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마무리
오늘 아침에야 망나니처럼 날뛰던 마음을 다시 잡았어. 명상하는 내내 고요한 절의 공기가 내 안에 가득했지. 지난 3개월 동안, 살면서 묵혀뒀던 말을 다 쏟아냈나 봐. 눈만 감으면 번뇌와 망상이 내 머릿속에서 바글거렸는데 오랜만에 맑은 정신으로 호흡에 집중하니 뿌연 거울을 닦아낸 것처럼 마음이 명료하게 보이더라고. 명상 시작 전, 잡생각이 들더라도 관심을 갖지 말자고 생각했던 게 효과가 있었나 봐. 작은 마음가짐 하나가 나를 괴로움에서 건져냈어. 삶은 참 복잡한 듯 보이지만 이면은 단순한 것 같아.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결과 차이가 나니까 말이야. 실제로는 쉬운 인생을 여태 꼬아서 바라보며 산 건 아니었을까.
절에 있는 모든 스님과 신도는 토요일마다 큰스님과 인터뷰 시간을 가져. 한 주 동안 명상하면서 힘들었거나 변화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지. 숙제 검사받는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해. 나는 절에 있는 내내 집중이 잘 안 된다고 징징거렸던 것 같아. 내가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건지, 속도는 느리지만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지가 제일 궁금했지. “그저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세요.” 큰스님의 대답은 늘 똑같았어. 그런데도 내겐 매번 다르게 들리더라고. 아마도 스님이 아니라 내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렇게 나는 혼자서는 놓치기 쉬운 초심을 스님에게 기대어 다시 잡곤 했어.
오늘은 징징거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뷰실로 들어가는 마음이 편했어. 차례가 됐을 때 스님께 수행 과정에서 나는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지난한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변화를 보이는 거 같다고 말씀드렸지. 덧붙여 지금은 겨우 한고비 넘겼지만, 곧 또 견뎌야 할 시간이 올 것임을 알 것 같다고도 했어.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부처님도 6년의 고행을 하신 후 고행이 올바른 수행법이 아님을 깨닫고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 그렇다고 그 6년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 하시더라고.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제대로 멈출 수 있는 눈이 생긴 거라 하셨지.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밥도 익는 시간이 필요하잖아. 마찬가지로 나의 수행도 숙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집중하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던 것 같아 후회가 됐었는데 버리는 시간이 아니었단 걸 깨닫고 나니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싶더라고. 그래, 잘 안되더라도 선방에 앉아 있으려 노력하고, 명상에 집중이 왜 안 되는지 계속 툴툴거리며 질문했던 나는 모자란 게 아니라 수행하는 거였어.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나를 비난하지 않도록 노력의 대가를 제대로 알 수 있게 지혜를 가르쳐주시는 듯했거든.
절에서 나와 다시 속세로 돌아가더라도 계속 명상은 할 거야. 스스로 고요하게 만들 줄 아는 힘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제대로 살도록 도와줄 테니까. 3개월 만에 만난 사람들이 절에서 뭘 했냐고 물으면 답 대신 조용히 그를 절로 데리고 갈 것 같아. 지금은 명상의 깊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 말로 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거든. 언젠가 나의 고요함이 무르익을 때 내가 사는 모습만으로 명상의 힘을 보여줄 수 있길 바라. 혼자 좋은 음식 먹은 것처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만 대화 뒤에는 미안함이 들어서 말이야.
벌써 계획한 3개월이 다 지났어. 며칠 뒤면 하산을 해. 나는 지금 힘들어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아쉬워서 나갈 날을 외면해. 추운 겨울에 산에서 수행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어. 우스갯소리로 엄마는 나를 군대에 보낸 듯한 느낌이라 하셨지. 적절한 비유다 싶었어. 나도 제대 날짜 기다리는 군인처럼 나갈 날을 보고 또 보곤 했으니까.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 3개월이 벌써 지난 것 같은 느낌인 건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 고요한 곳에서 나는 고요하게 혼자만의 전쟁을 시작했어. 아직 끝나지 않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고. 진작에 시작해야 했을 전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야. 새로 맞이할 내 인생이 쉽지 않을 거란 걸 알아. 알아서 더 고요하게 살아보려고. 그 너머에는 분명 편안한 시간이 있을 거란 걸 수행을 통해 배웠으니까. 부처님, 잘 지내다 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고요하게 절을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다시 또 뵐 때까지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