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는 <쉽게 씌여진 시>를 정말 쉽게 썼을까. 나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를 썼던 시대적 상황은 1942년 일제강점기 시대였고, 원치 않은 창씨개명까지 하며 시작한 일본 유학 시절이었다. 누가 봐도 쉽게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는 왜 시가 쉽게 쓰였다고 말한 걸까. 내가 시의 제목 '쉽게 씌여진 시'를 반어법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도 아이러니하게도 시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살기 힘들다는 것을 일상생활을 통해 느끼며 그는 하루하루를 부끄러워하고 하루하루를 힘겨워했다. 어릴 적 동무들 죄다 잃어버리고 홀로 침전해야 하는 그의 삶은 가만히 있어도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아픔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그가 이 시를 일기를 적듯 한 번에 적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여진 시>는 윤동주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다. 1942년 6월 3일에 시를 썼고 1943년 7월 13일에 감옥에 갇혀 1945년 2월 16일에 옥사했다. 쉽게 쓰였다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시고 이 시를 좋아하지만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다. 먼 곳에 있는 별을 보는 것처럼 동경의 대상으로 막연하게 시와 시인을 생각한 정도가 여태껏 내 수준이었다. 파파야가 국어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읽을 시로 <쉽게 씌여진 시>를 내놓으셨을 때 반가움이 앞섰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를 감상하며 지금의 나를 넘어서 시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랐다.
시 수업은 정답이 없다는 파파야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윤동주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시를 살펴보며 윤동주는 부끄럼이 많았던 사람, 자신의 생각만큼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함을 힘들어했던 사람, 시대에 흔들리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 보였다. 그와 또 다른 그가 손을 내밀어 최초로 악수를 했던 날이 생애 마지막 시, 마지막 연에라도 담겨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수없이 흔들렸을 그의 생애와 시를 감상하며 나는 내가 윤동주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에서 나의 부끄러움이 보였고 흔들리는 윤동주의 삶에서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를 일제강점기 시대 저항 시인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윤동주가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시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오랜 자책 끝에 부끄러움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 남겼다. 시를 읽고 이해할수록 윤동주가 가깝게 느껴졌다. 내 옆에 앉아, 흔들리며 사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시를 다 읽고 각자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아트는 작곡가 쇼팽의 삶도 윤동주의 삶과 비슷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친구들이 모두 전쟁터로 나갈 때 쇼팽의 한 친구가 "너는 음악으로 나라를 구해야 하니 남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홀로 남겨진 미안함에 평생을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수많은 작곡을 한 쇼팽은 현재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윤동주도 쇼팽도 개인적인 죄책감보다 예술가로서 시를 그리고 음악을 더 소중히 생각했던 분이 아니었을까.
두나가 윤동주의 삶을 이야기하며 타협이란 말을 했다. 파파야가 타협이란 말은 이 시와 어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설명을 해주셨을 때, 생각을 한번 비틀어보고 싶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 속에 현실에 타협을 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적은 없을까. 윤동주는 일제에 저항한 삶을 살았지만 시를 통해서였기 때문에 실제의 삶 속에서는 순응하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시 속이 아니라 온전히 현실을 살아갈 때 자신의 시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생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이 시로 나타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윤동주의 힘들었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특히, 여태 가지고 있던 동경의 틀에서 벗어나 보고자 했다. 이번 국어 시간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자신의 시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시인으로서 살아가기엔 슬플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도 그는 시인으로 살았다. 그때도, 돌아가신 지금도 그는 여전히 시인이다. 슬픈 천명을 잘 받아들인 그의 강인함은 마지막 악수를 통해 스스로도 알게 되었을 거라 믿는다. 윤동주의 삶을 보며 내 삶을 생각한다. 윤동주의 시를 보며 위로를 받고 나의 길을 찾아본다.
나도 타협을 하며 산다. 교사는 나의 슬픈 천명이 아니라 나의 직업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타협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질문에 바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윤동주와 나의 차이가 아닐까. 나름 열심히 살고 있고 부끄러운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윤동주의 시와 같이 모든 것과 타협하면서도 지켜내고 싶은 것이 아직 없다. 타협이란 단어가 꽂혔던 이유는 살면서 정말로 지켜내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찾고 싶어서였다. 아무래도 윤동주가 내게 숙제를 내어준 것 같다. 내가 지켜내고 싶은 것. 그것을 찾아보자. 윤동주에게는 미안하지만 언젠가 찾을 나의 천명은 그리 슬프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