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열 번

스마트폰 중독 탈출 1달째

by 마나

스마트폰을 보며 한 달의 길이를 생각한다. 한 달은 긴 걸까, 짧은 걸까. 작심삼일을 열 번 할 수 있는 기간이니 짧은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 해서 한 달 전과 별달리 달라진 것도 없어 길다 할 수도 없다. 데이터를 끊은 지 한 달째다. 조용한 집에 있으면 멍청해진 스마트폰 쪽을 습관적으로 쳐다본다. 익숙한 플라스틱이다. 손에 쥐고 들어갈 수 없는 앱을 눌러본다. 돌아오는 말이 없어 이내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찾다가 괜히 달력 날짜만 보고 나온다. 헛짓이다. 한 달 동안 이러는 나를 보니 내 밑바닥이 이렇게 생겼구나 싶다. 나와 폰은 한 몸이었고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물아일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내가 누구인지를 깊이 고민한 수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말 같은데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폰 주인도 해당되는 말인 듯해 하찮게 느껴진다. 실상은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폰 중독자의 하찮은 변명일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기 싫어 죄 없는 말에 내 모자람을 뒤집어씌운다. 내 꼴을 보니 한 달은 짧은 기간임이 틀림없다.


스마트폰을 보며 한 달의 깊이를 생각한다. 조용한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마다 청소를 한다. 크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하고 나면 깨끗해서 기분 좋은 것이 청소다. 매일 먼지가 쌓인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다. 우울해질 틈 없이 할 것이 있어 다행이다. 어느 날은 청소를 한 후에도 시간이 남았다. 무슨 내용이든 상관없으니 소리가 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를 살까 싶었으나 겨우 뺀 스마트폰 자리를 다시 라디오로 채우려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고요함에 대항해서 필사를 했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에 전투력이 묻어났다. 조용한 집에 맞춰가는 나만의 소리였다. 요즘은 필사를 하며 알고리즘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조용함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알고리즘이 빠진 삶에는 어설픔이 있지만 조용한 집에는 보는 이가 없어 괜찮다. 한 달의 깊이는 첫 삽을 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갈 길은 멀지만 시작한 자의 기분 좋음이 있는 깊이다.


“심심하지 않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꼬리질문으로 뭐 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어 난감하다. 혼자 벽 보며 싸우는 중이라고 말하면 헛소리로 받아들일 것이 뻔해 그냥 웃고 만다. 남들 앞에서는 폰을 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혼자 하는 싸움이 헛짓이다. 혼자 있을 때와 반대라는 생각이 드니 사는 것이 우습다. 심심하지는 않은데 생각보다 조용함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십 년이 넘도록 잘 때를 빼고는 미디어에서 벗어난 적이 많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귀에서는 소음을 빼야 하고 눈에서는 영상을 빼야 한다. 빠르고 시끄러운 것들은 익숙하지만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내게 도움이 되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중이다.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벽과 하는 싸움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곤해한다. 우울함도 늘어간다. 그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돌아가는 것이 꼭 답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일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방법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친구가 심심한 곳을 책으로 채우라며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이란 책을 소개해줬다. 벽돌 같은 책은 내가 스스로는 절대 찾아보지 않을 책이었다. 책 읽는 것도 습관이라며 주기적으로 틀을 깨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벽과의 싸움과 결이 같았다. 평소에 소설만 많이 읽었던 나는 앞뒤 따지지 않고 그 책을 샀다. 그리고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이라는 부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으나 며칠이 지나도 내가 책을 놓지 않고 있어서 뿌듯하다. 책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책을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틀을 깨며 사는 삶이 마음근력을 키우는 길일 듯싶어서다. 책을 시작하고 나니 배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일석이조다. 이 모든 것들이 스마트폰이 빠진 내 삶에 여백이 있어 가능하다.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 들어갈 정도의 꽤 큰 공간이었음을 알겠다.


스마트폰 데이터가 없는 집에서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지났다. 먼지만 매일 쌓인 것은 아니었다. 비어냄이 한 달 쌓인 것이다. 빈 공간을 보면 자동적으로 채우려는 습관이 아직 있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냥 두려고 노력한다.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내용의 글이 써질까. 비워진 삶이 지루하지만 흥미진진하다. 내일의 내 반응을 알 수 없어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을 글로 남긴다. 오늘 한 생각이 박제되어 내일 내가 흔들릴 때 잡아줄 것이다. 혼자만의 싸움은 외롭다. 홀로 남겨진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매번 어설프겠지만 적어도 알고리즘이 나 대신 선택하는 삶은 살지 말자고 다짐한다. 오늘도 책상 위에서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씩씩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