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마음
“네 신발이 아직 신발장에 있더라고.”
신발장 앞에서 만난 카리나는 내가 곧 나올 거란 걸 알았다고 했어. 그의 손끝을 따라 간 내 시선에는 꼬질꼬질한 신발 한 켤레가 있었지. 그래, 저게 내 것이지. 관리 못한 신발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카리나가 내 신발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이 더 들었어. 나도 옆방 보살님 신발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신발장을 지나칠 때마다 살펴보곤 해서 그 순간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았거든. 함께 사는 공간에서 신발장은 상대는 모르게 그를 생각하게 되는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
나도 슬쩍 카리나의 발을 봤어. 내 것과 비슷한 신발이 눈에 들어왔지. 우린 취향이 비슷했나 봐. 반갑기도 하고 이제야 카리나의 발을 보게 된 게 미안하기도 해서 그때부터 신발장을 오갈 때마다 그의 신발을 더 찾게 됐어. 아침 공양 담당인 카리나는 새벽 5시 10분부터 일을 시작했어. 정작 자신은 아침을 먹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아침 예불을 끝내고 6시 20분에 공양이 시작되면 카리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그럼 나는 신발장에서 내 신발과 비슷한 것을 보며 ‘잘 먹겠습니다. 푹 쉬세요.’를 되뇌곤 하지. 신발장에 매일 작은 비밀이 쌓이고 있다 싶더라.
며칠 뒤, 내 신발은 일할 때 끼는 새 장갑 한 켤레를 입에 물고 있었어. 옆방 보살님이 넣어두신 듯했지. 얼마 전, 내가 장갑이 없어 공덕행 할 때 힘들까 봐 보살님이 장갑을 주셨는데 그게 여분이 아니라 보살님이 쓰실 마지막 장갑이었던 거더라고. 며칠째 철없이 신나게 끼고 다녔었는데 그동안 보살님은 힘드셨겠구나 싶었지. 나는 공용 장갑 모아둔 곳에 가서 제일 튼튼해 보이는 것으로 골라 끼고 안 받으시려는 보살님께 내 장갑을 억지로 끼워드렸어. 그리고 장갑이 돌고 돈다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지. 추운 날이었는데 마음은 따뜻했던 것 같아.
신발 속에 장갑이 있는 걸 보고 바로 보살님이라고 알 수 있었던 것도 오가는 장갑 속에 우리가 느꼈던 마음 때문이었을 거야. 카리나와 내 신발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더 꼬질꼬질해진 내 신발은 빛나는 새 장갑에 때가 탈까 봐 몸 둘 바를 몰라 하더라고. 나는 장갑을 고이 들고 방으로 들어왔어. 그리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게 확실한 반짝이는 장갑을 손에 쥐고 조몰락거렸지. 속세에서는 줘도 안 받을 목장갑인데 여기서는 내 손을 보호할 유일한 장치였어. 그걸 보살님이 챙겨주신 거지. 내 손이 고마워 한참을 몸 둘 바를 몰라 했어.
산에서 공덕행을 하다가 한 발이 진흙 속에 빠진 적이 있어. 부처님은 미리 고민하지 말고 현재만을 살라 하셨지만 나는 등산화가 두 개가 아니라서 진흙 범벅이 된 내 오른쪽 발을 보니 내일의 공덕행이 벌써 걱정되더라고. 다음 날, 씻은 등산화는 예상대로 얼어 있었어. 그래서 공용 등산화 남은 게 있나 싶어 살펴봤는데 내 치수와 비슷한 것이 딱 오른쪽만 얼어 있는 거야. 알고 보니 다른 자원봉사자 한 분이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발이 진흙에 빠졌다더라고. 웃긴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왔어.
얼은 신발을 신을 수는 없어서 할 수 없이 오른쪽은 옆에 있는 장화로 대체했어. 그리고 짝짝이 발로 서서 요즘 언발란스가 유행이라고 주변 보살님들께 너스레를 떨었지. 그 사이 다른 자원봉사자 한 분이 공용 등산화가 있는 곳을 기웃거리셨어. 그리고 얼은 등산화를 선택하시더라고. 얼은 걸 신으면 어떻게 되는지 나도 그분도 알 턱이 없어서 딱딱한 신발을 애써 신고 있는 모습을 나는 바라만 봤었어. 똑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하는구나 싶어 재미까지 느끼면서 말이야. 문제는 일을 하면서 드러났지. 그분 몸에 열기가 올라오니 그 등산화가 조금씩 녹더라고. 차가운 신발 안에서 양말까지 축축해져 발이 고통스러운 듯했어. 그렇다고 신발을 바꿔 신고 오기엔 산과 종무소는 너무 멀기도 했고 말이야.
나보다 한 시간 반을 더 일해야 하는 분이셨어. 일하는 내내 그분 발만 보이더라고. 그래서 일을 끝마쳤을 때 나는 이제 내려가니 내 장화랑 바꿔 신자고 말씀드렸지. 옆에 계신 보살님이 웃으시며 이왕 이리된 거 양말까지도 기부하라시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맨발이 됐어. 축축해진 등산화를 신고서 산에서 내려오며 신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겠더라. 발은 찝찝했지만 마음은 따뜻했어. 이런 게 맨발의 청춘 아니겠냐며 혼자서 어깨도 으쓱거렸지. 몸도 마음도 가벼웠어.
지금 절은 편백숲을 만들기 위해 산을 고르고 있어. 물론 나도 동참하고 있고. 일이 힘들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 그들도 옆에 있는 내가 더 잘 보이는 듯하고 말이야. 숲을 완성하려면 3년 정도는 더 걸린대. 나를 포함해 많은 수행자의 신발이 오가는 동안 숲은 만들어지겠지. 마음을 내어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받은 마음이 더 많아 어렵진 않은 듯해. 내일은 또 내 신발이 무엇을 물고 있을까. 신발을 보며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느껴.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도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