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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Dec 11. 2022

<<하얼빈>> 읽고 <<영웅>> 보기 1

안중근과 이토

김훈의 <<하얼빈>>을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사놓고 펴지 못해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12월 말에 영화 <<영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을 이용해 책을 펼쳤다. 약간 어두운 상아색 종이에 검은 글씨로 '하얼빈'이라고만 적힌 표지가 러시아의 추운 날씨를 연상케 했다. 거칠어 보이는 종이 표면은 안중근이 거사를 치르기 전 10일간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안중근을 알고 싶었다. 잊히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인물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안중근'을 치면 '이토 히로부미'가 나오고 '이토 히로부미'를 치면 '안중근'이 나온다. 평생 한 번밖에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은 죽음으로 연을 맺어 100년이 넘도록 함께 역사 속에 남아 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15분, 이토가 타고 있던 열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모든 열차들이 지나가는 역이었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은 이토가 죽기 좋은 장소이고 자신이 총을 쏘기 좋은 장소라 판단했다. 이토를 죽이고 세상을 향해 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하얼빈 역은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적절한 곳이었다.

책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각자 다른 곳에서 서서히 하얼빈으로 오며 전개되었다. 긴장감이 책 전반에 깔려 있었다.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의 이동 경로 지도를 몇 번이고 살펴봐야 했다. 안중근이 한국을 떠날 때 빌헴 신부는 말렸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옳지 않다고 했다. 강대국인 프랑스 출신 신부는 왜 떠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안중근도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1908년 결성된 의병대에서 참모중장의 역할을 맡아 일본과 싸웠다. 포로들을 보며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그냥 보내주었다. 안중근은 빌헴 신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뒤 적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고 다시 역공격을 했다. 안중근 부대는 각각 흩어져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겨우 도망쳐 나왔을 때 그는 포로들을 죽였어야 했는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천주교가 말하는 세상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지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토는 순종과 함께 여행을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일본은 미개한 조선이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거라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이가 몇 개 빠진 순종은 이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이토를 믿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가짜이고 이토를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여행을 했을 것이다. 이토는 신문에 실을 사진 한 장에도 일본의 우수함과 조선의 미개함을 넣고 싶어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순종과 사진의 구도까지 생각한 이토는 같은 사진 속에 찍혀 있었다. 책 속에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고 싶어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다. 순종과 이토의 여행 사진이 나왔다.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머리를 깎자. 잡힐 때 깔끔한 게 좋겠다. 새 옷도 입고.
-여비가 되는가
-모자라지 않는다. 쏘고 나면 여비는 필요 없다.


이토를 하얼빈 역에서 기다리며 우덕순과 했던 말이다. 깔끔하게 잡히기 위해 머리도 깎고 새 옷도 샀다. 둘은 닷새 뒤에 나와서 받을 수도 없을 사진도 찍었다. 여비가 필요 없다는 말속에 안중근의 마음이 모두 들어 있었다. 우덕순과 안중근의 대화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토를 죽이려는 이유를 물었을 때 우덕순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며 입을 닫았다. 안중근도 다시 묻지 않았다. 둘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토만을 생각했다. 안중근, 우덕순, 그리고 이토의 목숨 앞에서 군말은 사치였다. 거사가 끝나고 법정에서 우덕순은 말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일본인 검사와 판사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군말은 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다고 온몸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우덕순의 졸음이 멋있었다.


-그대가 말하는 동양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그중 한 나라만이라도 자주독립하지 못하면 동양 평화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범행 후 체포당하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도주할 계획을 세웠는가.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후 감옥과 법정에서 한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조선의 독립은 청일전쟁(1894-1895) 후 청이 조선 앞에 닥친 위험을 모른 척하고 수백 년 종주국 관계를 버리면서 조선의 '독립'을 운운한 것과 이토가 러일전쟁(1904-1905)을 기획할 때 '조선의 독립'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과는 내용이 달랐다. 모든 나라의 자주독립만이 동양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안중근은 평화를 깨뜨리는 이토를 죽이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2년간 돌아다니며 기울어져 가는 나라에 자주독립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하얼빈까지 가야 했다. 거사가 이뤄지고 난 다음 날인 27일, 아내 김아려와 두 아들이 하얼빈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중근은 그들을 보지 않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안중근이 편안하게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만든 것은 이토인가. 왕실인가. 청인가.


안중근은 1910년 3월 15일 여순감옥에서 <<김응칠 역사>>를 탈고했다. 그리고 3월 26일 형이 집행됐다. 그는 죽어서 하얼빈에 묻혔다가 나라가 독립을 하면 돌아가겠다고 동생에게 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안중근의 유해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여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죽은 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도 유해를 찾지 못해 서울 효창공원에 가묘만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안중근의 유해를 찾는다면 우리는 서울의 효창공원으로 옮겨야 할까. 고향인 황해도로 보내야 할까. 남북으로 분단된 훗날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안중근은 차라리 하얼빈이 마음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으로 가려고 탔던 기찻길 그대로 시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그의 영결식은 화려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관에는 훈장 스물네 개가 달려 있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각자의 이유로 이토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바보 같으니!"였다고 했다. 죽기 위해 멀고도 먼 곳을 갔던 이토의 마지막이 정말 바보 같아 보였다. 평생 '동양의 평화'를 위해 애를 썼으나,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고 죽은 이토가 바보 같아 보였다. 누구를 위한 평화를 바랐을까. 정말로 조선인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을까. 혹시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토를, 일본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 뒤에 일제강점기가 있었다. 이토가 바랐던 세상과 같았는지 물어볼 수만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천주교에서도 80년 넘게 안중근을 천주교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살상을 금하는 계율을 어긴 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안중근은 오랫동안 죄인이었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을 위한 추모 미사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입장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빌헴 신부를 찾아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 했던 안중근의 마음이 조금은 받아들여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얼빈>>은 10일간의 이야기만 나와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안중근 가족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영화 <<영웅>>에는 3년의 세월이 들어있다 하니 또 다른 시각으로 안중근을 살펴볼 수 있을 듯해서 기대가 된다. 책과 영화를 통해 우리의 역사가 잊히지 않고 잘 이어지면 좋겠다. 김훈 작가의 담백한 필체는 우덕순의 졸음과 닮아서 좋았다. 김훈 작가가 유튜브 방송에서 책에 다 적지 못한 내용이 있다 했다. 기회가 된다면 보완해서 다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때가 벌써 기다려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글을 쓰고 안중근을 알아간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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