 먹이기만 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돈이 없죠. 그래서 음식 맛이 어떤지 최선을 다해 말해주는 거예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먹길 원하는 의지를 심어주는 거죠.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과학 모두 마찬가지예요. 교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학생들은 다 알지 못해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고요. 다만 각 과목마다 특유의 맛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수업을 해요. 입맛에 맞다 싶으면 어떻게 공부할지는 학생들이 더 잘 찾을 테니까요. 음식을 좋다 싫다 말하기 전에 맛이라도 보고 결정하라고 수업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음식 맛이라도 봐라. 이놈들아."


수업을 듣고 난 후 내용보다는 우자의 마음이 남았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수업이라 그럴 것이다. 수업을 통해 학생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우자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져 이를 기록으로 남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여러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 자유학교는 그런 울림이 매일 들린다. 학교가 노다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규모가 작은 자유학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보기도 한다. 마음이 답답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봉수대에 불을 지펴 숨어 있는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처럼 이런 학교가 실제로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 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