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조정래 <<태백산맥>>을 읽고

선택하지 않을 용기

by 마나

<<태백산맥>>은 물결이었다. 민중의 약하지만 끈질긴 힘. 파도의 너울거림과 닮았다. 넓지만 천천히 좌우를 움직이며 결국은 앞으로 이동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그 너울이 있다. 이데올로기로 혼란스러운 시대지만 민중은 균형을 잡고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어두운 이야기 속에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움직임 때문 아닐까.


마을마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가며 들어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누구의 편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없었다. 가운데에 끼어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것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생매장되었다. 다른 마을에는 인민군인 줄 알고 인민군 노래를 부르며 환영하다가 국방군에게 모두 총살을 당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었다. 선택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죄가 되는 시절이었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평등한 삶을, 자유주의는 모두가 자유로운 삶을 지향했다. 둘 다 사람들의 삶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였다. 한반도를 각자가 그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뜻이 틀리진 않았으나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은 대가로 우리 땅은 지향하는 바와 다른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거꾸로 사람 위에 있는 꼴이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사람들은 살아냈다. 서로를 죽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미움은 없었다. 빨치산과 국방군이 너무 우연찮게 산에서 마주쳤다. 서로 총을 겨누다가 담배 있냐는 말 한마디로 싸움을 멈췄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사이지만 미워하지 않았다. 사실 미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배고픈 빨치산을 위해 국방군은 담배와 건빵을 모두 줬다. 빨치산은 조심히 내려가라는 말을 했다. 이데올로기 위에 사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이데올로기가 민족보다 우선시 되는 상황을 읽어낸 지식인들은 선택을 거부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다. 점점 무력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없었다면 우린 남북으로 나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해방전쟁이든 북진통일이든 우리의 힘으로 우리 땅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한 것은 그 이전에 일본으로부터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쟁이란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일까. 8.15 광복일에 대성통곡을 했던 김구는 훗날 이런 혼란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역사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흘러왔다.


전쟁 때 넘긴 작전통제권을 아직 완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를 위해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미군이 전쟁 때 마을에 들어와 했던 행동은 일본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낡은 옷과 초라한 집에 사는 우리를 보이는 대로 대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히 미국의 잘못일까. 아니다. 나는 우리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한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작전통제권을 돌려받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아직 더 많다. 북한보다 미국과 더 친하다는 뜻이다. 북한을 남한만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몇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 그대로다.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우린 누굴 믿어야 할까. 똑바로 서지 못한 채 허리가 반쯤 잘린 모습이 지금의 한국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무섭다.


염상진의 잘린 머리를 수습한 것은 결국 염상구였다. 핏줄이 이데올로기에 앞섰다. 염상진도 염상구도 구산댁 앞에서는 자식일 뿐이었다. 민중의 물결도 부모의 마음이다. 좌든 우든 부모 앞에서는 자식일 뿐이다. 자식이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양쪽에게 골고루 전달된다. 여전히 싸움을 계속 하고 있지만 그 물결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음을 믿는다. 그것이 내가 태백산맥 속에서 본 빛이다.


이야기의 끝이 하대치의 모습으로 끝난 것은 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남한에 공산주의가 남아 있음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자유와 평등. 우리가 살기 위해 끊임없이 함께 하며 저울질해야 하는 두 가지. 양 끝에 각각 하나씩 놓고 중앙에 서서 시소 놀음하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끝까지 가는 건 뭐든 잘못됐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빼면 허상이니까.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존재는 불안해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불완전하게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끊임없이 답답하고 반복된 일들로 가득 차 있지만 천천히 너울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무력으로 시위하던 모습이 촛불로 잘못된 정권을 심판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서서히 움직이는 너울의 힘을 이젠 믿고 싶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기르기 위해 평생을 살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힘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다. 선택하지 않고 중간에 머무를 수 있는 삶을 그분들이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중간에서 넘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태백산맥>>을 보고 나니 산만 보면 마음이 울컥한다. 그 속에 남겨진 그 무엇을 찾고 싶다. 내가 무얼 찾아낼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개인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대를 먼저 고민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닦아 놓은 길에 우리가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걸어간다. 역사 속에 내가 있다. 그 길의 의미를 찾아보자. 그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고 걸어가야겠다.


<조정래 작가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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