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관 조영술 후기
나는 원체 엄살이 심한 사람이다.
최근에 빙판길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바람에 무릎에 작은 멍이 들었다. 난 그렇게 며칠을 절뚝이면서 걸었다. 멍이 든 건 왼쪽 다리였는데 가끔은 그걸 까먹고 오른쪽 다리까지 절뚝여주면서 나의 고통과 괴로움을 엄살 오버 액션으로써 표현해낸 것이다. 요가에선 무릎을 꿇는 동작을 자주 하기 때문에 요가도 일주일 쉬었다. 멍든 부분 땅에 닿으면 대요니 너무 아.파.욘.뿌.
지난 날들을 곱씹어 내 인생 최악의 고통을 꼽아보자면 1위는 신종플루. 신종플루에 걸린 나는 밤새 내 방과 동생 방, 안방 그리고 거실을 기어다니면서 소리지르며 울었다. 굳이 여러 공간을 기어다닐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나는 그냥 그렇게 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만인에게 표현하지 못하면 더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허락만 해줬으면 옆집에 가서도 울며 기어다녔을 거다.
인생 2위의 고통은 노로바이러스였다. 눈 앞에 별이 보였다. 위아래로 쉴 새 없이 액체를 쏟아내면서 엉엉 울었다. 정기는 내가 '물...'하면 물을 떠다주고 '밥...'하면 밥을 먹여주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는 정기 어부바를 탔고 그것에 맛들린 나는 새벽에 눈을 떠 '비행기 태워줘...'했다. 정기는 자다말고 난 데 없이 발바닥 위에 나를 올려놓고 비행기를 태워줬다. 아픈 거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행기였다. 나는 방금 토를 한 입으로 히히 하고 웃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아주 조금도 아프고 싶지 않다고. 엄마가 내 몫까지 다 아프다가 떠났으니 나는 이제 안 아파도 된다고. 하지만 살면서 마음 아플 일은 매번 나를 찾아왔고 나는 마음이 약해서 날 찾아온 것들에게 모질지 못했다.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아플 일이 많은 거야. 나는 강해져야 돼. 내가 하는 혼잣말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나는 나한테 엄마가 없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내 자신이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딱 한 명만 낳아야지. 그리고 그 한 명한테 내 모든 사랑을 올인해야지. 내가 되어야 했을 나, 평행세계 어딘가에 살고 있을 나를 낳아야지 굳은 마음도 먹었다. 그러나 내가 먹은 마음은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임신 준비를 꽤 오랫동안 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는 나보고 이제 난임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난임검사의 첫 단계는 난소검사. 그건 이미 했지. 그날부터 나는 내 난소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내 난소가 나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ㅋ 난임검사의 두 번째 단계는 대망의 나팔관 조영술이다. 사람에 따라서 고통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알기론 안 아팠다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꼴이고 나머지 9명은 지옥에 다녀온 걸로 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운이 좋게 내가 그 한 명에 속하더라도 나는 분명 아파할 것이다. 이렇게 됐든 저렇게 됐든 나는 이걸 무조건 아파할 것임을... 나는 어느정도 체념했다.
차가운 쇠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귀여운 수달 인형을 주셨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나는 알았다. 아플 때 꽉 쥐라는 거구나.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내 밑에 뭔가를 넣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제 조영제를 넣을 건데 배가 많이 아파질 거예요.
나는 예의 바른 환자이고 싶어서 네...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간 소리는 아아아아악!!!!!!!!!!!!!!!! 하는 비명이었다. 조영제가 의사 선생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온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내가 체통도 없이 아아악!!!!!!!! 악!!!!!!!!! 악!!!!!!!!!!!!!!!!!!!!!!!!! 소리를 지르니까 의사 선생님이 허겁지겁 X-ray를 찍으러 옆방으로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악!!!!!!!!! 악!!!!!!!!!!!!!!!!! 아아악!!!!!!!!!! 안 할래요!!!!!!!!! 안 할래!!!!!!!!! 안 해!!!!!!!!!!!!!!!!!!
