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퍼

자원봉사

by 마나

준비가 다 됐나 보다. 고소한 육수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며 식당은 시끄러워졌다. 미리 드린 반찬 그릇은 벌써 바닥이 보였다. 다들 배가 고프신 게 틀림없었다. 11시 30분부터 실내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배식은 딱 12시가 되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부엌 쪽으로 목을 쭉 빼고 계셨다. 그 간절한 눈빛에 떠밀려 나도 괜히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렸다. 시계를 다시 쳐다봤다. 1분 전과 다름없이 여유롭게 움직이는 분침이 어찌나 얄밉던지 콕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한 분이 부엌에서 배식구 쪽으로 나왔다. 오늘 메뉴는 국수였다. 그는 면 위에 국물을 붓고 고명으로 김과 계란을 얹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큰 쟁반에 국수 세 그릇을 놓고 움직였는데 제법 묵직했다. 쏟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젠 식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목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빨리 음식을 제공해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래도 내 발걸음 속도는 밉상스러운 시곗바늘과 같았다. 허둥거리다 쏟아서 큰 일을 내는 것보다는 순간의 미움을 받는 게 훨씬 나았다.


"원래 여기부터 음식을 주는 거야."

조심 또 조심하며 행동했는데 그래도 부족했나 보다. 할머니 한 분이 국수 그릇을 내미는 내게 말씀하셨다. 국수가 든 쟁반이 무거워 생각 없이 배식구와 가까운 곳부터 음식을 드린 게 문제였다. 원래 제일 끝 테이블부터 음식을 받는가 보다. 나는 웃으며 다음부터는 꼭 끝에서 배식을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대신 반찬을 첫 번째로 다시 채워드렸더니 마음이 바로 누그러지는 듯했다. 드디어 다들 한 그릇씩 들고 식사를 시작하셨다. 후루룩 소리가 합창단 음악처럼 듣기 좋았다. 말려 올라가는 면발을 따라 내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났다.


작은 교회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 분께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을 제공하는 봉사에 나도 참여를 했다. 이번이 3번 째였다. 자원봉사 이름은 '행복한 밥퍼'. 3개월 동안 절에 있다가 갓 내려온 직후긴 했지만 봉사는 부처님도 예수님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실 게 분명해 장소를 크게 고민하진 않았다. 식사 시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가 찾으시면 옆에 서 있다가 바로 달려갔다. 나를 대하는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국수를 드시며 만족해하는 표정은 거의 데칼코마니 수준이었다.


국수는 지난주 떡국에 비해 더 잘 넘어갔다. 배식을 시작한 지 채 20분이 되지 않았는데 추가해서 드신 분까지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30분이나 기다리시고 10분 남짓 드신 셈이다. 달달한 도넛까지 챙겨서 천천히 나가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겨우 3번 봉사를 했을 뿐인 내가 어찌 다 알겠냐만은 '밥퍼' 봉사를 오랫동안 하신 분이라면 저 할머니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자원봉사를 지속적으로 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알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포만감을 느꼈다. 국수는 금세 꺼질 것이다. 지금 느끼는 만족감도 다음 끼니때가 되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라고, 그게 인생 잘 사는 법이라고 하느님이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해 주시는 듯했다.


퇴직 후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 고민하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도태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올라오곤 한다.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할 시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겉으로는 남을 위해 시간을 내는 거였지만 실상은 나를 위해서였다. 봉사활동을 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국수를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만큼 내 배도 볼록한 건 준 것보다 받은 게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잘 넘어가는 국수 덕분에 자원봉사도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청소를 끝내고도 여유가 있어 다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목사님은 식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자신보다 돈이 더 많을 거라며 웃으셨다. 예전에는 끼니를 챙기기 힘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과는 다른 현실이었다. 그럼, 왜 목사님은 '밥퍼' 봉사를 계속 이어가시는 걸까. 한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증이 생긴 나는 질문을 드렸다.


"여기가 이분들 만남의 장소거든요."

2,3주 동안 밥을 드시러 오지 않는 분이 계시면 연락을 해 보신다고 했다. 돌아가셨거나 병원에 들어간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목사님의 대답 속에는 그들의 외로움이 들어 있었다. 적어도 홀로 돌아가신 후 한 달이 넘어 발견되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겠냐는 목사님의 말씀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밥퍼' 봉사는 그들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비록 순간 채워질 뿐 다시 혼자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할지라도 일상에서 주어진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하는 목사님의 마음이 밥그릇 속에 잘 녹아 있었다.


대문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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