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달살이 : 에필로그
자전거를 되팔았어. 한참 좋을 때 정을 떼는 건 쉽진 않잖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질척대더라고. 그래서 바로 중고 자전거 가게로 가지 않고 크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았어. 일부러 멀리 있는 주차장에 세워놓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말이야. 비가 올 때에도 별생각 없이 자전거는 밖에 두고 나만 식당에 들어가곤 했으면서 오늘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먹는 내내 주차장 쪽만 쳐다봤던 것 같아. 질척거리는 나와는 달리 자전거는 처음처럼 끝을 보낼 요량인 듯했지.
4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타고 다니며 정을 나눴던 자전거였는데 파는 데는 1분도 안 걸렸어. 하긴, 헤어지는 건 원래 이런 거지. 질질 끈다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는 씁쓸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리고 가게 주인 손에 들어간 자전거를 마지막으로 봤지. 주인은 내게 2,000엔을 주시며 "감솨합니다."라고 하시더라. 한 달 전 자전거를 살 때에는 한국말을 못하셨기 때문에 나를 위해 미리 인사말을 준비하신 게 틀림없었어. 겸연쩍게 웃으시는 모습이 푸근해 쓸쓸한 내 마음도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어.
'길이 이렇게 길었었나.' 자전거로 왔던 길을 다시 터덜터덜 걸으며 괜히 툴툴거렸어. 마음은 아직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어서 멀어지는 거리만큼 몸이 무거워지더라고. 제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 말이나 흘려보냈어. 일본에서 하는 한국어 혼잣말이라 남에게 들릴 여지가 없어 다행이었지. 똑같은 길인데 자전거를 타고 올 때와 걸어서 되돌아갈 때 느낌이 달랐어. 길고 지루했지만 마지막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니 이 길이 더 맞겠다 싶기도 하더라. 나는 그렇게 천천히 자전거와 헤어졌어. 내 발자국 속도에 맞춰 멀어져서 다행이었지.
일본에 있는 동안 자전거는 내 오른팔, 스마트폰은 왼팔이었어. 한 달 동안 양쪽에서 도움을 받으며 낯선 곳을 신나게 누볐던 것 같아. 혼자였다면 지금만큼 일본에 잘 적응하진 못했을 거야. 지난주부터 남은 일주일 동안은 왼팔 없이 지냈어. 오늘은 오른팔까지 털어냈고 말이야. 가진 무기를 모두 버리고 나니 갑자기 다시 일본이 낯설게 보였어.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간판에 길도 생소해서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지. 자전거 위에서는 그렇게 쌩쌩거리던 바람도 김 빠진 사람 곁에서는 불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았어.
땡볕 아래에서 한참을 걸었어. 그러다 지하철 역을 발견했지.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지하철 노선을 따라 자전거를 많이 탔었기 때문에 역을 기준으로 내가 숙소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거든. 일본은 내가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만큼 낯설다가 익숙해지기를 반복했어. 그날도 예정했던 것보다 1시간이 늦긴 했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지. 낯선 길을 헤매는 동안 땀에 흠뻑 젖었던 몸은 숙소를 보자마자 노곤해지더라. 자전거를 떼어내는 게 스마트폰보다 더 어려워서 그랬을 거야. 스마트폰은 애증의 관계였고 자전거는 마냥 좋았으니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의 마지막 길은 오롯이 나 혼자일 수 있어서 서러웠고 또 그만큼 좋았어.
일본 한달살이를 끝으로 올해의 반도 지났어. 올해 들어 세 번째 한달살이었지. 되돌아보니 떠돌아다니며 보내는 한 달 속에는 나름 4계절이 있었던 것 같아. 낯선 곳에서 적응하려고 애를 쓰는 봄, 살짝 적응된 상태로 더 많은 걸 알고 싶은 여름, 여태 지나왔던 곳을 다시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그리고 한달살이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깊이 명상하는 겨울까지 말이야. 4계절을 세 번 보내며 빠르게 3살을 먹었어. 쌓인 연륜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역할을 하리라 믿어.
홀로 한달살이를 하면 30일 동안 생활하는 내 모습을 차분히 볼 수 있어 좋아. 한달살이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될수록 나의 작은 4계절을 매달 반복해서 느낄 수도 있지.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파악이 돼. 나는 지금 인생의 한여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그걸 찾기 위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하니까. 그 길을 지나는 시간 속에 내 자전거를 만났고 덕분에 더 넓게 구경할 수 있었어. 그러니 헤어지는 오늘, 내가 어찌 질척거리지 않을 수 있겠어.
살다 보니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다른 걸 알겠더라. 누군가는 정리부터 하고 시작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일단 시작하고 정리를 하고 말이야. 처음에는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모든 사람이 봄부터 시작하진 않는다는 걸 알 것 같아. 살면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도 다른 사람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 계절에 맞추려고 했기 때문이었더라고.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서 나도 너도 이해하며 살아야 자연스러울 거잖아. 지금 나는 한달살이를 하며 혼자인 듯 혼자 아니게 살고 있어. 그래서 다음 갈 곳에서도 헤어질 때 자전거만큼 질척댈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