이걸 쓰면서도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꼼짝도 못하는 고통이다. 칼로 찌르는 느낌도 아니고 몽둥이로 맞는 느낌도 아니다. 자궁 안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자궁이 너무 질긴 나머지 터지지는 않고 끝없이 부풀어오르는 그런 고통. 정말 아프다. 아프다는 말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아파. 너무 아파서 나는 안 하겠다고 소리를 소리를 그렇게 질렀다.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눈이 저절로 뒤집혔다. 내겐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고 이 고통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암담하게 만들었다. 엄살을 부릴 수 없었다. 이건 진짜의 고통이었다. 진짜 고통. 얼마나 진짜냐면. 진짜 진짜인, 그런 고통. 조영술이 들어가고 내 입에서 '안 할래요' 소리가 나오기까지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일제 시대 때 태어났으면 난 분명히 밀정이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모두에게 죄송해요. 나는 내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도 모르니까 그때도 몰랐을 거야. 맨정신일 때의 나는 불의에 항거하고 부당함에 눈 똑바로 마주치는 타입의 인간이다. 나는 틀린 건 틀렸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이며, 싸우게 되더라도 아니 얻어터지게 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어필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내 성미 탓에 윗사람들은 나를 싫어하고 아랫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 위태로운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어왔건만... 나의 모든 친구들도 내게 '넌 전생에 독립군이었을 거야'라고 수도 없이 말해주었건만... 털썩. 아니었어... 나는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비밀을 불고 싶었다.
비밀을 분다고 이 고통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그 비밀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내가 아는, 아니, 내가 모르는 모든 비밀까지도 다 불어버리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프지만 조금만 참아보자? 이건 그런 여유로운 생각이 드는 고통이 아니다. 도저히 못 참겠는 고통이다. 다행인 건 검사 시간이 약 3분 정도로 굉장히 짧았다는 것. 조영제가 빠져나가고 나서는 생리통 정도의 참을 만한 욱신거림만 남는다. 그럼 뭐해 이미 나는 지옥에 다녀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간호사 선생님이 주셨던 수달인형이 축축히 젖어있었다. 내 침 때문이다. 고통에 눈을 뒤집으며 입을 벌리는 바람에 침이 줄줄... 수달아 미안해. 수달인형 세탁 담당자 분께도 사죄의 말씀 이참에 올릴게요.
고통에 어기적거리며 검사실 문을 닫고 나오자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나의 비명을 들으신 거겠지. 자, 다음은 님들 차례에요. 화이팅.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의자에 앉았더니 그제야 눈물이 삐져나왔다. 아까는 울 정신도 없었어. 너무 아프다. 정말 아팠어. 그리고 억울해. 이렇게 아픈 걸 왜해야 한단 말이야. 이런 것까지 겪으면서 난 뭘 얻게 되는 걸까. 난임의 길 앞에서 서서 내가 앞으로 갈 곳엔 뭐가 더 있을지 걱정돼 나는 정말 두려웠다. 엄마가 보고싶다. 그러니까 눈물이 더 나왔다. 불쌍한 엄마. 항암치료는 나팔관 조영술 보다 훨씬 더 아팠겠지.
도망칠 수 없는 내게 불가항력의 고통이 쏟아졌던 것처럼 엄마도 그 고통을 피할 수도 없이 그냥 맞고 있었겠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냥 나를 뚫고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무력하게. 너무 외롭게 말이야. 고작 3분 아파놓고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엄마의 고통을 헤아려보려 노력했다. 찔끔찔끔 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내 입에서는 엉엉 소리가 나왔다. 사람은 굶어서 죽기도 하고, 찔려서 죽기도 하고, 숨막혀 죽기도 하지만 아파 죽기도 한다. 아파서 죽으려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걸까. 방금 그 고통에도 나는 죽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를 죽인 고통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이었길래... 도망치지 못하고 그걸 맞고 있었을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
나팔관 조영술을 마친지 4일 정도가 흘렀다. 여전히 조금은 아프다. 자궁에 큰 멍이 든 것같은 느낌이다. 배에 힘을 줄 수가 없어서 큰 볼 일도 못 봤다. 복압이 잡히지 않아서 요가도 쉬었다. 어제까진 소량의 피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다. 흠흠. 대요니는 아파욘. 특유의 엄살이 시작됐다. 안방에 있다가 거실로 나가고 싶으면 정기를 부른다. 정기는 나를 업어서 옮겨준다. 내가 꼭 걸어야 하는 상황이면 옆에서 정기가 나를 부축해준다. 그러면 나는 다리가 부러진 사람처럼 휘청이며 정기에게 의지해서 걸음을 옮긴다. 정기는 내가 그 어떤 엄살을 부려도 눈꼴시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나가서 사오고, 차리고, 먹이고, 설거지한다. 좋았어. 앞으로도 부탁할게. 엄마가 그리운 내가 엄마가 될 때까지 말이야.