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앞니에 고춧가루가 꼈다면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그 대답을 하면 돼.

by 마나

태풍 힌남노 때문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다. 아침 9시 30분, 학생 7명과 교사 4명은 각자 컴퓨터에 앉아 서로의 붓기를 확인했다. 아침열기의 주제는 친구의 프로젝트 계획을 듣고, 좋다고 생각하는 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 내가 줄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주에 학생들은 새 학기에 할 개인 프로젝트 계획서를 만들었다.)


몸 푸는 문제로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 앞니에 고춧가루가 꼈다면 어떻게 할래?" 고백하건대 질문을 하면서도 다양한 답을 원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드백할 때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기분 상하지 않게 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춧가루 질문은 학생들이 조금은 쉽게 피드백을 할 때의 자세를 알아챘으면 싶은 내 마음이 들어있었다. 답이 정해진 나는 다른 답은 생각하지도 않고 학생들의 잠이 깨길 바라며 이야기를 들었다.

크롱이 모른 척하겠다고 했다. 자신은 고춧가루가 크게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그냥 둘 거라 했다. 크롱의 말에 약간 당황했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어서 이어서 할 수업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진행자로서의 곤란함과는 반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답이라 재미도 있었다. 사람들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다음 활동은 잠시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들어보기로 했다.


내 대답은 당연히 말하고 상대가 개운해지도록 도와준다였다. 언제 빠질지 모르는 고춧가루를 한 사람이라도 덜 보게 해주는 것이 상대를 위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나는 상대가 친하든 친하지 않든 그리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 중 절반 정도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상대의 무안함을 생각한 대답이었다. 친한 정도와 상대방의 성격에 따라서 말을 할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같은 마음에 다른 행동이 보였다.


그 상대가 나라면 어떨까. 내 이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는데 함께 있는 사람이 말해 주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는 것을 알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는 좀 싫을 듯하다. 뒤늦게 안 것이 더 무안할 것 같다. 말해 주면 순간은 무안하겠지만 그것 가지고도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혹시 상대가 교장 선생님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말할 수 있을까. 일단 말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으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긴 하다. 교장 선생님은 좀 애매하네. 그럼 나도 말하지 않고 그냥 둘까.


길지 않았던 대화였지만 진행하면서 속으로 좀 놀랐다. 사람들은 참 다르구나.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같더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음을 또 한 번 배운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네가 그 답을 하길 바라는 사람)의 당황스러움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질문에 여러 개의 답이 나온 것이 당황스러웠다면 그건 내 태도의 잘못이다. 오히려 다양한 답이 나온 것은 대화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인생에 답정너가 웬 말인가. 당황스러운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나였다.

그 뒤 학생들은 내 우려와는 달리 서로에게 피드백을 제법 잘했다. 나의 예측은 맞는 게 없구나. 처음 해보는 온라인 수업에 괜히 나 혼자 떨려 했었구나. 나의 떨림이 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측을 하곤 했었는데 그만해야겠다. 맞출 재주도 없고 크게 의미도 없어 보인다. 대신 지금 학생들이 하는 말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오늘도 하나를 배운다. 근데 고춧가루는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나? 아직도 나는 정신 못 차린 답정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