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vs 안전한 삶
철학 시간에 알퐁스 도데의 <<스갱 씨의 염소>>를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스갱 씨가 보호해 주는 안전한 울타리 안 생활을 버리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선택한 아기 염소의 이야기였다. 교사 4명과 학생 8명은 '내가 염소라면?'이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유로운 삶과 안전한 삶. 둘 다 인간이 가진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이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어서 고르기 힘들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을 할 때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놓고 선택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염소와 함께 극단적인 상황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염소의 안전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염소였다.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도 경험도 하지 못했다.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 충동적으로 이뤄지면 위험하다. 결론적으로 염소의 선택은 자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스스로를 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염소와 같이 자유를 택했다. 자유는 경험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이다. 위험한 것을 배제하고 자유를 논할 수는 없다.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생의 말이 공감이 갔다. 안전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 그 순간은 누가 선택하는 것인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였다. 선택을 할 때마다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며칠 후 예아트가 시골에서 직접 기른 상추를 주셨다. 집에 와서 상추를 씻으려는데 잎사귀 사이로 뭔가가 꿈틀거렸다. 달팽이었다. 상추를 좋아하는 달팽이가 자유를 찾아 울타리 밖으로 나온 듯싶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달팽이는 축축한 흙에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상추와 달걀 껍데기를 잘 먹는다고 했다. 달팽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좋아하는 것들 골고루 넣어 작은 집을 만들어주었다. 달팽이도 나도 처음에는 놀랬지만 시간을 두고 조금씩 차분해졌다.
며칠 있으니 달팽이가 적응을 한 듯했다. 상추에 구멍도 많이 나 있고 움직임도 제법 있었다. 배변을 왜 그릇 뚜껑에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달팽이는 기어이 뚜껑까지 올라갔다. 답답해할까 봐 뚜껑을 열어 놓고 싶었지만 그릇 밖은 위험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문득 스갱 씨의 염소를 생각했다. 달팽이는 지금 생활을 어떻게 생각할까. 안전하게 지내고 싶을까.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을까. 달팽이가 아니라서 알 수 없는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달팽이의 자유는 지금 안전한가.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달팽이가 우리 집으로 온 이유를 되짚어봤다. 상추가 밭에서 뜯길 때 달팽이가 붙어 있었다면 재빠르게 땅으로 내려올 재간 따윈 없었을 것이다. 나와의 인연이 자신의 의지 때문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달팽이는 자유를 찾아 울타리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되려 자유를 침해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준 그릇 속 포근함을 달팽이는 좋아할까.
학생들의 마음을 따라보기로 했다. 대신 내 마음도 조금 포함시켜 달팽이를 모르는 곳이 아니라 자유학교 화단에 놓아주었다. 애초에 남의 자유를 내가 선택한 것 자체가 잘못이니 시원하고 명확한 결말을 기대할 순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에 마음이 아리긴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이 지나고 우연히 계단에 붙어 있는 달팽이를 보았다. 이 달팽이가 그 달팽인지 알 수는 없으나 조그마한 것이 바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달팽이라고 믿어 버렸다. 계단은 위험해서 흙이 축축한 화단으로 옮겨 주었다. 그 정도의 오지랖은 괜찮겠지. 지금 달팽이의 자유는 충만할까. 나는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달팽이의 생각을 알 수 없다. 그저 굳이 뚜껑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배변이 가능한 화단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