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발표회
오늘은 1학기 마지막인 성장발표회 날이었다. 학생, 가족, 수료생, 교사 등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1학기 동안 있었던 6기 학생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실 꾸미기부터 시작해 행사 진행과 발표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이 준비했고 교사는 옆에서 보조했다. 행사 시간이 다 되어가자 손님이 한 분씩 들어오셨다 학생들의 긴장도가 점점 더 올라갔다. 나는 떨고 있는 보름이의 발표 대본을 마지막으로 같이 점검하며 목소리와 몸에서 전달되는 진동을 잠시 공유했다. 나의 위로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보름이의 말이 너무 이해가 되어 나도 모르게 열리는 교사의 입을 닫고 보름이가 시키는 대로 그저 옆에 있어 주었다. 대본 점검이 끝나고 그제야 씩 웃는 보름이의 모습에 나도 안심이 되어 웃어 주었다.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말 대신 웃음에 담았다.
학생들은 발표를 잘했다. 자유학교에서 잘했다는 것은 스스로를 진솔하게 보여줬다는 것을 뜻한다. 1학기 동안 교육과정에 집중했던 학생들은 그 속에서 배운 것을 말했고 크게 집중하지 못하고 1학기를 흘려버린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던 이유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속도도 색깔도 다른 7명의 학생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다. 무대에 거짓이 없어 성장의 맛이 느껴졌다. 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떠올렸다. 함께 있되 또 따로 있는 형태로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인데 7명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멋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학교에서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학생마다 다 달랐다.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좀 더 다양한 교육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계획할 수는 있지만 학생들의 배움의 순간을 추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물을 촘촘히 쳐서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자신만의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다라고 생각했다.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자칫 고정될 수 있는 사고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학생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경력이 쌓인다고 일이 편해지진 않는다. 앞으로 교사로서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으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창의성을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성장발표회는 나의 성장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손님으로 6기 학생의 동생들이 많이 왔다. 중학생 특유의 앳되지만 표정 없는 얼굴로, 언니와 오빠의 무대를 보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재주는 없었다. 대신 설화가 무대에 섰을 때 조용히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동생을 발견할 수는 있었다. 사춘기 동생의 숨겨진 마음을 보는 것 같아 빨리 폰을 꺼내 사진 찍는 동생의 뒷모습과 폰 화면 속에 담긴 설화의 모습을 동시에 담았다. 행사가 끝난 후 그 사진을 설화 가족들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혼자 뿌듯해했다. 동생들 중 가장 어린 동생은 3살이었다. 산호가 무대에서 발표를 시작하자 아이도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낀 모양이었다. 소리를 내며 무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시선이 분산되어 아이를 밖으로 데려 나가려고 했지만 아이는 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상황을 정확히 잘 모를 텐데도 언니에게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은 감지가 되는 모양이었다. 교실 밖을 나가지 않고 언니를 보려는 아이와 그런 동생을 부모와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대 위 산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그리고 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느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장발표회'라는 말이 딱 맞는 이름 같다는 한 아버지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어떤 일이 끝나면 성과보고회나 결과보고회 같은 것을 하는데 자유학교에서는 1학기가 끝난 후 말 그대로 '성장'에 대한 발표를 했으니 이 행사가 '성장발표회'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자녀가 이룬 성과보다는 한 학기를 잘 보낸 노고를 읽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했다. 감동적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6번째 성장발표회를 참여한 나는 단 한 번도 '성장발표회'라는 말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살면 그 일을 겪어도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학부모의 한 마디 말씀이 나를 되짚어보게 했다. 타성에 젖어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방학 동안 점검해야겠다 싶었다.
1학기가 정말 끝이 났다. 성장발표회 다음 날은 늘 허무하다. 전날과 농도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오전에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시켰다. 라떼 위에 하트가 제법 예뻤는데 나는 감탄이고 뭐고 없이 그저 마셨다. 커피가 반쯤 들어가니 정신이 차려지는 듯했다. 하트는 이미 일그러져 있지만 상관없었다. 커피는 고소하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머리도 감지 않았다. 머리가 찝찝한 만큼 자유로웠다. 그래, 지금 나는 허무하고 외롭고 또 자유로운가 보다. 정돈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늘 반듯해야 하고 옳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교사가 아니라 지금 나는 동네 마실 나온 카페 손님이기 때문이다. 어제 있었던 성장발표회 사진을 다시 살펴봤다. 자유롭고 싶은데, 학교 생각은 잠시 쉬고 싶은데, 자동으로 학교 사진을 보고 있는 나를 봤다. 교사로서의 멋진 책임감이 아니라 직업병이라 이름 붙일 정도의 습관이라 생각한다. 쉴 때 어색하고 일할 때 어설프지 말고, 쉴 때 잘 쉬고 일할 때 집중하자고 다짐하며 마지막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1학기가 끝났다. 고생했다. 좀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