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여백
다시 집이다. 여행이 마라상궈 맛이라면 집은 담백한 콩 맛이다. 집에 들어와 앉으니 그제야 몸에 있는 여독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평소보다 식욕이 더 당긴다. 단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초코 가득 든 쿠키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벽에 딱 붙어 앉아 집안 이곳저곳을 바라본다. 고봉감이 먹기 좋게 곶감이 된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집의 여백이 예뻐 보인다. 아무것도 채우고 싶지 않아 나도 조용히 집 귀퉁이에 가구처럼 앉아 있다. 여행의 기운이 집의 여백과 섞여 조금씩 묽어진다. 그제야 몸도 서서히 편안해진다.
마음은 몸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아직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5일간의 서울 여행이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내 안에 뒤섞여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만 가득하다. 그러다 문득 길상사에서 본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매일 버리며 살 것. 참 인생은 요상스럽다.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야 하지만 또 그 시간을 끊임없이 지우고 버려야 한단다. 어리석은 중생 입장에서는 소화시키기 쉽지 않은 말이지만 길상사에서 점심 공양도 얻어먹었으니 밥값은 해야겠다 싶다. 아직은 뭐부터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일단 여러 가지 떠오르는 잡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11명이 4박 5일간 함께 지냈던 여행이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내가 일을 잘 처리했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었는지, 학생들의 마음은 잘 헤아렸는지 곱씹고 따져봐야 할 순간들이 몇 개 떠오른다. 생각해야 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교사의 모습이겠으나 반성하지 않기로 했다. 매 순간 옳은 판단을 하며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괜한 생각으로 혼자 아파하며 주말을 보내는 것보다는 주말에 푹 쉬고 좀 더 여유 있게 학교에 출근하고 싶다. 그것이 여행 동안 최선을 다한 나를 위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여행에 대한 반성은 월요일 공동체 회의 시간에 모두 함께 하는 것으로 미룬다. 복잡한 마음이 정리가 되니 단순해지는 느낌이다.
몸이 점점 더 노곤해지며 눕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못 누울 이유가 없지. 그대로 바닥에 누워 눈을 감는다. 다리가 욱신거린다. 그럴만하다 싶다. 계속 걸었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여의나루 역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상처가 났었다. 얼굴에 상처가 난 것만 생각하고 무릎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화요일에 난 상처가 목요일에도 아물지 않아 조금씩 걱정이 됐다. 계속 스키니진을 입고 다녀 그런 듯했다. 집에 오자마자 상처에 소독을 하고 공기가 통하도록 노출시켰다. 얼굴에도 밴드를 붙이지 않고 연고만 발랐다. 한숨 자고 나니 상처 부위에 제법 딱지가 앉아 있다. 집이 공기가 좋은 건가. 터가 좋은 건가. 며칠 걱정이 꾀부린 것으로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상처 회복이 빨라 다행이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상처를 그대로 보이는 것이 더 빨리 낫는 길이라는 것을 알겠다.
여행의 여운이 온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크게 욕심부리진 않았지만 시간을 버리지 않고 잘 쓰고 온 여행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운 이 순간이 만족스러울 수 있는 건 쉬는 시간의 의미를 잘 살리며 살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행 후 집에 들어온 순간의 느낌이 그 여행의 깊이를 말해주는 건 아닐까. 집안 곳곳에 여백이 보인다. 무엇이든 채울 수 있지만 채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편안한 곳이다. 내가 있어 조금씩 없어지는 여백이 아쉬워 몸을 좀 더 웅크려본다. 엄마 뱃속 태아처럼 편안하다. 곧 세상에 나와 "응애!"라고 외치기 전까지 좀 더 편하게 웅크려있을 예정이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촌놈이 서울 잘 다녀왔으니까. 뭐니뭐니 해도 집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