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탐욕, 성냄, 어리석음
모든 괴로움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 (탐, 진, 치)에서 온대. 이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중생이라 부른다 했지. 내 인생에 하루라도 탐진치 없던 날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탐욕이란 결론밖에 나지 않더라고. 그리고 당장 오늘 아침 눈 내리는 걸 보며 툴툴거린 내 모습이 덧붙여져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 눈이 오는 걸 보며 그저 눈이 오는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침이 내 인생에 단 하루라도 있을까.
화는 똥을 남에게 던지는 것과 같대. 남에게 오물을 던지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그것을 움켜줘야 하는 거잖아. 화를 내면 남보다 내가 먼저 더럽게 된다는 뜻이었어. 큰스님은 어떤 일이든 그 원인을 바로 파악하면 화낼 일은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 남이 내는 화는 내 것이 아니니 더욱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말이야. 하긴, 내리는 눈이 무슨 죄가 있겠어. 그게 싫어 성을 내는 건 내 마음일뿐인 게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화를 낸 후 후회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낸 거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라.
지금은 크게 깨달은 것 같아도 어느 순간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를 때가 있을 거야. 나의 어리석음이 하루 만에 없어지진 않을 테니 말이야. 그래도 화내기 전 단 1초라도 먼저 그 원인을 찾고자 노력할 힘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절에서 수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 1초의 지혜를 기르기 위해서라는 걸 알겠더라. 화를 참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가 화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끔 도와줄 테니까. 당장 행동으로는 힘들더라도 머리로 알고는 있자 싶었어.
겉으로 보면 나도 그리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아닌데 속은 좀 다른 것 같아. 나는 참았었거든. 화는 드러내면 안 된다고 배워서 성이 날 때마다 그걸 무시하고 없는 척하려 노력을 했던 거지. 그러다 그것이 쌓여 폭발하는 날은 주변 사람들이 다 어리둥절해지곤 했어. 평소에 순한 사람이 느닷없이 화를 내니까. 그것도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야. 내 속에서는 점차적으로 화가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참고 눌렀으니 남들은 중간 단계를 알 리가 없었어.
나는 억울했어. 남들이 내 속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었거든.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되돌아보니 별것 아닌 듯도 하네. 그 많은 억울함이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말이야. 이제야 세상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명상으로 내 안의 화와 좀 더 친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결정적으로 내 손을 더럽히면서까지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없어. 이만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청결한 내 손을 위해 화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감정을 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기. 그리고 그것의 원인을 찾아 이해하기... 배웠던 내용을 계속 되뇌어 봐. 비록 지금은 서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매일 생각하고 말한 것이 조금씩 스며들겠지. 화는 내게 오랜 숙제였어. 특히, 순해 보인다고 함부로 하는 듯하면 속에서 불같이 화가 났었으니까. 다행히 절에서 조금씩 고요해지는 걸 배워. 편안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그 속이 텅 비었음을 알겠어. 화내는 마음도 빈 건 마찬가지겠지. 고요한 절을 닮아가는 걸까. 나는 지금 빈 공간에서 빈 마음으로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 오늘도 고요하고 또 고요하게,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