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절에서 3달 : 거창붓다선원

by 마나

머리를 잘랐어. 별다른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서 미용사 아주머니께서 내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실 때 텅 빈 내 속을 보는 것 같아 머쓱하더라고. 미용실에 같이 온 친구조차도 내게 떨리지 않냐고 묻더라. 친구의 물음에 아무 생각 없는 나를 또 바라봐야 했지. 나중에 엄마가 알면 등짝 세게 맞겠다 싶은 걱정이 다였어. 철없는 말일 수 있지만 절에 있을 때는 민머리가 제일 알맞잖아. 절에 올 때마다 머리가 거슬렸던 것뿐이야. 이번엔 길게 있을 거니까 결심을 한 거였고. 머리를 자를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이긴 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말할 만한 건 정말 없었어.


그랬던 내가 머리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눈을 자동으로 감게 되더라. 아주머니가 다 자르고 내 귀에 붙은 짧은 머리카락들을 털어 주실 때까지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아 긴장이 됐나 봐. 그러게, 나는 왜 삭발을 하고 있는 걸까. 다 됐다는 말씀에 한숨을 내쉰 후 겨우 눈을 떴어. 어색한 머리에 더 어색한 표정인 내가 보이더라. 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평생을 본 얼굴이었는데 낯설기 그지없었어. 나는 머리 위에 손을 갖다 댔어. 까끌까끌한 밤톨 같은 게 느껴졌지. 중학교 1학년 남학생 같은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어. 그제야 몸의 긴장도 스르르 풀리는 듯하더라.


"머리가 제법 어울리네."

걱정스레 쳐다보던 친구를 보며 나는 철없이 말했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말없이 모자까지 사가지고 온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저런 모습이구나 싶더라. 내 행동을 그가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상대를 다 이해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았어. 부처님, 저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걸까요. 그는 나의 너스레에 빙긋이 웃어 주었어. 그리고 내 까까머리를 쓰다듬었지. 그의 손길이 나는 좋았어.


그렇게 나는 절에 잘 어울리는 머리로 들어왔어. 읍내에 있을 땐 지나가는 사람이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볼까 봐 모자를 썼는데 절에서는 추워서 머리에 바람 들어가지 말라고 모자가 필요하더라고. 머리털이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 없어보니 알겠더라. 마냥 멋 부리려고 내 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절에서 다시 나왔을 땐 머리카락을 너무 귀찮아하진 말자 싶었어. 내가 지내는 절 방엔 거울이 없어서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을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 같아. 대신 손으로 머리를 느끼지. 까끌까끌한 표면을 만질 때마다 나에게도 아직 귀여운 느낌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네.


머리카락을 잘랐을 뿐인데 생활이 많이 간편해졌어. 그만큼 생각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머리 감는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과장해서 이야기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작은 변화 하나가 제법 영향력이 있더라고. 덩달아 내 마음가짐도 단순해지는 것 같고 말이야. 절은 외관상으로 봐도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 갓 들어온 내가 다 보진 못해도 속도 그렇지 않을까. 부처님께서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불선업을 짓는 거라 하셨어. 말 한마디도 불필요하면 해선 안 된다는데 다른 건 오죽하겠어. 여러 면으로 봤을 때 절에선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맞는 것 같아. 어때, 이만하면 머리 잘 자른 것 같지?


절에서 만난 보살님이 내게 머리 깎고 어땠냐고 묻더라. 나는 거울만 안 보면 괜찮다고 답했지. 손으로 머리를 느끼면 제법 귀엽고 눈으로 보면 아직도 어색하다고 말이야. 보살님은 내게 제법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어. 그리고 날 보며 자신도 한 번 자를까 생각도 했었다더라고. 절이니까 가능한 대화다 싶어 우린 조용하게 웃었어. 잔잔하게 하루가 흘러가. 감사하게도 나는 절에 잘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네. 스님, 절에 들어오며 하나를 버렸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단순하게 지내보겠습니다. 오늘도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