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내 자서전을 읽었다.

자서전 쓰기 수업

by 마나

입맛을 다신다 ;

1.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한다.

2.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여 귀찮아하거나 난처해하다.


자유학교에는 쓰기 수업이 많다. 쓰기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쓰고 또 쓰며 산다. 나는 글을 적을 때마다 늘 입맛을 다신다.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다 끄집어내어 단순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꼭 한 번은 가지런히 정리된 머릿속을 가지고 싶다.


글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익숙해지는 만큼 재미를 느끼는 행위라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백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캔버스 위에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글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내게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아마도 사실주의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편견도 없이 그대로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가능할까.


올해 자유학교에서는 자서전 쓰기를 한다. 1학기 수업은 목차를 잡는 정도로만 진도를 나갔다. '아리랑 인생 곡선'이란 활동을 통해 전체적인 인생 흐름을 잡기도 했고 마인드맵을 이용해 키워드로 사건들을 연결해 보기도 했다. 나만의 사전을 만들어 나에게 의미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정의를 내려보는 시간도 참 좋았다. 교사인 나도 학생과 수업을 들었다. 내 삶이 더 궁금해졌다.


자서전 쓰기는 매력적인 활동이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므로 학생들이 처음에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막막해하는 학생들을 위해 2년 전 학생들과 교사들이 썼던 자서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내 것도 그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전에 쓴 책을 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분명 그땐 마음에 들었던 자서전이었는데 다시 읽으니 별로였다. 학생들이 아무도 내 것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수업이 끝날 즈음, 각자 읽은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때 평소에 글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포비의 소리가 들렸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자서 킥킥거리고 있었다. 소리에 따라 시선을 옮긴 순간 나는 잠시 교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포비는 내 자서전을 읽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수업은 진행되고 있고 사람들은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비는 나와 책을 번갈아 보여 킥킥거렸다. 멍한 상태가 되었다.


책을 잘 이해 못하는 학생이었다. 사람 좋은 얼굴로 늘 생글거렸지만 책 앞에서는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포비가 내 자서전을 읽고 있었다. 잠시가 아니라 제법 책장을 넘겼다. 처음 느꼈던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빈자리에 고마움이 채워졌다. 나보다 내 책을 더 좋아해 주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포비가 내게 왔다. 여전히 킥킥거리는 얼굴로. 나도 같이 맞장구치며 킥킥거려 주었다. 무엇이 그리 좋냐며 모른 척까지 했다.

'마나 자서전... 웃긴데 슬퍼요.'


나는 그 말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리고 포비가 내 첫 독자라는 것을 인지했다. 다시 포비를 바라봤다. 개구진 얼굴에 고맙다는 말은 너무 무거워 보여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고마웠다. 분명 나를 찾아 헤매는 글쓰기였는데 그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 집에 있는 여분의 자서전에 포비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내 여린 마음을 담았다. 자서전은 꼬박 3일을 책가방 속에 있었다. 주고 싶은데 부끄러움이 앞섰다. 방학식이 다가오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늘 용기를 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건네며 고마움을 말했다. 평소와 달리 내가 말하는 동안 포비는 진지했다. 웃음기 없는 그 얼굴을 마음에 담았다. 고마웠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 나의 까탈스러움을 킥킥거리며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웃지 않고 나의 진심을 받는다. 그 기적 같은 순간을 잊지 못해 오늘도 나는 백지 앞에 앉아 끄적인다. 글이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또 설레기도 한다. 잘 적고 싶은 마음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적자고 다짐한다. 훗날, 오늘의 글을 읽었을 때 촌스러운 내 글솜씨에 부끄러울 수는 있어도 거짓은 없어 믿을 만은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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