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붓다선원 : 무지
스님은 아낄 수 있다면 아끼고 먹을 수 있다면 먹어야 한다셨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 말을 염두하고 살아보니 아끼지 않고 먹지도 않는 것들이 많더라고. 내가 지내는 절은 가난해. 스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거지. 편함을 먼저 익힌 탓에 가난이 주는 불편함을 그저 받아들이긴 쉽지 않네. 그래도 어쩌겠어. 내 발로 찾아온 절이니 굳은살이 붙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힘들 때마다 가난을 배우는 시간이다라고 되뇌이기로 다짐했어.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게 가난이래. 그래서 절에는 설거지할 따뜻한 물이 없나 봐. 겨울이라고 실내에서만 공덕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긴, 추워도 일상은 계속되니 그만큼 움직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것 같긴 하네. 이젠 찬물로 설거지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어. 희한하게 물에 손을 담가도 춥지도 않고. 물론 손은 벌겋게 시려오지만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어 그런가 봐. 뭐든 마음먹게 달렸다더니 정말로 무심하게 보면 겨울에 찬물도 별것이 아니게 되는구나 싶더라고.
진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서만 알고 있었어. TV 속에 나오는 아프리카 난민이나 저소득층 아이들 그리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잘 알진 못하지만, 매체를 통해 익숙하게 본 사람들이었지. 그들 모두는 가난했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데 힘없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여태 그랬어. 모두 도와줄 수 없다는 핑계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무심히 지냈지. 반대로 도와줄 수 있는 것만 생각하며 살았다면 절의 추위를 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절은 가난해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줘. 불편하지만 미안하고 힘들지만 감사한 일이야.
며칠 전, 잔 나뭇가지를 자르는 공덕행을 했어. 공용으로 모아둔 장갑들은 딱 봐도 헐거워진 상태더라고. 나는 그나마 괜찮은 장갑을 고르고 골라 두 겹 겹쳐 손에 꼈어. 그리고 완전 무장을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작업하는 쪽으로 갔지. 옆에서 나를 보고 계시던 보살님이 조용히 방으로 가시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새 장갑 하나를 건네주시더라. 나는 얼결에 장갑을 받아서 고맙단 말도 못 했어. 대신, 새 장갑을 끼며 보살님 따라 다른 사람들 손을 봤지. 나에게 여분의 장갑이 없는 걸 아는지 다행히 다들 튼튼한 걸 꼈더라고. 진짜로 완전 무장을 하고 일을 시작했어. 나뭇가지에 가시가 많아 보살님이 새 장갑을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내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을 거야. 힘든 작업이었는데 장갑 하나로 버틸 만했어. 숙소로 돌아오며 장갑을 조몰락거렸어. 그리고 생각했지. 혹시, 가난도 이렇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숙소 안은 따뜻했어. 공덕행을 끝내고 먹는 밥도 꿀맛이었지. 배부르게 먹고 낮잠을 자려고 누우니 문득 지금 절이 진짜 가난하긴 한 건가 싶더라. 나는 매일 등 따뜻하게 자고 배부르게 먹으며 지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비록 절에서는 실오라기 같은 부추를 다듬어야 하고 남자 인부들이 할 일에 나도 동참해야 할 정도지만 매끼를 맛있게 먹는데 가난을 이야기한다고? 이보다 더한 가난에 부딪혔을 때도 나는 보살님처럼 옆 사람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가난의 끝은 어디일까. 어쩌면 나는 무식해서 가난 앞에서 교만을 떨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어.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된 듯해. 산에서 사는 게 힘들면 힘들수록 여태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가 더 느껴져서 말이야.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을 글로만 익힌 내가 몸으로 살짝 느끼는 것뿐이니까 당연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싶네. 다 알 수 없고 다 경험할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아는 척, 이해하는 척하지는 말아야겠어. 연약한 나는 당장은 절이 조금만 덜 추우면 좋겠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추운 절 속에서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길 바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