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나보고 키오스크 앞 할머니랬다

by 고니크

동생과 나는 퍼즐같은 사이다.

내가 불룩 튀어나오면 걘 오목하게 들어가 있고, 내가 움푹 파여있으면 걘 딱 그 부분만 도톰하다. 모든 면에서 나와 너무도 다른 아이. 분명히 아픈 엄마 대신, 바쁜 아빠 대신 내가 먹이고 키우고 길렀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하드웨어도 소프트웨도 말이다.


최근 동생과 통화를 오래 했는데, 동생은 나를 엄청나게 한심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맨날 나한테 하는 말을 이번에도 또 했다.


"주식을 하라고."

"코인을 사."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공부를 해."

"10년 뒤에 어떤 산업이 발전할 것 같은데 거기에 투자해."


그럼 나는 말한다. "그냥 너가 뭐 사라고 종목 말해주면 안 돼? 사라고 할 때 사고, 팔라고 할 때 팔게."

동생이 제일 싫어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뱉는다. 역시나 나를 답답해하는 한숨이 휴대폰을 통해 내 귀에 도착한다. 귀가 뜨끈해지는 기분이다.


속상하지만 나로서도 내가 답답하다. 작년 동생과 고모가 합심하여 나로 하여금 미래에셋증권 어플을 깔게 하고, 아이디를 만들게 하고, 돈을 넣어 주식을 사게 만들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업비트 어플도 깔게 하고, 돈을 넣게 하고, 코인을 사게 만들었지만! 나는 어플에 들어갈 때마다 내 비밀번호를 까먹곤 매번 비밀번호 찾기를 통해 로그인을 하는 사람이며, 여전히 매도와 매수를 헷갈려 하고, 예수금과 D+1 추정출금가능 자산에 왜 차이가 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동생이 미국과 중국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물어보면, 나는 전쟁은 무서운 것이니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다고 대답함으로써 동생의 복장을 뒤집어 놓는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런데 어떻게 해. 이게 난데. 나는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그야 말로 빠가사리인 걸. 누나는 곧 키오스크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노인과 다를 바가 없어질 거라고 악담을 퍼붓는 동생에게 나는 차마 지금도 키오스크 조금 어렵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전히 벨트를 허리띠라고 부르고, 왁스를 무스라고 말하고, 크롭티보다는 배꼽티가 더 익숙한 걸. 벨트를 혁띠라고 부르지 않는 게 어디야. 배 타러 갈 때 배삯 얼마냐고 안 묻는 게 어디냐고. 너 내가 신발 사러 갈 때 '이거 몇 문이에요?'라고 할 것 같냐? 이거 왜 이래 나도 현대인이야. 뷁!!! 나는 OTL 자세로 아주 조금 흐느꼈다.


얼마 전 내 차에 탄 동생이 또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이런 노래를 듣느냐고. 그때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는 선하의 샨티샨티였다. 왜 이 노래가 얼마나 중독성 있고 좋은데. 조금만 기다려 봐 이거 다음에 남녀공학의 삐리뽐 빼리뽐 나올 거거든? 동생의 미간에 내 천 자가 그려졌다. 아, 너 이렇게 후킹 있는 노래 안 좋아하는구나? 그럼 브아걸의 마이스타일은 어때. 이거 완전 명곡인ㄷ... 동생이 참다못해 입을 뗐다. 당장 멜론 끊고 스포티파이로 음악 플랫폼 바꾸라고.


동생이 말하길 나는 그게 문제라고 했다. 여기서 '그게'란, 한번 꽂힌 것을 영원히 고수하는 습관. 세상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변화하는 세상에 발 맞출 노력을 하지 않는단다. 요새 누가 플레이리스트에 노래를 담아서 그것만 주구장창 듣냐며, 요새는 AI가 알아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취향에 맞춰 추천곡을 다음 곡으로 재생시켜준다고... 참나. 이 부분은 나도 억울해. 나 아일릿도 좋아하고 하츠투하츠도 좋아하거든? 오늘만 그런 거야. 오늘만!


