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 찾아 떠나는 여행

스마트폰 중독 탈출 17일째

by 마나

스마트폰 데이터를 끊은 지 2주일이 넘어간다. 11여 년 전 처음 스마트폰을 샀을 때는 문자와 통화 기능만으로도 바빴던 것 같은데 모양만 다를 뿐 딱 예전의 기능을 가진 지금의 폰은 할 것 없어 머리만 긁적거리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폰을 누른다. 공허한 터치가 괜히 멋쩍다. 폰을 사용하며 생긴 습관을 없애기엔 2주는 짧은가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고 마음을 먹어본다. 예기치 않은 일상의 변화에 마음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데이터를 강제로 끊은 것은 잘한 것 같다. 이미 중독된 나에게 폰 사용을 할 수 있되 줄여보자는 시도는 크게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미친 듯이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는다. 그럴 바엔 그냥 데이터를 복구시키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속에서 올라오지만 그냥 듣고 넘긴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생각보다 와이파이 구역이 집 근처에 많다. 굳이 카페에 가지 않더라도 건물 공용 구역에 컴퓨터를 두고 브런치 글을 적을 수 있다. 초저녁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글을 쓰는 맛이 솔솔하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내 폰이 반응을 하기도 한다. 우연히 잡힌 와이파이 덕분에 쌓아두고 있던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조용하던 일상에 갑작스러운 울림은 가끔은 반갑고 가끔은 성가시다. 실시간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


집은 절간만큼 조용하고 무음 속에서 내 속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집에서는 영상을 볼 수 없다. 평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폰을 보며 지냈던 걸까. 갑자기 남아 넘치는 시간과 공간이 낯설다. 무의식적으로 영상을 보려고 폰이 있는 곳을 찾는다. 오랜 습관으로 생긴 마음이라 눈앞에 보이는 조용한 현실보다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뭐라도 할 것을 찾는다. 지금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단순하면서도 몸을 쓰는 활동이 답이라 생각한다.


집이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다. 조용한 공간에는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잘 있는 집을 닦고 또 닦는다. 바닥이 내 머릿속인 듯하다.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스마트폰이 아니라 청소라면 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했던 내 공간이 바뀌고 있다. 정신없이 들리던 영상 소리 대신 가끔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조용하게 집을 비운다. 필요 없는 책들을 정리해서 책방에 팔고 잊어버리고 있던 차를 꺼내 만들어본다. 움직이고 난 후 마시는 차 한 잔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꿀맛이다.


일상에서 달라진 또 하나는 잠이다. 나는 평소에 깊은 잠을 못 자 늘 피곤함을 느꼈었다. 피로한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도 해 보고 보약도 먹었다. 크게 효과가 없어 나이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데이터를 끊고 난 뒤에는 고요함이 지루해서 잠을 자게 된다. 잠을 자다가 깨기도 하지만 새벽에 딱히 할 것이 없어 또 잔다. 한량이 따로 없다. 침대에 누워 나를 되짚어 본다. 피로해서 먹었던 보약 맛이 나는 듯해 부끄럽다. 밤에 충분히 잠을 자고 나니 확실히 덜 피곤하다. 아직 내 나이가 괜찮은가. 괜히 으쓱거리며 거울 한 번 보고 기분 좋게 출근한다.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것까지는 무리이다. 계속 잡생각이 들어 오래 집중이 안 된다. 대신 <칼의 노래>를 필사하는 양이 평소보다 좀 더 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몸으로 책을 읽으니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게 되고 천천히 책을 보게 되어 금단 현상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작가가 안내해 주는 대로 이순신 장군이 노량대첩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중이다. 생각보다 이순신 장군의 마음은 더 복잡했다. 나는 반대로 다른 생각 없이 이순신의 마음에만 집중한다. 정해져 있는 이야기지만 마치 실시간 영상을 보듯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글을 영상화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이다. 폰이 나에게 해만 끼친 것은 아닌가 보다. 헤어지려는 마음에 위안이 생긴다.


변할 시간이다. 아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폰 없이 혼자서도 잘 지냈던 나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 익숙한 것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지루해서 막막한 느낌도 그대로 둔다. 고요함이 나에게 주는 여유는 다른 생각 없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힘이 든다. 익숙해서 좋았던 시간과 즐거움이 나를 외롭게 한다. 그래도 변할 시간이다.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마지막 기회를 나는 잡았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 필사를 이용한 느린 독서를 하고 불편하고 초라하게 공용 와이파이를 찾으며 지루해서 외로워 하는 나를 응원한다. 천천히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