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회의 : 청소는 왜 해?

철학이 밥 먹여주나?

by 마나

대학 입시에서 제일 들어가기 쉬운 과 중 하나가 철학과이다. 취업하기 제일 어려운 과라고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점점 철학과가 없는 대학도 늘어난다. 철학이 밥 먹여주나.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시절에 철학은 개뿔.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해라. 지금 철학의 위상은 딱 저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 취업 공부 속에 철학이 있을 리가 없다.


자유학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학교가 맞다. 요즘 세상이 나가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간다. 그 증거가 철학 수업이다. 학교에서 하는 철학이란 어려운 학문이라기보다는 잘못 살고 있다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친구 같은 학문이다. 철학 수업도 비슷하다. 부담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모두 둘러앉아 주어진 질문에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편안한 시간이다. 일상 속에 철학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철학 시간 속에 공동체 회의가 들어가 있는 것도 꽤 자연스럽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철학 수업 3시간 중 1시간은 공동체 회의로 나머지 2시간은 철학적 토론을 하는 시간으로 잡혀 있다.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의논해야 할 대부분은 이 시간을 통해 결정된다. 뭐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느릴 수밖에 없지만 불편한 말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친구처럼 소중하다.


지난주 공동체 회의에서는 벨라가 청소에 대한 안건을 냈다. 학생 수가 한 명이 줄었기 때문에 청소구역을 담당하는 수도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청소에 대한 개념이 잘 잡혀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에 불만이 쌓일 수도 있으므로 청소구역을 나눠 한 학기 내내 자기 구역은 책임지고 청소하는 체계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가끔 청소 시간에 미묘한 신경전으로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청소를 조금은 더 편하게 하고 싶은 각자의 이기심이 부딪혀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런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도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청소하는 법을 배웠으면 싶어 구역을 나누자는 아이디어에 찬성을 했다. 한참 인원 조정과 구역 나누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우자가 질문을 던졌다.

청소는 왜 하지?


우리는 잠시 조용해졌다. 청소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 하지.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 속에 '당연히'라는 단어가 먹잇감이 되었다. 별생각 없이 사는 꼴을 보지 못하는 학문이 철학이다. 빈틈이 발각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질문 폭탄을 던져댄다. 청소가 그러했다. 우자는 각자가 생각하는 청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니 청소 문제가 책임 문제로 불거지는 거라 하셨다. 공동체 회의가 자연스럽게 철학 수업으로 넘어갔다. 당장 눈앞에 놓인 안건을 잠시 미뤄놓고 각자 청소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5분간 생각하기로 했다. 내 속에도 청소와 관련된 뭔가가 보였다.


고백하건대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청소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밥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 혼자 사는 집이었으므로 치울 필요를 못 느꼈다. 열심히 화장은 했지만 밥은 대충 먹었고 옷은 신경 썼지만 잠은 대충 잤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나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철학은 나와 반대였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관심을 두고 파고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댔다. 처음에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낯설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두리둥실하게 말하는 나를 느끼며 스스로 답답해 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아 집에 와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움직인 후에도 여전히 답답함은 남아있었지만 몸은 기분 좋게 피곤했다. 이것이 청소하는 맛이구나.


거슬린 적이 전혀 없었던 정리되지 않는 집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쓸고 닦는 횟수가 늘어났다. 깨끗한 곳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몸의 기분이 마음의 기분까지 전이되었다. 답답함을 잠시 내려놓고 몸도 마음도 기분 좋은 나를 그대로 느꼈다. 그때 알게 됐다. 내가 사는 집이 곧 나였다는 것을.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날수록 내가 머무는 곳을 깨끗이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신나게 생각하고 나니 5분이 훌쩍 지나갔다.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청소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청소는 스스로가 정한 자기 구역의 범위를 나타내는 표시라고도 했고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지나간 뒤에 나타나므로 청소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의견을 내기보다는 청소를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청소는 자존감과 관련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5분간 기억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청소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얘기를 한 것 같다. 충분히 생각을 나누고 난 후 다시 처음 안건으로 돌아왔다. 청소구역을 나누고 인원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참 신기하게도 청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많이 달라졌다. 다들 어떤 방법을 쓰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다 같이 청소하는 것이 다 같이 학교를 책임진다는 뜻이라는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매주 상황에 따라 인원을 조정하여 배치하고 함께 청소를 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짠 계획대로 청소가 잘 진행될 수도 있지만 반대일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고 했다. 언제든 또다시 말할 수 있는 공동체 회의가 있으니 일단 시작해보자고 결론을 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청소 시간이 됐다. 학생들은 이번 주 청소 상태에 맞춰 인원을 배치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교사는 배치하지 않아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 학생이 나만큼 당황스러워했다. 순간 학생이 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눈치껏 알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묻고 있었구나 싶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더욱 열심히 청소하는 것으로 털어냈다. 학생들의 바뀐 모습을 보니 청소 시간이 무척 새로웠다.


삶에서 철학은 정말 밥을 한 톨도 주지 않는 학문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을 강조하는 우리 학교가 틀리지 않았음을 청소를 통해 확인을 한다. 정해져 있지 않은 인생에 얇은 귀까지 가진 인간이 조금이나마 덜 흔들리며 살 수 있는 길은 철학 속에 있다. 언젠가는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처럼 철학으로 밥벌이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땐 사람들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지 않을까. 지금보다는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하며 살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