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명상
눈을 감으면 다른 감각들이 더 살아나. 제법 멀리서 내는 부스럭거림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더라고.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 후 호흡에 집중해야 해서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나 봐. 당연히 어둡고 조용한 곳이 좋긴 해. 그런데 희한하게도 혼자 방 안에서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방이 명상이 더 잘 되는 거 있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 명상하러 선방에 오는 거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또 의식하며 살아가나 보다 생각했어.
절은 어제까지 집중 수행 기간이었어. 9박 10일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하러 사람들이 절에 많이 모였었지. 평소와 달리 꽉 찬 선방에는 옆 사람의 존재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더라고. 내 옆에는 거사님 한 분이 앉아 계셨어. 절에 처음 오신 건지 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곧 적응하시는 듯했지. 조용한 선방이라 나는 속으로 잘 지내보자고 인사를 건넨 뒤 자리에 앉았어. 어젯밤에 푹 잔 덕분에 명상을 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어. 신나게 고요함을 즐기려는데 얼마 뒤 옆에서 숨소리가 들리더라고. 내가 점점 더 조용해져서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거사님이 숨을 크게 쉬고 계신 건지 알 수 없었지. 그저 내 귀에는 조용한 선방이 그의 숨으로 꽉 찬 듯할 뿐이었어. 듣지 않으려 애쓸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라고. 듣지 않으려 애를 쓴다는 건 내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명상하기 전 가졌던 기대감만큼 내 몸에는 힘이 들어갔어. 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생각해 봤지. 열심히 발버둥 치면 칠수록 명상은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어.
그가 놓은 덫에 걸린 나는 명상을 포기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갈지 고민을 했어. 그때, 마침 며칠 전 큰스님이 법문에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더라고. 절에서 공사가 한창일 때 선방 옆에서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한 적이 있었나 봐. 숨소리와 포크레인 소리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어. 명상하려고 선방에 모인 사람들은 기계음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말 안 해도 알 듯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포크레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대. 그때 큰스님께서는 지금이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답을 하셨다고 했지. 수행하다 보면 조건이 좋은 날만 있는 건 아닐 거잖아. 세상살이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럴 때마다 상황을 따지다 보면 남는 게 뭐가 있겠냐는 거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힘이 생기는 건 맞다 싶더라고. 그래서 나도 명상하는 집중력을 기른다고 생각하고 포기 대신 계획한 시간까지 자리에 있어 보기로 했어. ‘거사님이 내게 좋은 기회를 주신 거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몇 번 되뇐 후 크게 호흡하고 다시 내 명상으로 돌아왔어. 그를 신경 쓰기엔 내가 다른 더 큰 볼일이 있다는 마음으로 말이야. 그랬더니 살짝 숨소리가 덜 거슬리는 거 있지. 작아진 소리가 고맙고 또 고마워서 나는 힘을 더 냈어. 그리고 평소와 같진 않지만, 무사히 명상을 마무리했지.
마음은 다스리기 힘들면서도 쉬운 거란 게 참으로 맞는 말인가 봐. 옆 사람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실제로는 내 마음을 내가 잡고 있지 못해서란 사실을 알 수 있겠더라고. 명상이 끝난 후 나는 어느 때보다 더 개운한 마음으로 선방을 나왔어. 먼저 나가신 거사님 자리를 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 속으로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지. 업그레이드된 내 집중력을 거사님께 자랑하고 싶어 공양간에서 거사님을 보고 반갑다고 손까지 흔들 뻔했지 뭐야. 세상살이는 정말로 마음먹기 나름인가 봐.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경험하며 어른이 되는 건가 봐.
명상하며 내 안이 조금씩 고요해지는 듯해. 남을 미워할 일도 화낼 일도 줄어들고 말이야. 앞으로도 어려울 때마다 거사님의 숨소리를 생각하려고. 이 순간이 곧 내가 클 때임을 알 수만 있다면 힘들더라도 덜 힘들 것 같거든. 집중 수행 기간이 끝나고 다시 선방은 조용해졌어. 평소로 돌아온 것뿐인데도 사람이 있다가 빠져나간 뒤라 그런지 휑한 느낌이야. 옆에서 숨소리 장단을 맞춰주시던 거사님도 안 계셔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혼자 선방에 앉아 거사님께 인사를 해 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다면 그분께 나의 숨소리 장단은 괜찮았냐고 물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