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중독 탈출 40일째
산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 다들 급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짐도 안 싸고 나비를 쫓아갔다. 내가 가야 할 곳을 안내해 주는 듯했다. "혼자 어디 가니?" 한참을 정신없이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놀라서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능력이 없는 길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산속에는 풀냄새가 가득하고 눈앞에는 큰 아름드리나무가 있고 주변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옆에 아무도 없어 신남과 불안함 사이에서 주저했다. 여기는 천국일까. 꾸고 있는 꿈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4박 5일간 학생 7명과 교사 4명은 진주 장군농장으로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매년 가는 곳인데 함께 가는 학생들이 달라서 갈 때마다 익숙한 듯 낯설었다. 이번 여행 동안에는 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학생 규칙을 나도 따라보기로 했다. 데이터를 끊고 살고 있긴 하지만 폰을 손에서 놓지는 못하고 있어서 이번 기회를 잡아보자 싶었다. 학생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교사의 모습이 쑥스럽긴 했지만, 다행히 학생들도 내가 함께함을 싫어하진 않았다. 밭에서 일할 때마다 몇 시인지를 몇 번이고 생각했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있으니 힘이 들 수밖에. 새참을 기다리며 길 끝을 쳐다보고 시간을 알 수 없어 해를 쳐다봤다. 몇 시인지 물어보는 학생에게 나도 너와 똑같음을 이야기했다. 몇 시쯤 되지 않았을까를 추측해보기도 했지만 그다지 감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의미가 없었다.
해가 시계였다.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일을 했다. 한낮에는 너무 더워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해를 피해 새벽과 오후 시간에 밭에 나갔다. 장군샘 말씀으로는 5월에 참깨를 심었는데 그 뒤 바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씨앗이 발아를 못했다 했다. 참깨 대신 잡초가 대부분인 밭이었다. 우리는 잡초를 제거하고 그곳에 씨앗을 넣는 작업을 했다. 작은 참깨 종자를 4,5개 정도 잡아서 흙에 넣고 얇게 덮었다. 참깨밭을 참깨밭이라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드물게 참깨가 발아해서 자란 경우도 있었다. 반가움에 괜히 한번 만져봤다. 줄기에 있는 솜털이 뽀송했다.
아침에는 8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했다. 해가 내 머리 위로 올 때쯤이면 점심 먹고 한숨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숙소에 오자마자 점심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수박 한 통을 깨서 다 먹었다. 수박 배, 밥 배 따로라고 허세를 부리며 허기짐과 목마름을 채웠다. 덕분에 일이 힘든 것과는 반대로 배는 계속 나왔다. 온몸은 점점 타서 색이 짙어졌고 배는 볼록해졌으며 근육은 성이 나서 움직일 때마다 끙끙거렸다. 수박 한 조각 먹고 한숨 쉬고를 모두가 함께 했다. 우리 꼴이 웃겨 함께 웃었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식사 때 음식을 남기지 않은 건 누가 가르쳐줘서 한 일이 아니었다. 끙끙대며 몸으로 배운 깨달음이었다.
오후 작업은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였다. 오전에 참깨밭 일이 마무리가 돼서 하우스로 이동을 했다. 거기에도 참깨를 심었다고 했는데 발아가 된 것이 거의 없었다. 이것을 보고 장군샘이 어떤 마음이셨을까. 농업은 힘든 일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셨다.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의 힘을 빌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무능력함. 참깨가 더 이상 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우리의 민낯은 더 드러나지 않을까. 나와 너를 분리할 수 없는 우리들의 문제였다. 힘들지만 유기농법을 이어가는 장군샘의 고집이 어떤 이유로든 꺾이지 않길 바랐다.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리고 가야겠다 싶었다. 오후에는 다행히 비가 와서 덥진 않았다.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참깨를 심었다.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저녁 먹을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혼자 있어야 에너지 충전이 되는 나는 그 시간을 혼자 산책하는 시간으로 잡았다. 숙소 주변 동네 안으로 들어가니 큰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몇 신지 생각하지도 않고 나무 밑에 누웠다. 바람결에 피로가 날아가는 듯했다. 조용히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셨다. 유모차 같은 것에 의지해 다리 운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마음이 쓰였으나 많이 아픈지 물어보지 않았다. 농촌봉사활동을 온 지 사흘째라고 했다. 농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힘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평생 농사일을 한 분이셨다. 그 앞에서 힘들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의 만남이 지금 부는 바람처럼 가볍길 바랐다. 그것이 할머니를 위한 마음인지 농촌의 현실을 다 알고 싶지 않은 나의 비겁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재롱부릴 나이는 아니지만 근처에 학생도 없으니 할 수 있는 한 애를 썼다. 헤어져 돌아오며 대화를 곱씹었다. 만남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틈날 때마다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다. SF소설이라 시골에서 읽으니 책과 현실이 더 비교가 되었다. 책 속에서는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인간배아를 만들어내고 우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했다. 이런 시대에 나는 시골에서 땀내 풍기며 나무 밑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들 빛의 속도를 궁금해하는데 나는 지금 시간조차 모른다. 폰을 끄고 참깨 종자를 손으로 하나하나 흙에 넣는 삶은 이제 정말로 구시대적인 발상인 걸까. 앞으로 가야 할 시간인데 나만 몰라 폰과 멀어지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지 못하는 건지 시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건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농촌봉사활동은 의미 있었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책 하나에도 흔들리고 폰 하나에도 휘말린다. 아직은 고집이 아니라 신념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폰을 끄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