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있는 것을 모른다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6년 전 환경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동료 교사는 수업을 시작하며 관련 영상을 보여 주었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힌 것을 뽑는 장면이었다. 코를 건드리기만 해도 아파하는 거북이를 최대한 배려해 핀셋으로 빨대를 잡아 빼는 작업은 한 번만에 이뤄지지 않았다. 긴 영상은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나는 괴로워하는 거북이의 신음 소리를 듣기가 힘들어 보는 내내 코를 틀어막았다.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빨대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일상 속 빨대 하나. 오늘 내가 몇 개의 빨대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관심한 물건이 5분 내 손에 있다가 500년간 지구 안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유학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외면했던 것이 아니라 환경에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무지는 착각을 낳고 착각은 무관심을 낳았다. 부끄러웠지만 배워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배운 것을 하나씩 써먹으며 일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분리수거를 시작하고 육식을 줄이고 물건 사기 전에 제품의 인증 마크를 살폈다. 누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변하는 내 시간이 소중했다. 환경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환경 수업을 내가 맡아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스스로 지키고 있는 부분에 한해서는 수업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수업은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수업을 준비하며 나는 다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 일상은 충분하지 않았고 내가 가졌던 자신감은 근거가 부족했다. 수업 준비는 곧 나의 반성문이었다.
내가 할 환경 수업의 목표도 학생들이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으로 잡았다. 배운 것만 써먹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활 습관을 잡기만 하면 학생들이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 속도를 낼 거라 기대한 것도 있다. 환경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어 처음부터 너무 크게 생각하면 수업이 헛돌 것 같았다. 현재 환경 문제는 심각하지만 학생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문제 인식을 했으면 했다. 수업을 진행하며 이런 내 생각은 수업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기도 했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환경을 인식하게 하게도 했다. 나는 수업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른다. 4년째 수업을 하고 있지만 그냥 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그래, 나는 그냥 수업을 했다.
환경 수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었다. 수업이 잘 진행되고 안 되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만 분리수거를 하고 소비 패턴을 바꿔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질보다는 양이 중요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야만 지구 온도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환경 수업에서 사람들은 학생, 교사가 아니라 함께 시대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동료였다. 가끔은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는 내 생각부터가 백일몽 같았다. 크게 환경에 대한 생각이 없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조바심이 났었고 그것은 곧장 학생들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환경 공부는 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는 것과 현실의 갭 차이에서 나는 괴로웠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건지, 아는 것만큼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수없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환경 수업을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통을 처리할 때마다 여전히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내용물을 보며 허무함보다는 두려움이 느낀다. 이렇게 작은 학교 안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기 쉽지 않은데 전 세계적으로 힘을 모아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서였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고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날씨가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환경 수업을 진행하는 나의 부담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점점 힘이 빠지는 나를 본다. 학교 급식소에서 플라스틱 통 분리수거 캠페인을 2년 동안 진행하다가 올해는 그만두었다. 급식소에 갈 때마다 느껴야 했던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캠페인을 그만두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나는 편했고 또 미안했다.
타일러 라쉬의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3년 전에 접했다. 색이 거의 없는 표지, 흑백의 작은 사진들, 그리고 FSC인증마크가 있는 재생용지까지 책 자체가 타일러의 생각이었다. 책을 읽으며 환경 수업을 준비했다. 관련 동영상도 봤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에서 타일러의 눈빛은 해맑았고 환경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수업을 하며 방황하던 때에 타일러는 크게 의지가 되었다.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는 나에게 부담되는 일이지만 부담 갖지 않으려 노력하며 함께 하자고 말해주는 듯했다.
며칠 전, 새로 올라온 타일러의 영상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아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이야기 끝에 받은 질문에 타일러는 한숨을 쉬며 약간은 냉소적으로 답을 했다. 몇 년 전 동영상에서 본 그의 해맑았던 눈빛은 좀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고 피로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변화가 마음이 쓰였다. "나보다 어린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에 대한 문제예요. 아직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해서 하는 질문 같아 보여요." 타일러의 대답에 나는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나는 환경 문제를 내가 풀어야 할 문제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환경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생활 습관이나 인식을 바꿔주기 위함이었지 내 삶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까지 더 부끄러워져야 할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질보다 양이다. 몇 년 하고 말 생각이 아니라 평생 하며 살아야 할 부분이다. 지치지 않고 오래가기 위해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 2학기에는 환경 수업을 따로 잡진 않았다. 대신 주기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편리함과의 싸움이다. 작은 불편함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기 귀찮은 일일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배웠지만 잊어버리기 쉽다면 대신 주기적으로 떠올리는 시간을 주면 될 것이다. 나는 잘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문제이다. 내 문제는 내가 책임을 지는 시간으로 삶이 채워지길 바란다. 그 곁에 많은 사람이 함께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