옛날의 동생은 나를 답답해하면서도 이런 나를 조금 웃겨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나를 진심으로 한심해하는 것 같다. 내가 자조적으로 "빠가야로로 사는 건 정말 힘든 거야"라고 하면 아직 그정돈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줬던 동생이 이제는 "그러니까 어쩌다 그렇게 됐냐..."라고 한다.


동생이 나한테 그랬다. 누나는 초등학생 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고. 요새는 초등학생도 차트를 볼 줄 알고 주식 공부를 하는데, 나는 그보다 못하단다. 내 뇌가 가장 말랑했을 때 그러니까 20대 시절, 그때 세상 공부를 해놨어야 했는데 나는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아빠가 유복한 환경을 조성해줬을 때 그걸 잘 활용해서 어떻게든 부자가 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그 시간을 썼어야 했는데... 나는 아빠가 마련해준 따듯한 환경에서 그저 해맑게 웃으며 이불을 덮곤 하루종일 소설을 읽었다. 내 말랑한 뇌를 문학과 글쓰기, 철학, 사유과 반성, 내면과 성찰에만 쓴 거다. 동생은 내가 그 시간을 사치부린 거라고 표현했다. 그 말에 나는 크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나'에 대해서 파고 들며 시간을 사치부리는 동안, 나보다 월급이 적은 내 동생은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불렸고 이젠 나랑 모은 돈이 제법 비슷하다. 시간이 갈 수록 우리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동생은 말했다. 자기의 예측대로라면 3년 뒤엔 지금 가진 돈의 세 배가 넘는 정도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3분의 1로 줄 것 같은데 말이야. 내 동생은 좀 멋있는 것 같다. 우와... 대단한데! 멋있다! 동생이 멋있어서 멋있다고 했더니 걔는 또 한숨을 쉬었다. 왜 저래 진짜.


통화하는 한 시간 동안 내내 잔소리만 듣던 나는 그 소리가 이제 좀 질려서 잽싸게 화제를 다른 쪽으로 전환했다. 동생아, 내 결혼식에 왜 너 친구 걔 안 왔냐. 걔랑 친했잖아. 누나랑도 몇 번 인사하고 그랬는데 데려오지. 그랬더니 동생이 그런다. 그 친구랑은 멀어졌다고. 왜??? 걔 착하잖아!


"착하지. 걔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 때문이야. 같이 준비하던 시험 걔는 붙고 나는 떨어졌잖아. 그 다음부터 걔를 전처럼 대할 수가 없더라고. 내 열등감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많은 생각이 동시에 나를 휘감았다.


일단 나는 놀랐다. 내가 그동안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걸 동생의 말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가 부러웠던 적은 있었어도 열등감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친한 친구랑 멀어질 정도로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이라니. 열등감의 정의를 알고, 열등감의 예시를 알지만 나는 겪어본 적 없는 감정. 내 동생이 그런 감정을 느낀단 말이야? 똑똑한 너가? 자신의 열등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포인트에서 나는 여전히 내 동생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멋있는 애의 예상치 못한 나약한 지점을 발견한 것 같아서 조금 거북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쯤, 고씨 집안 전체 가족 모임을 하고 난 후 동생이 스치듯 했던 말이 떠오른다. 누나는 작가고, 누구는 의사고, 누구는 박사고. 쟤는 전문가고, 누구는 사장님인데 나는 직장인이라고. 그게 맘에 안 든다고. 5년 전에는 내게 이런 고민상담도 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누나.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그냥 돈만 많이 벌고 싶어.


그랬던 동생의 역사가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나는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조금 자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키오스크 앞에서 머리를 긁적일 순 있어도 내가 누군지 모르진 않아. 내가 부렸던 시간의 사치가 내게 뭔가를 남기기는 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건방진 생각까지 들었다.


동생아, 정말 우리는 퍼즐이구나. 내가 오목한 부분은 너가 볼록하고, 너가 툭 튀어나온 부분은 내가 푹 꺼져있고 말이야. 말랑한 뇌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켜온 우리 두 사람. 시간이 흐를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지겠지만 잊지 말자. 우리는 결국 함께라서 하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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