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를 한다
길 위에 차들이 부지런히 오고 간다. 테트리스 게임하듯 각자의 자리를 찾는다. 나만 빼고 다들 바쁘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내 자리가 없어 낯설다. 목적 없는 내 눈은 창밖의 차들과 달리 움직임이 없다. 출근 길이 전쟁터라면 지금 보고 있는 길은 승패가 크게 상관없는 게임터 같다. 같은 길, 다른 느낌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방학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낯섦, 익숙함, 외로움, 편안함이 모두 얽혀 나는 지금 구름처럼 두리둥실 떠있다. 똑떨어지는 테트리스와 다른, 두루뭉술한 내 마음은 개학 전날과 꿍짝이 딱 맞다.
도로 위에 있을 때는 내가 테트리스 게임 속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뭐가 그리 심각하고 뭐가 그리 바쁜지 혼자서 연신 눈과 손을 움직인다. 그리고 길 위에서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명확한 것이 중요하다. 내 자리를 찾았음에 감사하며 늦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 앞뒤에 있는 차들이 제 속도로 움직이며 각자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크랙슨 소리가 바로 날아온다. 테트리스 게임이 끝나지 않도록 다들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
교사의 시간도 테트리스와 닮았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몸과 마음을 정비하며 살아간다. 방학과 개학을 가르고 있는 오늘 같은 날에는 정확하게 아귀가 맞지 않은 테트리스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방학과 개학의 온도차 때문일 것이다. 방학 전쯤부터 쉬지 않으면 조만간 번아웃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도 새우잠을 잤다. 힘을 빼기 위해 방학 내내 할 수 있는 한 몸을 한껏 움츠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방학의 테트리스는 최대한 느리게 진행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히 편안했다. 어디로 가서 안착할지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잘못 자리를 잡아도 또다시 천천히 시작해도 되는 게임이었다.
방학이 끝나간다. 나는 내일부터 다시 빠른 속도의 테트리스를 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그래도 아직 나에게는 12시간의 방학이 남았다.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창가에 앉아 도로를 본다. 신호에 맞게 차들이 딱딱 움직인다. 나도 덩달아 내일 하루를 미리 돌려본다. 요즘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매일 보는 내 얼굴의 변화를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알아본다. 굳어 있던 내 몸이 다시 자리 잡았다고 말해주는 듯해 안심이다. 학생들은 매년 똑같이 17살이고 나는 1살씩 더 나이를 먹는다. 불리한 이 게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판단했다. 1년씩 늘어나는 나이 차이를 이렇게라도 극복하며 학생들 옆에 있고 싶다. 개학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다른 것보다 좀 더 일찍 핀 동백꽃을 보았다. 지는 노을에 빨간 동백꽃이 어우러져 새초롬해 보였다. 주변의 덜 자란 꽃봉오리들과 대비가 되었다. 작은 동백꽃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나를 보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의 삶도 편안할 수 있을까. 방학 때 가졌던 여유를 개학하고서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동백꽃의 힘을 담아 내일 출근할 때 빨간 립스틱을 발라봐야겠다. 강하지만 편안했던 그때의 산책처럼 나의 학교 생활도 그러하길 빈다.
나는 학교가 좋다. 학교에 가면 내 호기심을 채워 줄 것들이 많다. 학생 수만큼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학도 좋다. 시간표에 따라 살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자유롭다. 학교의 틀속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자유에 대한 갈망도 높아진다. 말이 안 되는 말 같지만 솔직히 나는 두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교사로 학교에 갈 수 있어 좋고 교사가 아닐 수 있어 방학이 좋다. 교사는 내 직업이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교사로서의 삶을 빼놓고 나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두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교사가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는 것, 교사도 학생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점점 받아들이는 중이다. 오늘은 방학 마지막 날이다. 두리뭉술한 내 마음을 담아내기 딱 좋은 날이라 생각한다. 아직 좀 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