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3월, 학교는 어색하다. 크게 한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에너지가 떨어진다. 학교 어딘가에 에너지 뱀파이어가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면에서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은 다행히 학교를 싫어하진 않는 듯하다. 새 학기의 낯섦과 피로함을 뚫고 늦지 않게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고맙다. 나이 많은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는 홍삼을 나눠 먹으며 눈빛으로 파이팅을 외친다. 교무실도 교실도 모두가 어색하게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일주일 후 자유학교 학생 6명과 교사 4명은 걷기 여행을 간다. 두 다리는 있으되 왜 있는지 알고자 하지 않았던 죄인들은 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 갑자기 늘어난 걷기 시간에 당황했다. 다행히 입학 전, 걷기 수업에 대해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어 도망가려 계획을 세우진 않는 듯했다. 학생들을 보면 첫 여행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마음이 봄과 닮아 나도 덩달아 움직인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걷기 연습 삼아 매일 오후 학교 뒷산에 가기로 했다. 여행을 핑계로 학생들을 몰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걷기가 일 년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숨어 있었다.
작년 내내 걷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내 몸에 붙어 있는 다리 두 개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에서 출발했다. 사람 몸은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며 진화했다고 한다. 쓸모없는 부위가 있을 리가 없다. 다리 관절과 근육을 편안하게 움직여보면 몸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렇다면, 다리가 있는 이유는 움직이면서 주변과 어울려 살라는 뜻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걷기는 만남과 연결이 되었다. 나는 걸으며 나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학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꼈다. 교실에서의 만남과 교실 밖에서의 만남은 또 다른 것이었다. 몸으로 주변과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작년의 끝은 올해의 시작이다. 학생들과 함께 잘 걷고 싶은 내 마음을 들은 후 국어 교사이신 파파야가 <걷는 존재>라는 책을 소개해주셨다. 52개의 걷는 법을 소개한 책이었다. 목차가 마음에 들어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걷기에 대한 깊은 사유의 흔적이 느껴졌다. 너무 묵직하게 걷기에 접근하는 것이 걸음마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책은 함께 읽지 않고 목차만 활용하기로 했다.
매일 우리는 목차에 적힌 방법 중 하나를 정해놓고 걷는다. 처음에는 바른 자세로 걷기를 선택했다. 삼박자 보행(뒤꿈치-중앙-앞꿈치)이 기본이었다. 앞으로 나가는 동력은 앞다리가 아니라 뒷다리의 밀어주는 힘이었다.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뒷다리로 몸을 밀듯 걸어서 힘은 덜 들었지만 뒷다리를 쭉 펴야 해서 익숙하지가 않았다. 앞으로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지라 학생들도 어색하지만 열심히 따라왔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던가. 한 걸음을 제대로 걸어야 오래 걸을 수 있다. 첫걸음의 반듯함으로 천리 길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해 뒷다리를 쫙쫙 펴며 어색하게 걸었다. 제대로 된 방법이 어색하다는 건 내가 평소에 삐뚤게 걸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제대로 가기 위해 평소와는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삐둘거렸다.
하루는 흩어지는 시간 없이 모두 끝까지 함께 걷기도 했다. 개인 걸음걸이 속도를 전체 속도에 맞추었다. 내가 앞장을 섰기 때문에 가다가 학생들이 힘들 때쯤 멈추고를 반복했다. 쉴 때 물을 가지고 오지 못한 현붕이를 위해 설화가 용기를 내어 물통을 내밀었다. 현붕이는 물이 거의 없는 물통을 보고 미안해서 "아니,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두나가 "마음은 없어. 물만 받아."라고 되받아쳤다. 모두가 웃으며 그 대화를 들었다. 학생들은 어색한 와중에도 조금씩 재치 있게 친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날에는 멈추는 권한을 학생들에게 넘겼다. 쉬고 싶을 때 이야기하라는 말만 하고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힘들 텐데 싶어 뒤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쉴래?"란 말을 먼저 하려는 오지랖은 잘 참아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2분 전 설화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샘, 좀 쉬어요." 나를 마나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아직 어색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설화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저기, 목적지 보이죠? 다 왔어요." 목적지가 눈앞인 걸 확인한 학생들은 마지막 힘을 냈다. 도착해서 쉬는 학생들의 볼이 붉었다.
며칠간 걸으면서 산길을 대충 익힌 보름이가 나 대신 앞장서서 걸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기분 좋게 보름이 뒤에 섰다. 보름이는 선두로 걸으며 가끔 뒤를 돌아 마지막으로 오고 있는 현붕이가 잘 따라오는지를 살폈다. 지금 보름이는 무엇을 느끼며 걷고 있을까. 보름이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묻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일인 듯했다. 가끔 교사도 학생에게 기대어 걷는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알까. 조금씩 내 자리가 뒤로 밀려나는 꿈을 꿔본다. 기댈 수 있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나이 많은 교사들은 홍삼 조금씩 덜 먹어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오늘은 풍경을 보며 걷기를 했다. 산은 아직 겨울의 갈색빛을 띠고 있긴 하지만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었다. 진분홍색 진달래꽃 옆에 연두색 새싹도 보였다. 봄이 오고 있었다. 하루닫기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 너무 힘들어서 길만 봤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하나씩은 살펴본 모양이다. 학생들은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힘이 아닐까. 그냥 걷기만 했을 뿐인데 우리 마음속에 뭔가가 꿈틀거렸다. 함께 걸으며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있었다.
퇴근 후 서점을 찾았다. 거기서 우연히 <걷는 사람>을 만났다. 하정우. 영화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걷기로 책을 낼 정도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서서 프롤로그를 읽었다. 하정우에게 걷기란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걷기가 하정우에게 어떤 의미일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하든 기록하며 살 것이란 생각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었다. 하정우도 걷기를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걷는 사람을 글로 찾았다. 책을 읽으며 그 사람의 생각이 나에게로 전달됐다. 내일은 걷는 동안 하정우의 말대로 두 다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걸었을 뿐인데 많은 만남이 오고 간다. 내 삶이 잘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