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농담 자격증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나? 여자로 태어나고 싶나?
아침열기의 주제였다. 요즘 학교에서는 선택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답이 중요하기보다는 그 뒤에 나오는 이유가 논리적인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각자 선택을 하고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보다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대답이 조금 더 많았다. 안전에 대한 이유 때문이었다. 여자로 살면서 매일 느껴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은 자유와도 연결되어 삶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남자가 좀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었다.
포비가 대답할 차례가 됐다. 잠이 덜 깬 몽롱한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였다. 포비는 "남자가 좋아? 여자가 좋아?"라는 질문으로 생각했나 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웃으며 "저는 여자가 좋은데요."라고 말했다. 순간 모두 웃었다. 솔직한 그 대답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제대로 된 질문을 알고 난 다음에도 포비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우리도 그의 실수를 놀리며 아침을 깨웠다. 교실 분위기가 좋았다.
교무실로 돌아와 포비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 만약 여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남자가 좋아요.”라고 쉽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도 가볍게 웃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 대답을 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한여름에 패딩을 입은 듯했다.
야한 질문과 야한 농담을 해본 적이 없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개념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다지 유교적인 인간도 아닌데 나는 유교적인 것이 도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설프게 살고 있었나 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꼭 신체적인 안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암묵적으로 사회가 허용해주는 표현의 범위가 남녀가 다른 건 아닐까. 스스로가 해야 할 자기 검열의 시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았는지가 한꺼번에 느껴져 답답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포비의 말은 답답하게 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질문 같았다. 나는 왜 숨기며 살고 있을까. 솔직해지고 싶어 발버둥 치는 글 속에서도 뭘 또 숨기고 싶은 걸까. 무엇을 위해서 안으로만 파고드는가. 사회적으로 여성의 야한 농담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가 되면 내 글도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사회 탓만 하고 있기엔 내 시간이 아깝지 않나. 암묵적 약속, 사회적 허용. 이딴 것이 언제 내 인생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행동했던 것 또한 내 선택이었다. 누굴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퇴근 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다가 문득 친구를 대상으로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야한 농담을 한 번 해볼까.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끊었다. 바보같이......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다. 누구에게 비난을 받지도 않았고 피해를 주지도 았았다. 나의 안전한 바보스러움이 빛을 발했다. 속상했다.
모르고 사는 건 가능하지만 알고 나면 모르게 살 수 없다. 며칠 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입에서 무심하게 야한 농담이 툭 튀어나왔다. 친구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나는 씩 웃으며 너는 어떤지 물었다. 친구는 평소에 넉살이라고는 없던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함께 웃어 주었다. 며칠 동안 익은 후 나온 내 농담은 잘 자리를 잡아 친구에게로 갔다. 함께 웃는 웃음 속에 가을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자기 검열이 필요 없는 시간은 사회적 허용도 있어야겠지만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좀 더 가볍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