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삶을 걷는다.
요즘은 크고 작은 태풍 덕분인지 습도가 꽤 높다. 한여름에 비해 날이 많이 선선해지긴 했지만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교무실에 있으면 처음은 괜찮지만 점점 더워져 결국에는 등에서 땀이 쭈욱 흐른다. 송골송골 맺히는 땀이 아니라 쑤욱 흐르는 땀은 물처럼 묽은 느낌이다. 금요일 오후는 물 같은 땀으로 샤워를 한 시간이었다. 허풍을 약간만 덧붙여 말하면 옷만 없었다면 갓 샤워한 몸처럼 수건으로 닦아 바디로션을 발라도 될 정도였다.
일주일의 마지막은 걷기 수업이다. 학생 7명과 교사 4명은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 뒷산으로 출발했다. 되도록 날씨를 따지지 않고 걷기 수업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약간의 꼰대 정신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1년 동안 정말 많이 걸었다는 경험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걷기에 대한 진한 자신감이 살면서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우리는 날씨에 상관없이 걸어야 할 날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다리와 마음에 근육을 붙여주는 작업을 후덥지근한 오늘도 계속했다.
올해 학생들도 산행 경력이 벌써 한 학기가 됐다. 산행을 할 때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고 혼자 조용히 걷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안다. 뒷산에 있는 절까지 40분을 쉬지 않고 걸어 올라갔다. 각자의 방법대로 때론 조용했고 때론 재잘거렸다. 나는 오비완과 올라가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는 바빠서 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지만 산행을 할 때는 온전한 시간을 내어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귀를 내어준다. 신나게 재잘거리는 오비완을 보며 내가 에너지를 얻으며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한 산길이었다. 올라갈 때도 다들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발그레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누가 더 붉은지 우기기 놀이도 했다. 잠시 쉬고 있으니 빨리 내려가자고 학생들이 성화였다. 내려가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하루닫기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장담하건대 등산하고 내려와서 마시는 플레인 요거트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틀림없다. 나도 학생들과 마음이 같아 군말 없이 바로 내려왔다.
제일 앞에 서서 종결이와 이야기를 하며 내려왔다. 오랜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 취해 우리 둘은 얼굴 익어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약간 기분이 묘했다. 우리 뒤에는 나머지 사람들이 우리만큼 익은 얼굴을 데리고 내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화를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평소 길이 아니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산속이 아니라 큰 도로변이 나왔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학생들은 한 학기지만 교사인 나는 5년간 왔다 갔다 했던 길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아직 상황을 알지 못하는 해맑은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순간 말이 안 나왔다. 일단 잠시 행렬을 멈췄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용기를 냈다. 길을 잘못 들어왔으니 돌아가자. 어림잡아 5분 정도 올라가면 제대로 된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착한 학생들은 속을 내보이지 않고 땀을 닦으며 되돌아갔다. 덕분에 나는 학생들의 숨소리 크기만큼 미안해야 했다.
다행히 조금 더 올라가니 익숙한 길이 나왔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좀 더 속도를 내어 산을 내려왔다. 결론적으로는 10분 정도 더 걸은 것 같다. 학생들은 카페에 앉자마자 커피 선생님께서 미리 만들어놓으신 각자의 음료수를 흡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수가 맞았다. 하루닫기의 주제를 우리는 왜 늦게 카페에 도착했을까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다행히 주제를 정하는 로쏘는 나를 힐끗 보더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산행을 하면서 봤던 것을 이야기하지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수 덕분인지 걷기 덕분인지 재잘거리는 소리 데시벨이 점점 높아졌다.
벨라가 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원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는데 사공이 한 명이어도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더라. 나는 웃으며 인정했다. 예아트는 5년간 다녔던 길이라 익숙해서 길을 잃을 거라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놓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며 인생을 사는 것도 산행을 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벨라의 농담도 예아트의 깊은 생각도 걷기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왔다. 참 좋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땀으로 진하게 샤워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보지 않았지만 다들 저녁밥은 꿀맛이었을 것이다. 하얗게 불태웠던 우리의 이번 주도 다 지나갔다. 다음 주 걷기 시간에는 또 어떤 마음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게 될까. 오늘처럼만 재잘거리고 헤매면 좋겠다. 삶이 즐거워 열심히 살게 되는 이 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우리 11명이 다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