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수업
나는 고1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마음으로는 아직 내가 고1인 것 같은데, 몸은 벌써 고1을 두 번이나 지나고 세 번째 고1을 향해 가는 중이다. 흔히들 17세를 사춘기라 부른다. 아이가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나는 시시각각 올라오는 감정들이 무거워 많이 울었던 첫 번째 고1을 경험했고 남들보다 늦게 교직 생활을 시작한 탓에 남들과의 감정 교류에 어색해하며 두 번째 고1을 보냈다. 평생을 사춘기인 듯한 나에게 감정은 늘 해결하고 싶은 숙제이자 동반자였다. 이런 내가 6차시 심리학 수업을 맡았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따로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사춘기 선배로서 첫 번째 고1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 무겁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좀 더 깊숙한 마음에는 아직 숙제를 하고 있는 나에게 수업을 준비하며 어떤 감정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다.
심리학 프로젝트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였다. 책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를 참고했다.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 기분이 태도가 됐던 적을 떠올렸다.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별다른 이유가 없었던 그 순간에 나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분노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첫 장을 폈다. 글의 제목은 "내 기분은 내 책임입니다"였다. 내 분노와 두려움 뒤에 숨은 '무엇'의 실체가 나라고 책은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잠시 책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나를 직면할 준비가 되었던가. 선뜻 답하지 못해 주춤했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서점을 나올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망설이는 순간에는 그냥 하는 게 낫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수업에 핑계를 대며 그냥 해보자 싶었다. 혼자보다는 학생, 동료 교사 들과 함께 할 테니 좀 낫지 않을까라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1,2차시 수업이 시작되고 우리는 함께 다녀온 하동 여행을 소재로 하여 여행 중 느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희로애락으로 나누어 글을 적고 그것을 공유했다.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고 나의 노와 애를 표현하는 것은 너에게 비난하는 말로 오해되기 쉬웠다. 아직 만난 지 한 달 조금 지났을 뿐인 우리들은 서로의 앞에서 나를 직면하는 일이 어려웠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첫 수업을 진행하며 진땀을 뺐다. 용기를 낸 학생들을 좀 더 매끄럽게 이끌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내 감정은 내 책임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수업인데 힘겹게 끝나 힘이 빠졌지만 미안함과 허무함만을 느끼고 있기에는 다음 수업 시간이 금방이라 여유가 없었다.
3,4차시 수업에서는 박재연 소장이 '내 감정을 책임질 때 찾아오는 자유'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같이 봤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면했을 때 찾아오는 자유를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셔서 우리들은 편안하게 강의의 내용을 각자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강의를 보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여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크게 표현은 하지 않지만 표정이 좋지 않게 나오곤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몰랐다며 쑥스러워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수업 시간에 마음을 낸 경험은 하교를 하며 여름이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을까. 용기를 내었던 하루의 끝이 자유의 달콤함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6차시 마지막 수업에서는 감정에 직면하고 난 후 이것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여러 감정 중 분노와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관련된 글을 읽은 후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불안을 잘 느낀다는 산호는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워 해 나간다고 했다. 평소에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 산호라서 정답 같은 방법 대신 가끔은 불안하면 그냥 널브러져 보기도 하라는 말을 덧붙여 줬다. 설화는 태어나서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끔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했을 때 17년의 세월이 너무 지난해 보였다. 표현을 하며 살자고 말은 했지만 많이 기다려줘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설화가 화가 나서 표현하는 그 순간을 올해 볼 수 있을까.
수업이 진행되면서 나도 혼자서 감정에 직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다. 5차시 수업을 시작하자 마자 자기 시작한 학생을 보며 잠시 하려던 활동을 중단하고 나의 감정을 전달했다. "예전에는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이 있으면 나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슬프고 난감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아요. 제 잘못은 없는 것 같아 감정의 동요가 없어요. 수업을 시작하고 내가 한 일은 영상을 튼 일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수업을 다 같이 들었으면 싶어서 지금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잠시 쉬어야 할지 의견을 묻고 싶어요. 어떻게 할까요?" 학생들은 10분을 쉬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뒤 수업은 잘 진행이 되었다. 10분을 투자해 나머지 1시간을 얻었으니 나름 괜찮은 거래였다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분노와 슬픔이 태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심리학 수업을 끝내며 파파야는 각자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좋았다고 했다. 두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다시 돌아보고 좀 덜 힘들게 사는 법을 찾아봐야겠다고 했고 예아트는 감정 뒤에 숨은 욕구를 찾아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진지하게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모습이 새삼 예뻐 보였다. 나를 제대로 알고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은 11명이 모여 오늘도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만든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수업의 끝과는 무관하게 앞으로 1년 동안 계속해서 이런 대화를 나누자는 말을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프로젝트의 끝은 또 다른 프로젝트의 시작이라더니 오늘 수업을 마무리하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하는 우리들의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