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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Nov 27. 2022

서울을 걷다.

역사를 기억하는 도시

<숙소 앞 지하고문실>

올해 마지막 여행으로 교사 4명과 학생 7명은 서울에 왔다. 우리는 촌놈답게 매일을 헤매고 서울을 구경하고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며 걸었다.  서울은 참 신기한 곳이다. 곳곳에 옛날의 흔적이 있다. 남산에 있는 우리 숙소는 옛날 중앙정보부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었다. 곳곳에 중앙정보부의 흔적이 보였다. 정문을 나오면 마당 한 귀퉁이에 지상의 건물은 없이 지하로만 만들어진 곳이 있었다.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라 했다. 남영동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이 몇십 년 전에 고문을 하던 대공분실이었다고 들었는데 그곳만으로는 장소가 부족했었나 보다. 이런 곳이 몇 개나 될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전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야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숙소 근처에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있었다. 좀 더 알아보니 남산은 유스호스텔이기 전에 중앙정보부였고 중앙정보부이기 전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었다. 그 이전에는 또 어떤 곳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힘들었을까. 나는 걸을 뿐 길에 숨겨진 시간을 다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산을 걸었고, 헤맸으며 그 사이에 역사의 일부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에게는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위안부 '기억의 터'가 옛날 일본 통감관저의 자리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 옛날 중앙정보부 근처를 지금 내가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이유. 그것 또한 역사를 덮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을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온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는 역사의 시간을 살피느라 숙소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무심히 2층 식당으로 올라가던 중 옆에 놓인 비석을 발견했다. 윤선도가 살던 생가 터라는 글귀가 보였다. 명동성당 앞에 윤선도의 집이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이웃하고 있었다. 나는 윤선도라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어서 동료 교사에게 물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비석은 서울이 숨겨놓은 보석인 듯했다. 또한, 인사동을 가기 위해 도착한 지하철 안국역에는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웠던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 하나하나를 읽으며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다른 곳에서도 이런 분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서울은 걸으면 걸을수록 역사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태원 거리에 붙어 있는 김필의 청춘 위령가>

학생들과 함께 이태원도 걸었다. 10.29. 참사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는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서였다. 골목은 나를 포함한 5명이 들어갔을 뿐인데도 제법 찼다. 이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이태원의 모든 골목은 좁고 짧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길을 걸으며 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글들을 읽었다. 그들의 슬픔을 다 이해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날 하루닫기에서 한 학생이 슬퍼하기도 바빠 공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가수 김필은 '청춘 위령가'를 만들어 헌정했다. 나는 이 곡의 악보를 글과 함께 올린다. 크게 영향력 없는 글이지만 작게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는다. 작은 기억이 모여 힘이 생길 것이다. 꼭 그럴 거라 믿는다.

<오월 나무 작가님이 찍어주신 경복궁 뒷 거리>

서울의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혼자도 걷고 학생들과 걷고 동료 교사와 걸었다. 혼자 여행하는 날에는 브런치 친구인 오월 나무 님과 함께 서울을 걸었다. 작가님께서 안내해주셔서 청계천에서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과 청와대를 거쳐 북촌 한옥마을까지 걸었다. 작가님, 세종대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찍었던 사진을 보니 새삼 새롭다. 나의 하루가 함께 걸었던 길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다. 경복궁 뒷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길은 무슨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 받아주고 있을까. 내 작은 발걸음 하나에도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란히 함께 걸었던 작가님의 발걸음도 그럴 것이다. 두 명이 한 길을 함께 걸었다.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이야기를 하다가 길을 놓치기도 하면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걸었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 중이다.


길을 걷는다. 그리고 보고 배우고 느낀다. 서울에 숨어 있는 역사적 보물들을 좀 더 찾아보고 싶어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청와대 정문 앞에 핑크색으로 적힌 글자가 거슬렸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오랜 기간 동안 머무르며 집무를 보시던 곳인데 깊은 역사를 비웃는 듯한 가벼운 색감이 싫었다. 명동성당의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은 참 좋았고 조계사 앞에 노란 꽃들로 둘러싸인 불상들은 너무 화려해서 싫었다. 아마도 나는 서울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하고 까탈스러운 촌놈이 서울을 왔다 간다. 사람이 많고 건물도 큰 도시에 사람 냄새 얼마나 나는지 알고 싶어 구경 왔다가 간다. 의도치 않게 옛날 사람들의 향을 더 많이 맡은 듯하다. 그 향이 아직 살아있어 감사하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어가 봐야겠다. 걸으며 배우고 생각하며 기록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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